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한방은 있다!...주목할만한 이 주의 새 책들

<문명의 감각> <자밀라> <쥐어지지 않는 양산>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다>

등록 2003.10.28 14:35수정 2003.10.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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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격비평으로 돌아가자
- 방민호 평론집 <문명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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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연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비평계는 '문화(문학)권력'이란 생경한 조어에 휘둘리고 있다.


'문화권력'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냐, 아니면 피상적인 상징이냐라는 기본적인 논쟁에서부터, 언필칭 '문화권력'으로 지칭되는 몇몇 메이저 문학잡지와 그 매체를 움직이는 인물에 대한 소장 비평가들의 십자포화성 공격까지 문화와 권력을 둘러싼 '한국적 논란'은 앞으로도 쉬이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문학과 작가에 대한 연구를 업으로 삼는 평론가들은 이를 어떤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을까? 채만식 연구자이자 국민대 국문과 교수인 방민호(38)의 근저 <문명의 감각>(향연)에는 문화권력과 이를 비판하는 세력간의 다툼을 바라보며 느끼는 소장학자의 안타까움이 가감 없이 담겼다.

방민호는 말한다. "이제는 문학권력이니, 문학권력 비판이니 하는 정치적인 문학논의에 묻혀버린 문학 본질의 문제를 고민해야할 때"라고. '문명비평의 길' '이 난경!으로부터 벗어나는 법' '한국문학에 대한 네가지 생각' 등의 제목을 단 평문을 통해서다. 정치를 넘어 본격비평으로의 귀환을 촉구하는 젊은 학자의 목소리는 설득력이 높다. 그의 글 속에 사심이나 편견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방 교수가 문학권력이란 화두에서 벗어나 보다 심도 있게 연구하고 논의하고싶은 과제는 오늘날 개인의 삶에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명'의 문제.

책의 제목 <문명의 감각>은 "비평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문명을 제대로 인식하고, 문학의 현대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탐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방민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본격비평으로 돌아가자'라는 책의 슬로건답게 방민호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과 작업에 비평의 메스를 대고 있다. 30년대 카프작가 임화에서부터 원로 김윤식, 중진 황현산과 최인석, 여기에 오수연, 이현수, 김별아 등 30대 젊은 작가들까지가 방민호의 연구대상. 그 폭과 깊이가 넓고도 깊다.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와 <납함 아래의 침묵>에 이은 3번째 평론집을 내놓은 저자는 "향후 3년 정도는 긴 호흡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 '긴 호흡의 공부'가 끝나는 날. 독자들은 방민호의 또 다른 문제제기와 만나게 되리라.



사랑을 통해 생의 본질을 보다
- 칭기즈 아이트마토프의 <자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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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다스북스

아이를 성장시키는 가장 큰 힘은 사랑이다. 그것은 동서와 고금이 다르지 않다.

키르기스스탄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칭기즈 아이트마토프의 <자밀라>(미다스북스·이양준 역) 역시 생의 본질을 사랑과 성장으로 파악하고 '사랑 부재'의 상황에 처한 한 소년이 어떻게 '사랑'을 얻어 어른에 이르게 되는지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사랑에 빠진 형수를 지켜보며 삶과 인간의 비의를 깨달아 가는 세이트를 통해 사랑이란 도덕과 법의 문제가 아닌 진실의 문제라는 것을 말해주는 <자밀라>는 프랑스의 시인 루이 아라공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극찬을 받으며 프랑스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저자인 칭기즈 아이트마토프는 키르기스스탄의 작은 시골마을 출신으로 아홉 살 때는 아버지가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숙청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자밀라> 함께 번역·출간된 <바다로 달려나가는 뻬기 뽀스>는 절망과 실존의 무거움 속에서도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바닷가 소년 키리스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다스 세계문학'을 통해 익숙한 영미문학만이 아닌 생경하지만 가치 있는 제3세계 문학을 꾸준히 번역해 소개할 것"이란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무기수의 아내가 기록한 한국 현대사
- 장수향의 <쥐어지지 않는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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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사람들

세계적 수학자로 인정받는 교수 남편과 2남2녀를 낳아 기르며 행복하게 살던 '사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무기수의 아내로 그 신분이 바뀐다면? 이런 터무니없는 가정이 1970~80년대 한국에서는 언제건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수많은 용공조작 사건과 어처구니없는 이적혐의로 감옥에 가야했던 사람들.

<쥐어지지 않는 양산>(아름다운사람들)의 저자 장수향(69)의 남편은 남민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안재구 박사다. 10년에 걸친 남편의 감옥수발과 4명의 아이를 홀로 키워야했던 힘겨움, 게다가 아버지에 이은 아들의 구속. 장수향은 대학노트 6권에 자신이 겪은 지난한 삶과 처참했던 당시 심경을 기록했고, 이를 회고록으로 출간했다.

책은 타고난 성정 자체가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한 여성이 수난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단련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장수향은 전문적으로 글을 써온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책 속에 담긴 눈물겨운 진실은 세련되지 못한 문장을 훌쩍 압도한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진실의 힘을 다시금 삶 속으로 돌려준다는 차원에서 <쥐어지지 않는 양산>은 쓰지만 이로운 약이다.


독자를 매혹하는 복서의 문장
- 홍수환의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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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토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 흑백 TV를 통해 들려오던 모자(母子)의 대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권투선수 홍수환(53).

1977년 '지옥의 악마'로 불리던 복서 카라스키야와의 대전에서 네 차례나 다운 당하고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상대를 쓰러뜨리고 WBA 주니어 페더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홍수환. 그가 만들어낸 '4전5기'의 신화는 아직도 복싱팬들 사이에 회자되는 영원한 술안주거리다.

그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책을 펴냈다.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다>(해토)라는 제목부터가 복서답다. '권투와 인생이라는 화두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경영의 비법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 저자의 출판의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할 수 있다' '인생을 무너뜨릴 시련은 없다' '인생의 시간에는 백스텝이 없다'라는 소제목이 붙은 글들은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승리와 패배는 모두 우리들 자신 속에 있다'는 홍수환의 문장은 기자를 매혹한다. 여기서 매혹을 느끼는 게 비단 기자만은 아닐듯하다.

문명의 감각 - 문학권력과 문학권력 비판을 넘어서

방민호 지음,
향연,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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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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