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멜 표류기>서해문집
"매일 우리는 고관들의 집을 방문하도록 명령받았는데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우리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우리가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과도 같다는 소문을 퍼뜨렸던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무언가를 마시려면 우리가 귀 뒤쪽으로 코를 돌린다든지, 머리카락이 금발이기 때문에 인간이라기보다는 수중동물처럼 보인다든지 등등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책 <하멜 표류기>는 고전을 발굴하여 쉬운 언어로 전달하고 우리 고전을 보급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된 <오래된 책방> 시리즈 중 하나이다.
하멜이 조선에 표류하여 13년 이상의 체류 기간 동안 우리나라를 보고 느낀 것에 대한 기록은 오래된 네덜란드어로 출판되어 있다. 그 기록들을 기초로 하여 사실적이고 고증된 내용을 토대로 한 영어판 책을 번역한 것이 바로 이 책 <하멜 표류기>이다.
이 책은 17세기 거의 최초로 우리나라를 서양에 알린 하멜을 비롯한 네덜란드 선원들의 조선 체험기라는 점에서 매우 큰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지금까지의 하멜 일행의 이야기가 사실적인 것들보다 과장되고 꾸며진 내용들이 많아 좋은 책을 선별하기가 어려웠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쉬운 언어 표현을 통해 하멜의 체류 사실을 역사적으로 접근하고 사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가치가 있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하멜의 일지가 독자들을 즐겁게 만드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멜의 일지를 대하는 많은 독자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그가 미지의 이교도 국민들과 어디에서 부딪히건 간에 자기와 동료들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 점이다.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고 관찰을 적은 그의 꾸밈없는 태도는 그의 성실성을 보여 준다. 그의 일지 어느 곳에도 고의적인 오기는 보이지 않는다. 혹 실수가 있다면 그것은 정직한 실수이다."
이처럼 정직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조선을 설명하고 있기에 17세기 조선의 모습을 알려 주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하멜이 처음 표류하여 정착한 곳은 제주도였는데, 제주도민들이 그의 일행을 처음 만났을 때의 당혹감이란 아마 낯선 동물을 만났을 때의 느낌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처음 이들을 본 제주도민들은 놀라서 도망가거나 가까이 가지 못하고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 보기만 했다고 한다. 겨우 도를 관할하는 목사에게 인도된 이들은 음식 등을 제공받고 관사에 머무르게 된다.
하멜 일행의 소망이란 일본의 나가사키를 가서 본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당시 조선의 방침은 "한번 들어온 외국인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이상한 내용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울로 연행되어 가고 거기서 훈련병으로 일하게 된다.
몇 번의 탈출 시도를 하지만 매번 좌절되고, 그 때문에 전라도의 해남 지방으로 유배까지 당한다. 그곳에서 겪는 삶의 모습은 그 당시 조선의 다른 평민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흉년이 들어 곡식을 구할 수 없어 배고픔을 겪고, 때로는 관리들의 폭정 때문에 고초를 당하는 것이다.
결국 오랜 노력 끝에 표류했던 일행 중의 일부가 일본으로 탈출하는 데에 성공하게 되고, 일본에서는 이들을 본국으로 송환한다. 주목할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하멜 일행을 그저 이상한 인종의 사람들 정도로 취급한 반면 일본에서는 융숭한 대접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들을 환대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선 해상 국가로 새롭게 발돋움하기 시작한 일본의 입장에서 이들은 좋은 정보 제공자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일본 사람들은 조선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캐물었다고 한다.
결국 우리의 경우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고 국방을 튼실히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이러한 기회 상실이 훗날 문호 개방 시기에 많은 혼란을 초래했음을 고려하면 일본의 철저한 정신이 부럽기도 하다.
하멜이 네덜란드로 돌아가서 남긴 조선에 대한 기록은 거짓이 없고 사실적인 편이다. 그 기록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덕분에 우리는 17세기 우리의 모습을 되짚어 볼 수 있다. 그것은 이방인의 눈으로 본 조선의 모습이기에 더욱 가치 있다.
외부인의 눈으로 본 우리의 삶의 방식과 풍습, 가치관과 생활상 등에 대한 묘사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정보를 준다. 과거의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고 외부인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상세히 알려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아쉬운 점이라면 당시 조선의 국정 운영이 열려 있지 못해서 외국인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낼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태도가 나라 전반에 미치는 피해를 생각해 볼 때에 이러한 내용은 좋은 시사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멜표류기 - 낯선 조선 땅에서 보낸 13년 20일의 기록
헨드릭 하멜 지음, 김태진 옮김,
서해문집,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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