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비평계는 '문화(문학)권력'이란 생경한 조어에 휘둘리고 있다.
'문화권력'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냐, 아니면 피상적인 상징이냐라는 기본적인 논쟁에서부터, 언필칭 '문화권력'으로 지칭되는 몇몇 메이저 문학잡지와 그 매체를 움직이는 인물에 대한 소장 비평가들의 십자포화성 공격까지 문화와 권력을 둘러싼 '한국적 논란'은 앞으로도 쉬이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문학과 작가에 대한 연구를 업으로 삼는 평론가들은 이를 어떤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을까? 채만식 연구자이자 국민대 국문과 교수인 방민호(38)의 근저 <문명의 감각>(향연)에는 문화권력과 이를 비판하는 세력간의 다툼을 바라보며 느끼는 소장학자의 안타까움이 가감 없이 담겼다.
방민호는 말한다. "이제는 문학권력이니, 문학권력 비판이니 하는 정치적인 문학논의에 묻혀버린 문학 본질의 문제를 고민해야할 때"라고. '문명비평의 길' '이 난경!으로부터 벗어나는 법' '한국문학에 대한 네가지 생각' 등의 제목을 단 평문을 통해서다. 정치를 넘어 본격비평으로의 귀환을 촉구하는 젊은 학자의 목소리는 설득력이 높다. 그의 글 속에 사심이나 편견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방 교수가 문학권력이란 화두에서 벗어나 보다 심도 있게 연구하고 논의하고싶은 과제는 오늘날 개인의 삶에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명'의 문제.
책의 제목 <문명의 감각>은 "비평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문명을 제대로 인식하고, 문학의 현대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탐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방민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본격비평으로 돌아가자'라는 책의 슬로건답게 방민호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과 작업에 비평의 메스를 대고 있다. 30년대 카프작가 임화에서부터 원로 김윤식, 중진 황현산과 최인석, 여기에 오수연, 이현수, 김별아 등 30대 젊은 작가들까지가 방민호의 연구대상. 그 폭과 깊이가 넓고도 깊다.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와 <납함 아래의 침묵>에 이은 3번째 평론집을 내놓은 저자는 "향후 3년 정도는 긴 호흡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 '긴 호흡의 공부'가 끝나는 날. 독자들은 방민호의 또 다른 문제제기와 만나게 되리라.
사랑을 통해 생의 본질을 보다
- 칭기즈 아이트마토프의 <자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