▲'기차'라는 교통수단은 여행자들에게 깊은 사색의 공간인 동시에 그들의 발이다. 끝없이 뻗어있는 철길 앞에서 여행자들은 그들이 가야할 길을 본다.김태우
이탈리아를 벗어나 프랑스의 해변도시 니스로 향하는 밤기차에 올랐다. 일반좌석이 아닌 침대 칸(쿠셋)을 미리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악명 높은 기차는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넓이 2.5m, 높이 3m 정도 되는 공간에 마련된 6개의 침대는 너무나 비좁게 느껴졌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게 침대열차인지, 양계장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열대야 현상으로 50년 만에 찾아온 더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에어컨은 작동되지 않았고, 열차 칸 맨 끝에 자리잡은 세면대에서는 오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 침대 칸의 통로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간신히 열을 식혔다. 달리는 기차 밖으로 칠흑같이 검은 이탈리아의 들판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만 했기에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20kg짜리 배낭을 메고 감행한 강행군으로 몸은 녹초가 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뒤척이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