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자로 가지런히 놓인 황금 알곡

[산골마을 가을걷이 풍경 6] 70년대 이른 새벽부터 벼 베는 산골 가족 <1>

등록 2003.11.06 11:14수정 2003.11.0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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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베기-이제 노인들만 남은 가을입니다.
벼베기-이제 노인들만 남은 가을입니다.김규환

왜 이제 벼 베는 이야기냐고요?

'벼 수확이 끝난 시점에 웬 벼 베기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남부지방은 지금쯤 벼 베기가 한창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1979년 10월 26일에야 낫을 들고 논으로 들어갔으니까요.

왜냐하면 가을에 보리와 밀을 파종하고 봄에 모내기가 가능한 2모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손도 그나마 넉넉해서 일년 두 번 농사를 지을 수 있었지요. 벼, 보리, 밀과 대마(大麻) 삼을 심어 한 톨로 보릿고개를 넘느냐 죽느냐 하는 엄중한 시절이었으니 빈땅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가을걷이가 늦어져 눈 오기 직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눈 오는 1, 2월에 타작하는 풍경은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답니다.

마당에 낟가리를 모아 쌓아두었던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따라서 만생종(晩生種) 늦은 나락을 심으면 지금쯤이 수확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걸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타작은 따로 다룰 생각입니다. / 김규환



문전옥답이 따로 없네요. 장성 금곡영화마을에서
문전옥답이 따로 없네요. 장성 금곡영화마을에서김규환
황금빛 시골 들녘

여느 때나 가을 들판은 황금빛이다. 다락 논배미는 구불구불 뱀, 장구 모양이다. 그래도 철을 어길 수 없는가 보다. 여름 가뭄과 태풍을 잘 이기고 누렇게 고개를 숙였다.

해발 400여m 산골짜기 논에는 한여름에도 찬물이 들어와 성장을 멈춘 거나 마찬가지니 늦가을이 되어도 완전히 익지 않고 청초(靑草)로 남아있다. '갯산'(논에 모내기를 하고 그 안에 찬물을 조금이라도 이리저리 돌려 수온을 상승시키려는 행위)을 쳐서 물길을 돌려보지만 허사다. 익더라도 쭉정이가 꽤 있다.

그 뿐이면 다행이다. 익은 벼도 한 이삭에 너른 들판의 1/4 밖에 달려 있지 않으니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있다. 그래도 탱글탱글하기 그지없다. 볍씨 담글 때 소독약을 써도 이로울 게 없는 곰팡이 균 깜부기가 더덕더덕 붙어 있다.

벼는 공판 낼 통일벼와 유신벼를 먼저 수확해 수매를 내야한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바닥에 아까운 벼가 나뒹굴었으니 서둘러 베지 않으면 안 된다. 조생종 1차 작업을 마치면 일감이 더 기다리고 있다. 배추 묶고 서리 오기 전에 고구마 캐서 두고 쉴 틈 없이 다시 새로운 농사를 시작하는 심정으로 벼를 베고 또 벤다.


일반 벼는 익는 시기도 늦었고 키도 무척 컸다. 손으로 베는 데도 꽤 더뎌 한 깍지 베는데 여간 공력(功力)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찰벼는 까끄라기까지 쏙쏙 쑤셔대니 왼팔과 얼굴, 눈 따위의 노출된 피부는 온전할 리 없다.

피사리를 하지 않으면 누군가 논배미를 지나다 혀를 끌끌 차며 "저렇게 농사지으려면 그만 둬야지!" 하는 소리가 들리니 피 씨가 익기 전에 몇 번이고 골라서 뽑고 낫으로 잘라냈으니 들 논에 피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곶감
곶감김규환
벼 베러 다들 나가고 마을은 텅 비었다

사람들이 모두 마을을 비운 사이 마을 뒷산에 올라 땅을 후벼파며 벌레와 지렁이를 잡아먹으며 한가로이 오후를 보내고 있는 스무 마리 남짓한 닭 신세가 상팔자다. 포대기에 싸매진 아이도 졸음이 몰려오는 시각이다.

