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산호랑이가 덥석 물어간 스님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24)-영취산 백운암

등록 2003.10.31 08:44수정 2003.11.0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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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감 좋은 산 정상부를 휘감고 있는 흰색구름처럼 영취산 8부 능선에 휘감듯 숨 고르듯 백운암은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산줄기가 모이는 사진 움푹한 곳에 노란색을 띤 백운암이 보인다.
색감 좋은 산 정상부를 휘감고 있는 흰색구름처럼 영취산 8부 능선에 휘감듯 숨 고르듯 백운암은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산줄기가 모이는 사진 움푹한 곳에 노란색을 띤 백운암이 보인다.임윤수

불교에서는 부처님(佛)과 가르침(法) 그리고 승(僧)을 가장 귀히 여기며 이를 삼보(三寶)라 한다. 경남 양산에 있는 통도사가 불보(佛寶) 사찰이고 합천의 해인사가 법보(法寶) 사찰이며 전남 순천에 있는 송광사가 승보(僧寶) 사찰이다.

불보(佛寶) 사찰인 통도사가 있는 영취산 계곡은 절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절들이 있다. 한국 불교의 대표적 사찰을 삼보 사찰로 꼽고 있으니 그 첫째가 불보 사찰인 통도사다. 통도사에는 부처님 진신 사리와 가사(부처님이 입으셨던 옷)가 봉안되어 있기에 '불보 사찰'이라 한다.


불교 용어에서 '법(法)'이란 글자는 법문, 법어 등에서 알 수 있듯 '가르침'을 의미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를 그러기에 '법보 사찰'이라 하며 국사(國師)로 지정될 만큼 큰스님들이 많이 배출되었기에 송광사를 '승보 사찰'이라 한다.

통토사가 있는 영취산(靈鷲山)은 그 산세가 마치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인도의 영축산과 흡사하기에 '영축산'이라고도 부른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영축산에는 신선과 독수리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하는데 한국의 영축산은 그 산세가 날개 펼친 독수리형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산 이름인 영취산의 '취'자는 바로 독수리 취(鷲)자다. 어릴 때 읽었던 '큰바위 얼굴'처럼 마음에 그리고, 많은 불자들이 닮고 싶어하다 보니 그 뜻과 정성이 지형조차 움직여 양산 영취산을 인도의 영축산을 닮게하고 불교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는 길도 그렇지만 내려오는 길도 방심을 하지 말라 당부하고, 그렇게 하였다간 정말 야단이라도 칠 듯 그런 기세만큼 백운암을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다.
오르는 길도 그렇지만 내려오는 길도 방심을 하지 말라 당부하고, 그렇게 하였다간 정말 야단이라도 칠 듯 그런 기세만큼 백운암을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다.임윤수

통도사로 들어서는 산문을 지나게 되면 휘휘 가지 늘이고 있는 아름드리 노송에서 고찰 냄새가 물씬 난다. 절의 규모와 엄청난 방문객을 수용하느라 꽤나 넓은 길이 잘 포장되어 있지만 통도사로 들어가는 길은 눈에 거슬리지 않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

영취산엔 통도사로 시작되어 계곡따라 20여 개의 산내 암자들이 즐비해 있다. 산길 오르며 염불과 목탁 소리가 끊일 만하면 다른 암자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염불과 목탁 소리가 다시 이어지니 계곡 전체가 법당이다.


절골(고을)이란 표현이 딱 좋게, 산문부터 영취산 정상까지 끊이지 않는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가 몸도 마음도 불가의 세계로 들어서게 해 주니 어찌 마음이 평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절골 영취산 골짜기에 즐비한 20여 개 많은 암자 중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가 백운암이다.

색감 좋은 산 정상부를 휘감고 있는 흰 색 구름처럼 영취산 8부 능선에 휘감듯, 숨 고르듯 백운암은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영취산을 올라 보면 높지 않은 산이 꽤나 험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봉우리로 이어지는 능선이 온통 바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급한 경사와 깔려있는 돌들이 그 험함을 더해 준다.

