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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의 베트남 전쟁 참전 경험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지만 내 인생의 매우 소중한 경험으로 생각하며 그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겨보곤 한다.
베트남 전쟁을 회억하자면 미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 속에 몸을 놓고 있던 그 당시부터 비롯된 일이다. 미군부대가 사용하다가 떠난 기지를 이양 받아 생활하게 되면서 나는 더욱 극심하게 미국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에도 진행되고 있는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에 관한 많은 논의들 속에는 미국의 '용병'이었다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울러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들 중에는 이 용병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와도 같은 거부감과 모멸감을 갖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으로 참전했고, 피 흘려 조국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자부심은 5·60대 연령층의 보수적인 체질과 맞물려서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자부심이 과연 온전히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겸허하고도 폭넓은 성찰은 참으로 필요하다.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이라는 견해와 명분이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존재할 수 있었지만, 이데올로기적인 관점과도 결부되는 그것은 한 시절의 명분일 뿐 지속 가능한 보편적 정의(定義)는 아니다. 또한 조국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부분은 실체적 사실로 말미암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반면 바로 거기에서 용병이었다는 시각도 상승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월남 땅에 몸을 놓고 있던 그 당시부터 두 가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는 미국이(아울러 우리 한국군이) 이 기이한 전쟁에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전선이 명확하지 않은 '게릴라 전쟁'의 특성을 명확히 체감하고 있었다. 미국이 온갖 신무기를 투입하고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붓는다고 해도 게릴라 전쟁의 특수성 앞에서는 그 한계가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한 번은 작전을 마치고 정글에서 살아 돌아왔을 때 연대본부 옆의 이동외과병원 영현실 밖 너른 마당 뙤약볕에 시트를 덮고 쭉 누워 있는 수십 구의 시신을 보았다. 셀 수조차 없는 많은 수효의 시신을 내 눈으로 직접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 나는 다시 한번 미국이(아울러 우리 한국군이) 이 전쟁에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고, 절대로 이길 수 없으리라는 생각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의문은 미국이 진정으로 세계 평화를 위하는 정의로운 나라이고 지혜로운 국가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참으로 뚜렷한 의문이었고, 급기야는 미국이 실수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일요일 투이호아 성당에 갔을 때 대학물을 먹은 대대본부의 군종병 행정병들과 그런 얘기를 나눈 기억이 있고, 월남에서 돌아오던 미군 수송선의 갑판 위에서 내 직속상관(중대장)이었던 신모 대위와도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월남에서 떠나올 때 수송선 갑판 위에서 육군 대위와 병장 사이에 가지게 된 조금은 재미있기도 한 결론이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온전하다. 미국이 과연 진정으로 세계 평화를 위하는 정의로운 나라이고 지혜로운 국가인가라는 의문은 우리의 삶 속에서 평생 동안 유지될 것이고, 때로는 그 의문에 몹시도 시달리게 될 거라는 결론이었다. 그 이상한 결론을 도출해 내며 신 대위와 웃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장교와 사병의 그 묘한 의기투합이 다시금 조금은 즐거운 웃음을 머금게도 하면서….
이라크 파병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요즘 나는 30여 년 전의 베트남 전쟁 시절을 다시금 회억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파병 찬성론자들의 논법, 특히 전투병력 파병을 독려하는 조선일보의 논조를 살피며 또다시 괴로운 의문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파병론자들과 조선일보의 주장 속에 가장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국익'이라는 관점이다. 국익이라는 관점은 대체로 두 갈래로 구분되는 것 같다. 하나는 정치적 국제 사회적 이익이고, 하나는 경제적 이익이다. 두 가지 모두 미국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안되는, 절대 부동의 것으로 여기고 신의와 동맹의 모습을 확실히 하는데서 얻어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국익 논법'에 동의하지 못한다. 참으로 허무맹랑한 논법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관점의 경우,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의 오늘의 관계만을 놓고 국익이라는 논법이 동원되는 현상에서 그들의 협소한 시야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세계를 주름잡는 최강대국이기는 하지만 지고지선(至高至善)의 나라인 것은 아니다.
후세인 정권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 일방적으로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국제사회가 미국의 힘에 맥없이 좌지우지되는 시대도 아니다.
북한과의 오늘의 이데올로기적 대치 상황만을 생각하고 미국의 영향력에 의존하려는 자세에서 국익을 논하는 것은 결코 미래지향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 자세가 우리의 창조적인 삶은 가장 자학적으로 침해한다. 예나 지금이나 국제 사회에서 귀한 덕목 중의 하나는 민족의 자존심이다. 민족의 자존심을 지니지 못한 굴절된 자세를 보이면 보일수록 우리는 미국한테서도 더욱 무시를 당할 수밖에 없다.
30여 년 전 베트남 전쟁에 참전을 할 때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대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외피 속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는 어느 정도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국제 역학 관계에서 전투병력 파병이라는 부작용이 최소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매우 다르다. 후세인 정권과 관련하는 미국의 온갖 명분 동원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에는 참으로 복잡하고도 다양한 이해들이 결부되어 있다. 이라크라는 한 개 나라의 저항 세력만이 문제인 것이 아니다. 아랍권은 물론이고 전체 이슬람 문명권의 종교적 심정적 이해까지 결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늘의 파병과 추상적인 국익이 훗날 엄청난 부작용과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소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면의 국익 논법의 추상성과 허무맹랑함에 대해서는 지난 10월 21일 <오마이뉴스>에 오른 정욱식 평화-통일문제 담당기자의 '파병이 경제성장을 가져온다?, 무책임한 경제실리론에 대한 비판'이라는 글이 명명백백하게 제시하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다.
