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기도'의 기쁨 속에서

등록 2003.11.04 10:27수정 2003.11.0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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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자로서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 참으로 많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나로 하여금 오늘도 기도하며 살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는 은혜다. 또 하나는 나로 하여금 세상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에 '통공(通功)'의 교리를 베풀어주신 은혜다.


나의 백화산 묵주기도

당뇨와 통풍 등 심각한 질병을 갖기 훨씬 전부터 고장의 명산 백화산을 오르내리며 묵주기도를 해버릇한 세월이 20년도 넘었지만, 요즘에는 산을 오르면서 15단, 내려오면서 15단, 도합 30단씩의 기도를 바친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다 보니 나로 하여금 매일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가운데서 내 몸의 질병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나의 '백화산 묵주기도'에는 각단마다 정해진 '지향'이 있다. 30단의 30가지 지향들을 살펴보면 절반이 넘는 열여섯 가지가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중에서 유족 등 산 이들을 위한 지향이 곁들여져 있는 경우가 열한 가지고, 세상 떠난 이의 개별적인 이름이 불리어지는 경우는 다섯 가지다.

기도에는 감사, 찬미, 참회, 청원 등 네 가지 요소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이 기본을 이루고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죄를 참회하는 마음 가운데서 하느님께 청원을 드려야 그 청원이 온전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기도의 네 가지 요소를 잘 살핀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속성상 우리의 기도에는 '청원'의 성격이 좀더 결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그 청원이 이 세상과 남을 위한 것이라면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내가 매일같이 남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기쁘고 감사하다.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내가 매일같이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 리 없겠지만, 내 기도가 하느님에 의해 어떤 형태로든 그들에게 득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은, 기도하는 처지인 내가 결코 무시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큰 '희망'이요 '확신'이다.

연옥 영혼들을 위한 묵주기도


그러나 이승의 산 이들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때로는 어떤 한계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다 되는 걸까? 이런 기도가 그의 현실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될까? 이런 기도보다는 그를 실질적으로 돕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 속에서 내 무력감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에는 그런 현실적인 부담 따위가 전혀 필요 없다. 무엇에도 구애받을 필요 없이 나는 그저 오로지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된다.

나는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즐겁다. 어떤 형태로든 나와 이승에서의 인연이 있는 영혼들을 최대한 많이 기억하며 기도하려고 애쓴다. 한편으로는 이승에서의 인연이 전혀 없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하느님을 모르고 믿지 않고 산 사람들을 위해서도 많이 기도하는데, 그런 기도에서는 더욱 각별한 기쁨을 얻는다.

비록 하느님을 모르고 믿지 않고 산 사람일지라도, 그들의 영혼이 무조건 지옥으로 간 것은 아니고 연옥에 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내게 큰 기쁨과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그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들의 이승의 인연지기들 중에 그들을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이 없으리라는 것이 거의 확실할 경우, 내 기도가 그 영혼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백화산 묵주기도' 30단의 제4단 지향은 '선친 지동환 안셀모 님의 영혼과 모든 조상, 친척, 친지들과 모든 은인들의 영혼을 위하여'이다. 이 지향으로 제4단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나는 내 선친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곤 한다. 청년 시절에 인생에 대한 많은 의문과 고뇌 과정을 거쳐 자신의 의지로 하느님을 찾고 천주교 신자가 되신 선친에 대한 존경심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내가 오늘도 선친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므로, 또 나를 선친의 영혼을 의해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드셨으므로, 내 선친은 인생을 가장 성공적으로 사신 분이라고 확신한다.

조상님들을 위한 미사 봉헌

나의 모든 조상님들 역시 오늘도 나의 기도 속에서 명확히 존재한다. 그들 중에 그리스도교 신자는 아무도 없다. 예수님을 모를 수밖에 없었던 분들이다. 그렇더라도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그들이 모두 지옥에 갔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내 8대조부모님 사후에 나라에서 '효열정문'을 세워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착하고 순박하게 살았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그러므로 내 조상님들이 대부분 지옥이 아닌 연옥에 가셨을 것으로 믿고 그 조상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내게는 큰 즐거움이다.

연옥의 내 조상님들이 오늘의 이승을 살고 있는 천주교 신자 자손의 기도 덕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기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사다. 미사가 무엇인지를, 미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안다면 세상 떠난 영혼들을 위한 미사 봉헌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설이나 추석에 지내는 '합동위령미사'에는 '예물봉투'를 비교적 많이 사용한다. 지난 추석에도 연령들의 이름을 다섯 줄씩 적을 수 있는 예물봉투를 네 장 사용했다.

11월은 '위령의 달'이다. 나는 이 위령의 달에는 더욱 열심히 '백화산 묵주기도' 30단을 바치며 생활하려고 한다. 그리고 명절 '합동위령미사'에 사용했던 것만큼은 예물봉투를 이번 위령의 달에도 사용하려고 한다. 그것이 내 삶의 중요한 몫이기에….

*기도에는 또 중요한 세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는 기도의 내용과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둘째는 내 기도를 하느님께서 꼭 들어주시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지속적이고 항구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늘 이 세 가지 사항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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