별도의 일주문도, 표식도 없이 영취산을 오르는 길, 조금 평탄함을 보이는 장소에 백운암이 있다.
별도의 일주문도, 표식도 없이 영취산을 오르는 길, 조금 평탄함을 보이는 장소에 백운암이 있다.임윤수

산을 풍수지리에서는 용(龍)이라고 표현한다. 좌우로 굽이치고 홀연히 솟았다 가라앉듯 내려앉고 갑자기 굵어졌다 끊일 듯 가늘어지는 산세의 흐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살아 꿈틀대는 용처럼 보이는 형상이니 산을 용이라 표현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풍수지리와 산을 이야기하면 기(氣) 흐름이 자연스레 동반한다. 기(氣)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대상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지 않는다 할 수 없는 대상이다. 전기(電氣) 자체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엄연히 존재함을 인정하듯 지맥을 타고 흐르는 기도 눈으로 확연히 규명하지 못하지만 엄연히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란 말이 있듯 기 또한 예외는 아닌 듯 하다. 영축산의 넘치고 솟구치는 기가 거침없이 아래까지 전이되면 그 넘치는 기가 화로 나타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영축산의 거침없는 기 흐름을 숨 고르듯 잠시 멈추거나 흐름을 더디게 하며 완급의 조화를 이루는 곳이 있으니 그 자리가 바로 백운암이 들어선 자리다.

영축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산세가 뚝 떨어지듯 거침없이 내려 뻗었다. 물이라도 한 방울 떨어트리면 그냥 아래까지 쏟아질 듯하다. 그런 급경사의 가파름에 매듭처럼 평지를 이루고 흐름의 완급을 조화롭게 하는 작은 공간이 바로 백운암이 들어선 자리다.

백운암은 영취산 산문을 지나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갈림길에서 다리를 건너는 왼쪽으로 접어든다. 이곳에서 곧장 들어가게 되면 통도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포장된 계곡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야트막한 고개도 넘고 다리도 건너며 많은 암자들을 지나치게 된다.

백운암에서는 중건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불기 2547년 9월 24일 상량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운암에서는 중건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불기 2547년 9월 24일 상량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임윤수

약 40분가량 발길 재촉하며 걷다보면 극락암까지 쉽게 도착할 수 있다. 극락암을 지나면 비포장 도로를 걷게 된다. 산문부터 시작된 노송 숲이 끊이지 않으니 산사 찾는 길에서 누릴 수 있는 독특한 향과 안락함을 즐길 수 있다.

비포장 길을 걸어 비로암을 지나며 조금 더 오르다 보면 오름길이 점점 가팔라짐을 느끼게 된다. 오름만 가팔라지는 게 아니고 바닥도 점점 험상궂어 진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살을 꿰뚫고 들어올 듯 뾰족뾰족한 돌들이 땅에 박히고 뒹굴며 발걸음 조심하라 눈 부릅뜨고 바라본다.

오르는 길도 그렇지만 내려오는 길에 방심을 하지 말라 당부하고, 그렇게 하였다간 정말 야단이라도 칠 듯 그런 기세만큼 백운암을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다. 비포장이지만 차 한 대 갈 수 있을 만큼 넓었던 길이 끝나고 외줄처럼 이어지는 산길로 들어서 30∼40분쯤 걷게 되면 백운암에 도착하게 된다.

질긴 생명력을 일깨우듯 바위 틈새로 모질게 뻗어 나온 활엽수들이 고운 단풍을 입고 있다. 빤히 보이는 산 정상부에서 산 허리까지 내려온 단풍이 주변의 바위들과 조화를 이루니 가히 장관이다.

해발 800m쯤에 자리하고 있는 백운암(白雲庵)은 652년(신라 진덕여왕 6) 조일(早日)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 후 조선 시대가 되어 순조 10년인 1810년 침허(枕虛)가 중창하고, 1970년대에 경봉(鏡峰)이 후원하여 사세를 크게 확장하였다하나 백운암에는 법당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만 있을 뿐이다.

팔작지붕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불사되고 있는 법당은 금년내에 완공될 예정이라 한다. 법당이 완공되면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심신과 환희심을 줄 공간이 될 것이다.
팔작지붕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불사되고 있는 법당은 금년내에 완공될 예정이라 한다. 법당이 완공되면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심신과 환희심을 줄 공간이 될 것이다.임윤수

백운암은 의식이 중요시되는 일반 절들과는 달리 스님들이 더 큰 깨우침을 얻기 위한 보림의 장소였을 거라고 주지 만초(萬草) 스님이 설명하신다. 근대 불교계의 큰스님으로 꼽히는 경허, 만공, 경봉 스님 등의 수도처이기도 하지만, 특히 만공(滿空·1871∼1946) 스님이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은 초견성 장소이기도 하단다.

백운암에서는 중건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임법당(臨法堂)인 백운암은 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공양간이 건물 한 채에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래된 건물에 그때 그때 땜질식 보수가 반복되다 보니 안전까지 염려되어 2년여 전부터 백운암 주지로 주석하게 된 만초 스님이 불사원력을 세워 법당을 새로 짓고있는 중이다.