다만 나는 경제적 국익 논법이 얼마나 민족의 자존심을 망가뜨리고 부도덕한 것인가를 첨언하고 싶다. 30여 년 전의 베트남 전쟁 상황과는 많이 다르지만, 지금의 이라크 파병과 경제적 국익을 등식화하는 논법에서도 나는 대뜸 케케묵은 '용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30여 년 전의 그때로부터 우리가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한 것만 같은 암울한 느낌에 젖지 않을 수 없다.
옛날 30여 년 전에 우리가 베트남 전쟁에 이끌려 들 때는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다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결부되는 명분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과거의 파월 용사들이 오늘에도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주어진 셈이다.
그런데 오늘의 이라크 파병에는 우리가 무슨 명분을 내세울 수 있을지 지극히 모호하다. 지금은 이데올로기적인 관점도 성립될 수가 없다(아마도 조선일보 같은 수구 냉전 세력들은 이 점이 가장 아쉬운 대목일 것이다). 있다면 오로지 미국의 패권주의뿐이다. 미국 석유재벌들의 탐욕과 무기상들의 이해도 복합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등덜미를 잡힌 듯이 휘말리는 것이 과연 온전한 명분이 될 수 있을까?
30여 년 전 베트남 전쟁 때는 분명 확실한 경제적 국익이 있었다. '우리의 목숨과 피가 국가 경제 발전을 크게 도왔다'는 파월 용사들의 주장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내가 같은 처지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도 경부고소도로를 달릴 때마다 내가 파월장병 시절을 회상하는 것을, 그리고 30여 년 전 부산항으로 귀국하여 처음 경부고속도로를 타며 가졌던 슬프고도 뿌듯한 감회 같은 것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라크 파병 논의에서 활개를 치는 경제적 국익론을 보며 나는 그들의 불순한 저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도 경제 문제에 가장 고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에 따른 경제적 국익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늘의 경제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전망들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일까? 나는 경제적 국익론자들의 전투병력 파병 주장 속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문제를 뻥튀기고 호도하여 계속 나라를 어렵게 만들려고 하는 음흉한 저의를 읽는다.
미국의 패권주의는 21세기를 사는 오늘에도 상당히 무모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 미군의 가공할 신무기의 위력과 그 엄청난 물량에 감탄도 하고 괜히 주눅도 들었지만, 미국이 반드시 손쉽게 최종적인 승리까지 거머쥐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이라크군의 괴멸(?), 바그다드의 이른 함락 등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급기야는 후세인이 미국에게 일차적인 승리를 안겨 준 다음 게릴라전을 전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베트남과 이라크는 정글 등 지리적인 조건이 다르지만, 이라크는 테러 성격의 게릴라전을 수행하기가 더욱 좋은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미국이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거나 과소 평가했다면 미국은 의외로 치밀하지 못한 일면을 드러낸 셈이 된다. 베트남전의 경험과 교훈을 그들이 온전히 내면화하지 못한 것은 아메리카 인디언 토벌의 역사와 함께 그들의 심성 안에 기본적으로 자리한 공격적이고 패권적인 기질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글을 쓰기 전에 가족들에게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라크 재건과 평화 유지를 위한 비전투병력 파견은 괜찮아도 전투병력 파병은 절대로 안 된다는 아내의 생각이야 전에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와 아이들의 생각을 확실하게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중1인 아들녀석은 잘 모르겠다며 분명한 대답을 피했고, 고1인 딸아이는 인터넷을 통해 많은 논의들을 보았지만 자기로서는 확실한 파병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토론을 해보았는데 파병을 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생각은 확실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파병 반대 이유를 은유적인 말로 표현했다. "옛날에 애비가 월남에 갔을 때 내가 얼마나 맘졸이며 산 줄 알어? 하루도 편케 자보지를 못했어. 조금 이상한 꿈만 꾸어도 소스라쳐 일어나게 되고…."
그리고 어머니는 월남에서 죽은 아들의 목숨 값인 월 50만 원의 돈으로 살아가면서도 늘 그 사실을 슬퍼한다는 교우 할머니 얘기를 다시 하며 불쌍한 할매라는 말을 했다.
지난달 31일 승합차 한 대로 고장의 여러 지인들과 서울 나들이를 했다. 태안문화원 정우영 원장을 비롯하여 이사·고문·자문위원 열 분이었는데, 향토사학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었다. 과천 정부청사 근처에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방문을 시작으로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 안에 있는 '규장각' 등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이라크 파병에 관한 토론을 하게 되었다.
윤형상 전 태안군수와 정우영 문화원장 등 여러분이 파병에 선뜻 찬성할 수 없는 이라크 현지 사정을 설명하면서도 '경제적 국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하지만 내 쪽의 발언을 주의 깊게 듣고 나서는 내 생각에 동의를 해주었다.
흙빛문학회원인 수필가 김영규 선생(70)은 '민족 자존심'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족 자존심 문제를 많이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며 그는 민족 자존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과거의 친일에다가 광복 이후 줄곧 사대주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행태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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