갑자기 온 동네가 떠나갈 듯 "꼬꼬댁 꼭꼭" "꼬꼬댁 꼭꼭" 요란하게 닭이 울어댄다. 텅 빈 푸른 하늘을 유유히 날던 매가 암탉 한 마리를 채갔기 때문이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 달려가 본들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집에 남아 있던 노인은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에 의지해 다 큰손자들이 따준 감을 벌써 세 바구니 째 깎아 껍질 따로 말리고 싸리나무 꼬챙이에 꽂는다. 보릿자루라도 꿔다 놓을 판에 들로 나가 일손을 돕지는 못할 망정 집에서 부지런히 손놀림을 해야 식구로서 체면이 선다.

"영감, 빤드시 꽂아야제 그게 뭐시다요?"
"눈이 침침해서 그려."
"글도 제대로 안 꽂으면 나중에 찌우뚱해서(기우뚱해서) 못 쓴당께라우~"
"알았다마시. 감똘개나 담장 위에 위에다 올려놓고 오더라고~"
"고샅으로 떨어지면 안 됭께 의잔(그늘)에다 갖다 놓께라우."

아직 따지 않은 감은 이제 잎이 죄다 떨어지고 붉어서 홍시가 더 많다. 대추벌이 홍시를 쏘고 갔는지 껍질을 "쫘악" 벌려 밑으로 흐를 태세다. 이윽고 까치 떼 날아와 달콤한 홍시를 "쪽쪽" 빨아먹는다.

"워~"
"후여~"

소릴 질러 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간짓대를 들 힘만 있었다면 쉽게 쫓아버렸으리라. 끝내 배를 채우고서야 감나무를 떠났다. 외양간에는 암소가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서리가 내렸습니다.
서리가 내렸습니다.김규환
서리 깔린 맑은 날 문전옥답으로 짐 챙겨 나서고...

서리가 "쫘악" 깔려 오싹한 아침나절. 긴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6시 반에 집을 나섰으니 잠이 덜 깬 셋째형과 나는 하품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날씨가 얼마나 맑고 더울 건지 안개가 자욱하다. 걷히지 않은 안개 사이로 곡성군 석곡면 쪽에서 햇살이 몇 줄기 비출 뿐이다.

숫돌, 여벌 낫 챙겨 염소 한 마리 끌고 가 냇가에 매두고 논으로 향한다. 하루 새참 두 번에 점심까지 먹을 햅쌀밥-미리 벤 통일벼 한 가마를 미리 찧었다-에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이지만 보통 무게가 아니다. 그래도 식구대로 나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가니 별로 무거울 게 없다.

온 가족이 나서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 이처럼 좋은 날이 있을까? 쌀밥 한번 배불리 먹어 보는 게 소원이거늘 일련의 가을걷이 가운데 벼 베기만큼 큰 행사는 없다. 비로소 씨뿌리고 옮겨 심어 정성스레 가꾼 1년 농사의 대미를 장식하니 애 어른 할 것 없이 마음이 풍성하다.

"아부지 먼저 가께라우~"
"핑 서둘러 가거라."
"예, 막걸리 주전자도 갖고 가요."
"오냐. 알았다."

통일벼.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글자도 보이는 군요. 공무원들도 많이 거들었는데...
통일벼.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글자도 보이는 군요. 공무원들도 많이 거들었는데...김규환
산간 마을은 언제 날씨가 걷잡을 수 없게 바뀔지 모르니 다들 서둘러 추수를 끝내려 경쟁을 한다. 가을철에는 일손을 따로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식구 많은 게 부자였다. 품앗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집도 일찍 나간다고 했지만 마샌, 박샌네는 벌써 한 다랭이를 마쳐가고 있었다.

산골짜기에 있는 두 마지기 벼는 줄기가 건실해 여섯 배미나 되어도 벼 줄기가 잘 베어지지 않았다. '소로골' 세 마지기는 수렁논이라 몸에 흙탕물을 묻힐 각오로 바지도 벗고 일을 해야했으나 이날은 서말갖지기(세마지기 반) 문전 답(畓)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일년 내내 열심히 일해 보았자 20마지기 중 절반이 넘는 논은 우리 땅이 아니다. 마을에서 가까운 열두 마지기는 수곡(收穀)을 절반이나 물어야 하는 '묵갈림'이니 뒤주를 가득 채울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농사 규모는 남과 비교해 적지 않았지만 늘 쪼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가지런히 베어진 다랑지 논의 벼
가지런히 베어진 다랑지 논의 벼김규환
'X'자로 척 걸쳐지는 모양새에 따라 숙련 정도 알 수 있어

벼는 보리 벨 때와 사뭇 다르다. 대개 보리는 손을 비틀 듯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잡아 한 무더기가 되면 바닥에 뉘여서 한데 끌어 모은다.

