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다죽어 가는데 '제도개선 추진' 구호만

[현장-서울] 민주노총, 정부의 '특별담화' 내용 강력 성토

등록 2003.10.29 22:53수정 2003.10.2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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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조합원들이 손배가압류를 철폐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29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조합원들이 손배가압류를 철폐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승훈
고 김주익 회장의 사진과 유서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조 조합원
고 김주익 회장의 사진과 유서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조 조합원오마이뉴스 이승훈
민주노총은 29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조합원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손배가압류와 비정규직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정부의 구체적인 대책이 나올 때까지 강경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를 달래기 위한 정부의 특별 담화문 발표가 있었음에도 이날 집회에서 표출된 노동계의 반발은 조금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은 "동료가 죽어나가는데 정부는 이러한 비극을 초래한 것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해결책을 내놓기는커녕 오히려 노동계의 집단 행동에 엄정 대처하겠다고 협박하고 나섰다"며 격앙된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정부 특별담화 발표에 노동계 더욱 격앙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오늘 정부가 발표한 안이한 대책에 대해서 너무 실망스럽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가 진심으로 노동자의 자살항거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먼저 공공부분에서 정부가 제기한 400억 규모의 손배가압류를 취하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회에 참석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 김 모(여, 29)씨도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노동부 산하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에서도 비정규직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말뿐인 정부의 대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민주노총은 오늘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그 동안 발표해놓고도 실천하지 않은 것을 재탕한 것으로서 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은 안이한 내용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가장 시급한 대책이 요구되는 손배가압류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 "가시적인 조치없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제도개선 추진 약속만 내놓은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못박고 "정부가 노동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해결해 나가고 제도개선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또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손배가압류와 비정규직 차별을 더 부추기는 정부 정책에 실망해 노동자들이 줄줄이 자살하는 현실을 개선할 구체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더 큰 저항을 부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9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200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했다.
29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200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했다.오마이뉴스 이승훈
집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경찰이 시위대를 2차로로 밀어내려하자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집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경찰이 시위대를 2차로로 밀어내려하자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승훈

'우리 재벌은 돈 벌기위해 살인 부추기는 집단'

이날 노동자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한 것은 영등포경찰서장의 '분신기획' 발언 파문에도 불구하고 다시 터져 나온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노동운동 배후 거론이었다.

이와 관련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경총의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이 노조들이 파업을 위한 파업을 한다고 노동운동의 도덕성에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의 연장이며 경찰서장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이 비극적인 수준"이라며 분개했다.

그는 특히 "우리 나라 재벌자본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노동자뿐만 아니라 전투병을 파병해서라도 무고한 이라크 사람의 생명을 빼앗으라고 부추기는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총은 집회를 맺는 결의문을 통해 "예정대로 다음달 5일 1차 총파업에 돌입하고, 9일에는 10만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노동자대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집회를 통해 더욱 격앙된 노동계의 분위기는 오후 4시 40분 경 집회를 마치고 종묘공원에서 탑골공원까지 예정된 거리행진을 벌이려던 조합원들을 경찰이 밀어내기 시작하면서 폭발했다.

경찰은 집회신고시 허가된 2개 차로만 이용하라며 전경을 투입해 3번째 차로에 진입한 조합원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에 흥분한 노동자들은 밀어내기를 시도하는 경찰에 보도블럭과 길가에 놓여있던 돌을 던지며 30여 분간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경찰이 평화적인 행진을 보장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했다며 그대로 도로를 점거하고 연좌농성을 벌이는 등 경찰과 대치하며 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거리행진과 연좌농성에 들어간지 3시간여 만인 7시 30분경 자신해산하고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으로 이동해 집회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분신 사전 기획설 주장한 영등포서장 경질해야"
한나라당도 김 서장 '공개사과' 촉구

참여연대가 최근 잇따르고 있는 노동자들의 분신에 대한 '사전기획설'을 주장한 김성훈 영등포서장의 경질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29일 논평을 내고 "정부가 현재의 노동 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김 서장은 몰지각한 망언을 해 물의를 빚고 있다"며 "이는 비단 영등포 경찰서장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노동문제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편견에 가득 찼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주장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정부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고 시민사회가 제시하는 대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우선 영등포 경찰서장부터 당장 경질하라"고 촉구했다.

최근의 '분신정국'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책임도 추궁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노동자들의 분신사태는 참여정부 노동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예"라며 "이용석 본부장의 분신은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김주익 위원장의 죽음은 반인권·편법적인 노조탄압이 낳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 참여연대는 "그간 시민단체들은 기업들의 보복적인 손배·가압류에 대한 전면조사와 손배·가압류 제한 입법청원 등 대책을 요구하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차별금지와 권리보호를 촉구했으나 국회는 입법노력을 게을리 했고 정부는 수수방관해왔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도 논평을 냈다. 황제현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29일 "최근의 분신사태는 노무현 정권의 연이은 경제정책 실패와 일관성 없는 노사정책 때문"이라며 "민주노총을 관할하는 영등포 경찰서장으로서 누구보다 노동자들의 어려운 속사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할 사람이 분신 노동자들의 인격까지 비하한 방언을 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황 부대변인은 "김 서장은 즉각 노동자들 앞에 공개사과 하고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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