팔작 지붕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를 갖는 이 법당은 금년 내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뜯어낸 건축물은 법당 옆 작은 공간에 그대로 복원하여 백운암의 고색창연함을 기억할 사람들에게 기억이 어색하지 않은 전통 맛을 그대로 전하려 노력한다고 한다.

주지 스님이 임시 사용하고 있는 2평 남짓한 조립식 건물의 요사채를 찾으니 차 한잔에 잘 익은 홍시를 내 주신다. 맑고 발갛게 익은 홍시를 한입 물으니 단맛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차가움이 있다.

백운암에 얽힌 설화나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부탁하니 통도사 산신각에서 20m 남쪽 응진전 바로 옆과 극락전 옆 북쪽에 있는 호혈석(虎血石)에 얽힌 전설을 들려 주신다.

공양간과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를 겸하고 있는 고 건축은 산을 오르던 사람들에겐 잠시 다리 걸치고 쉴 수 있는 쉼터로 제공되고 있었다.
공양간과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를 겸하고 있는 고 건축은 산을 오르던 사람들에겐 잠시 다리 걸치고 쉴 수 있는 쉼터로 제공되고 있었다.임윤수

때가 분명치 않지만 백운암에는 젊고 잘생긴 홍안의 젊은 스님이 홀로 기거하며 수행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훌륭한 강백이 되기를 희망하던 이 스님은 경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음은 물론 아침, 저녁 예불을 통해 자신의 염원을 부처님께 성심껏 기원하고 있었다.

산기슭 군데 군데에 잔설이 남아 있지만 봄나물 파릇파릇 솟아오던 어느 봄날에도 스님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저녁 예불을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아 경을 읽고 있었다.

날이 저물면 인적이라곤 찾을 수 없는 그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나는가 싶더니 아리따운 아가씨의 음성이 들려왔다. 조금은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하며 문을 연 스님은 이번엔 귀가 아니라 눈을 의심했다.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처녀가 봄나물 가득한 바구니를 든 채 서 있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나물을 캐러 나왔다가 그만 길을 잃은 처녀가 이리저리 헤매면서 길을 찾다 백운암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이 막막하던 차 불빛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달려온 처녀는, 어렵더라도 하룻밤 묵어가도록 허락하여 줄 것을 애절하게 호소하였다.

그러나 방이 하나뿐인 곳에서 수행중인 젊은 스님으로서는 매우 난처한 일이었다. 그러나 딱히 어찌할 도리가 없던 스님은 단칸방의 아랫목을 그 처녀에게 내주고 윗목에 정좌한 채 밤새 경전을 읽었다.

새로 짓는 법당지붕에 영취산 가을은 이렇게 걸려 있었다.
새로 짓는 법당지붕에 영취산 가을은 이렇게 걸려 있었다.임윤수

스님의 경 읽는 음성은 매우 낭랑했다. 고요한 산중에 울려퍼지는 경 읽는 소리는 산울림처럼, 속삭임처럼 처녀를 사로잡았다. 처녀는 그날부터 스님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었다. 처녀는 날이 밝자 집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은 늘 백운암 스님에게 가 있었다.

스님을 흠모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깊어가 마침내 처녀는 상사병을 얻게 되었다. 마을 권세 가문의 무남독녀인 처녀는 좋다는 약을 다 썼으나 백약이 무효이니 부모님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식음을 전폐하고 좋은 혼처가 나와도 고개를 흔드는 딸의 심정을 알지 못하는 처녀의 어머니는 안타깝기만 했다.

병석의 딸을 어르고 달래어 어렵게 지난날 백운암에서 만났던 젊은 스님의 이야기와 함께 이루지 못할 사랑의 아픔을 숨김없이 듣게 되었다. 생사의 기로에 선 딸의 사연을 알게된 처녀의 부모는 자식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백운암으로 그 스님을 찾아갔다.

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한 살림 차려 줄 것을 약속하며 혼인을 애걸하여도 젊은 스님은 결심을 흩뜨리지 않고 경전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죽음에 임박한 처녀가 마지막으로 스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 하였으나 스님은 그마저 거절하고 말았다. 처녀의 애틋한 마음을 여러 차례 전해들어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지만 강백이 되고자 하는 뜻에 어긋날까 고민 끝에 냉정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법당 옆 작은 공간에는 뜯어낸 법당자재를 이용하여 요사채로 쓰여질 건물이 시공되고 있었다. 이 건물은 백운암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법당 옆 작은 공간에는 뜯어낸 법당자재를 이용하여 요사채로 쓰여질 건물이 시공되고 있었다. 이 건물은 백운암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임윤수

얼마 후 처녀는 사모하는 한을 가슴에 안은 채 목숨을 거두고 영축산 호랑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시간이 많이 지나고, 그 젊은 스님은 초지일관한 결과로 드디어 서원하던 강백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많은 학승들에게 경전을 가르치던 어느 날 강원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며 호랑이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큰 호랑이가 지붕을 넘나들며 포효하고 문을 할퀴며 점점 사나와지기 시작하였다.