나락은 몸 쪽으로 끌어 당겨 감싸서 네 포기, 혹은 여섯 포기를 한꺼번에 베는데 남자 실한 일꾼은 여덟 포기까지 쥐고 쑥쑥 당겨준다. 이삭이 바닥에 닿지 않아야 되는 벼 베기는 한 깍지 크기가 보리의 3할밖에는 안 되는 작은 주먹이었다.

여러 포기를 잡고 "쓱-" "둑-" "척-" 소리 경쾌하게 들리도록 논바닥에 낫을 바짝 붙인다. 간혹 흙이 베어져도 고운 흙 알갱이를 조금 건드릴 뿐 낫에 무리가 가는 일은 없다.

벼 베기는 놓여진 깍지를 보면 숙련도를 알 수 있다. 16포기에서 24포기까지 손아귀 크기와 숙달 정도에 따라 가지런히 꼭 쥐고 있다가 바닥에 놓자마자 'X'자로 척 걸쳐지는 모양새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 짐짓 하지 않아도 일정한 모양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벼 포기 위로 뒤집기 좋게 놓여진 노란 알곡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풍요함만을 잔뜩 모아둔 결정체다.

베자마자 남겨진 벼 포기에서 새순이 자라 올라온 듯 하다. 한 배미를 베고 새꺼리(새참)를 간단히 먹는 앞 뒤 참에는 낫을 숫돌에 갈아주시느라 아버지가 제일 바쁘다.

숫돌 집이 있어 다행이군요. 보통 숫돌보다 훨씬 단단하고 오래쓰는 금강석 같군요.
숫돌 집이 있어 다행이군요. 보통 숫돌보다 훨씬 단단하고 오래쓰는 금강석 같군요.김규환
언덕이나 맨 바닥에 숫돌을 푹 찔러 배 또는 한쪽 발로 받치고 쓱싹쓱싹 수회 반복하여 문질러 댄다. 앞뒷면이 허예지다가 서슬 퍼렇게 바뀐다. 낫은 오래 갈아준다고 잘 드는 것이 아니다. 결을 따라 갈되 웃 갈지 않아야 한다.

숫돌에 물을 쳐가며 갈아주면 심한 온도 변화로 인한 쇠 물러짐도 방지할 수 있다. 숫돌 닳아지는 물에서 석회석 냄새 마냥 비릿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마지막으로 숫돌 물을 말끔히 씻어내고 엄지손가락으로 날을 따라 쭈욱 밀어가다 보면 두껍던 손바닥이 베어지면서 약간 들어가면 잘 갈린 것이다.

"예 있다. 찬찬히 벼(베어)."
"예."
"자, 셋째 것도 각과라(갖고 와라). 낫이 잘 들어야 일이 수월한 것이여."
"예."

천지를 덮었던 서리가 깰 즈음 새참도 먹고 낫도 잘 들겠다. 일도 익숙해져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형 누나, 우리 내기할까? 나는 두 줄 잡아가고 형과 누나는 네 줄씩 가면 되겠네."
"그래. 근디 거시가 손 조심해야 한다. 알았제?"
"응. 큰형이랑 작은형은 여섯 줄 씩 빌 건가?"
"그래."
"뽀빠이 사내기~. 내가 일등 해야지."

왼손잡이 둘째형 옆에 있던 나는 옹색하기 짝이 없다. 몇 번을 베다가 불편하여 그 줄을 어머니께 넘기고 대신 어머니 자리로 가서 반드시 일등 하겠다는 일념으로 속도에 불을 붙였다. 낫질을 얼마나 빠르게 해댔는지 몸이 고꾸라지고 발걸음이 뒤따르지를 못한다.

조금 더 베어가고 있을 때 내 자리에 들쥐 집 하나가 있었다.

"엄마, 쥐새끼 있어요."
"그래?"
"누나 새앙쥐도 있다니까. 엄청 빨개."
"어디? 정말 징그럽다."
"뭐가 징그럽다고 그래. 귀엽기만 하구만."

벌써 늦가을이라 겨울철 지낼 집을 지었나 보다. 다섯 마리 새끼를 다 거느리지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뜬 어미 쥐가 사라진 방향 논두렁에 생쥐를 옮겨줬다.

"얼른 끼대와서 나락 벼야지 뭣들 허냐?"
"알았어라우."

일하다 밥 먹으면 왜 그리 맛있던지요. 지나가는 사람이나 인근에 있는 사람도 꼭 불러서 같이 먹었습니다.
일하다 밥 먹으면 왜 그리 맛있던지요. 지나가는 사람이나 인근에 있는 사람도 꼭 불러서 같이 먹었습니다.김규환
고수레하고 햅쌀밥에 먹는 밥 그리고 감 홍시

"어이~ 시장허구만."
"몇 시나 됐다요?"
"아까침에 정오뉴스 했응께 하마 1시는 됐겠구만."
"점때(점심 때) 놓치면 몸이 쉬 지운(지친) 것이여."
"아그들아, 밥 묵고 하자."
"알았어라우."
"금순이는 큰 양푼 들고 샘에 가서 물 좀 길러 오니라 와~."
"예."

신작로 너른 터에 한가지 씩 풀어놓는다. 밥바구리에 든 쌀밥은 길쭉하고 잘록한 햅쌀 통일벼로 지었다. 갈치조림에 멸치 젓갈 냄새 풍기는 무청 조금 들어간 생채, 파릇파릇한 배추를 고추 갈아 담근 김치, 호박고지나물, 새비(토하)에 애늙은호박을 넣고 조린 반찬, 고춧가루에 마른 멸치와 새우 넣은 콩자반 등 빠진 것은 별로 없다.

"꼬시레(고수레)!"

어머니가 밥과 찬을 조금씩 덜어 옆으로 정성스레 내려놓으면 아버지를 시작으로 밥을 먹었다. 네 살 짜리 동생까지 큰댁에서 데리고 왔으니 식구 수는 여덟이나 된다.

무척이나 깊은 그릇 고봉밥 한 그릇씩을 왼손에 쥐고 입이 터져라 밥 한 술 뜨고 국물 자작한 반찬 떠먹는다. 몇 숟가락 먹고 김치와 나물을 종류별로 넣고 둘둘 비벼 먹으니 꿀맛이다. 먹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 대신 20년 만에 벼를 베고 있는 글쓴이
할머니 대신 20년 만에 벼를 베고 있는 글쓴이김규환
"엄마, 목 마르요."
"긍께 짐치국물도 떠먹음시롱 먹어야제."
"여깄다. 물 마셔. 둘째는 밥 더 주끄나?"
"예, 쪼끔만 더 주싯쇼."

일하다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들에서 먹는 밥도 맛있다. 소풍 온 듯 맑은 바람에 온 식구가 모여 앉아 먹는 밥은 산해진미(山海珍味)가 부럽지 않다.

"어~ 잘 묵었다."

아버지는 물 대신 찌그러진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한잔 따라 마신다.

"엄마, 물 속에 뭔 벌레가 있는디라우."
"그새 벼멸구가 들어왔는갑다. 훅 불어불고 먹어 상관없응께."
"예."
"글고 감홍시 한나씩 묵어라."

배불리 먹고 홍시 하나씩을 먹으니 배가 터질 지경이다. 점심 먹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논두렁에 누워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잠시 누워 있으니 졸음이 솔솔 몰려왔다. 이 때 어머니가 주섬주섬 그릇을 포개 놓고 먼저 일을 시작하셨다. 베 베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올 뿐 네 아들은 자꾸 꿈결로 녹아드는 꿀맛 같은 잠을 즐기고 있다.

"야! 싸게 안 오고 뭐혀? 잠자로 왔냐?"
"예."
"얼른 비고 '비까리'로 가야혀. 다들 낫 잘 안 들면 이리 갖과라."

1시 반이 넘어 오후 일이 시작되었다.

양말도 안 신고 벼를 베고 계시길래, "그러다 발 베면 어쩌시려구요?" 했더니 "그런다고 안 베간디?" 하신다. 장성 금곡영화마을에서
양말도 안 신고 벼를 베고 계시길래, "그러다 발 베면 어쩌시려구요?" 했더니 "그런다고 안 베간디?" 하신다. 장성 금곡영화마을에서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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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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