호랑이의 행동을 지켜보던 대중들은 대중 속에 누군가와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는 데 중지를 모으고 각자 저고리를 벗어 밖으로 던지는 것으로 그 연이 누구와 이어졌나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밥상에 오른 싱싱한 쌈배추가 입맛을 자극한다. 쿡 찍은 된장과 아삭아삭한 맛이 별미다. 사진의 오른쪽이 주지인 만초스님으로 염불소리가 너무 맑고 매끈하였다.
밥상에 오른 싱싱한 쌈배추가 입맛을 자극한다. 쿡 찍은 된장과 아삭아삭한 맛이 별미다. 사진의 오른쪽이 주지인 만초스님으로 염불소리가 너무 맑고 매끈하였다.임윤수

저고리를 벗어 하나씩 밖으로 던졌으나 호랑이는 하나씩 받아 그냥 옆으로 던지더니 강백 스님의 저고리를 받더니 마구 갈기갈기 찢으며 더욱 사납게 울부짖는 것이었다.

대중들이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쳐다보자 강백 스님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속세의 인연인가 보다 하고 앞으로 나서며 합장 예경하고 호랑이가 포효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호랑이는 기다렸다는 듯 그 스님을 입으로 덥석 물고 어둠 속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음날 날이 밝자 산중의 모든 사람들은 스님을 찾아 온 산을 헤맸다. 깊은 골짜기마다 다 뒤졌으나 보이지 않던 스님은 젊은 날 공부하던 백운암 옆 등성이에 상처 하나 없이 누워 있었다. 그러나 강백 스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남성의 '심볼'은 보이지 않았다.

미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호랑이로 태어난 처녀는 살아생전 흠모하던 스님과 그렇게라도 연을 맺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 통도사에서는 호랑이의 혈(血)을 눌러야겠다 하여 큼직한 반석 2개를 도량 안에 놓게 되었으니 이를 '호혈석(虎血石)' 또는 '호석(虎石)'이라 부르며 산신각에서 20m 남쪽 응진전 바로 옆과 극락전 옆 북쪽에 남아 있다.

구전되는 전설과 통도 팔경 중 하나로 꼽히던 저녁 무렵의 아름다운 경치와 백운명고 소리를 설명해 주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금수(金水)와 은수(銀水)를 옛날이야기 하듯 들려주신다.

해지고 주변이 어둑해져 속세에 전등이 밝혀지니 산아래 마을이 더 한층 또렷이 보인다. 예전에 울렸던 명고를 다시 울릴 수 있다면 어스름 풍경과 어우러져 환상을 이룰 듯 하다.
해지고 주변이 어둑해져 속세에 전등이 밝혀지니 산아래 마을이 더 한층 또렷이 보인다. 예전에 울렸던 명고를 다시 울릴 수 있다면 어스름 풍경과 어우러져 환상을 이룰 듯 하다.임윤수

사시법회(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에 올리는 불공)가 시작되고, 카세트를 틀어 놓은 듯 너무 맑고 매끄러운 염불 소리가 들려오니 귀를 의심하게 되었다. 매끄러울 뿐 아니라 호소하듯 애원하듯 애절하게 넘고 넘기는 염불 소리가 사람을 홀릴 듯 하다. 혹시나 하는 의구심을 떨구지 못해 법당으로 들어가니 만초 스님이 초하루 법회를 집전하며 염불을 하고 계셨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귀동냥하듯 많은 스님들의 염불 소리를 들어봤지만 이처럼 맑고 매끈한 염불 소리는 처음인 듯 하다. 스님이 들려주던 전설 속의 그 젊은 스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이 스님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하게 마음을 사로잡았다.

법회 끝나고 푸성귀 가득한 점심 공양까지 맛나게 먹게 되니 산사 찾은 작은 발품이 커다란 복으로 내려진 듯 하다. 관광 삼아 지나치듯 통도사를 들려보는 것도 좋지만 통도사를 외호하고 있는 영축산 8부 능선에 자리한 백운암엘 들리는 발품쯤 기꺼이 팔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맑은 주지 스님의 염불 소리가 영혼을 맑게 해 주고, 운 좋게 공양이라도 하게 되면 덤처럼 얻어진 맛남이 삶을 행복하게 해 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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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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