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쓴 감동적인 아동교육론

[서평] <아이들에게 배운 것>

등록 2003.11.09 15:45수정 2003.11.0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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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우출판사

교사와 학생이 서로 배우는 관계라는 말은 그동안 꽤 들어왔던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몸소 깨우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기란 힘든 일입니다.

여기 소개하는 <아이들에게 배운 것>(하이타니 겐지로 지음)이라는 교육에세이는 그 진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아이들에게 배운 것’입니다. 아동교육론을 논하는 저자는 오히려 그것을 아이들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말하죠.


이 책은 저자가 교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아동교육론을 말하는 책입니다. 진솔한 체험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아동교육론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자체로 감동적인 문학작품이기도 하답니다.

오늘날 아동 교육에 가장 절실한 것은 어린이관의 재발견

저자 하이타니 겐지로는 오늘날 교육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어린이관의 재발견이라고 강조합니다.

한국과 같이 입시교육이 치열한 일본도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것을 정상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교육은 오히려 아이들의 가능성을 제한할 뿐이라고 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아동 교육에 대한 선입관을 거두라고 합니다. 또는 교육적인 틀로 아이들을 미리 제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교육은 이러해야 한다. 어린이는 이렇게 이끌어야 한다고 하는 선입관은 교육 그 자체를 매우 빈곤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나는 매일 바다를 보면서 사는데, 바다는 하루도 같은 날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가 질리는 일이 없습니다. 어린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나날이 변해갑니다. 성장하는 거라고 해도 좋겠지요.

그런 모습을 보거나 생각하는 것은 제겐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게다가 어린이를 바라보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저 자신이 바뀌어 가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어린이와 만나려고 합니다."(p-7)



이렇듯 저자는 교육적인 틀로 아이들을 제단하기 전에 자유롭고 활달한 존재로서의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그것으로 진정 교사와 학생이 서로 배우는 관계가 형성된다는 거죠.

저자는 너는 배우는 쪽, 나는 이미 그것을 끝내고 가르치는 쪽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에게는 이런 충고도 잊지 않습니다.

"학교는 정말이지 단지 가르치기만 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교사 역시 어린이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대개의 교사들은 이것을 잊어버리지요. 아이들을 명령이나 강제를 사용하여 바꾸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교사는 영원히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p-33)

진정 남에게 무언인가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그 속에서 자신도 배워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삶 속에서 그려 낸 인간애 가득한 에세이

저자는 “다른 무엇보다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 즉 생명의 존엄이야말로 교육을 성립시키는 유일한 토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저자의 교육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겠습니다(p-38~42).

저자가 담임을 맡은 2학년 학생 중에‘마코토’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말썽꾸러기로 소문이 난 아이랍니다.

한 번은 미술시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미술 시간에는 한 시간에 한 장의 그림만 그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동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 아이는 도화지를 여러 장 가져가 연결해 가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중에는 그것이 불편했던지‘더 큰 종이’를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윤전기에 걸어 쓰는 대형 두루마리 종이를 사다 주었습니다. 아이는 정말 좋아하며 거기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대형 벽화를 완성하고, 돔을 그려 장식하는 등 광장한 일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던 것입니다. 보통 교사들 같으면 아마 그 아이는 혼이 났을 겁니다. 그러나 저자는 아이를 미리 제단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가능성을 키워준 것이죠.

"어린이의 가능성은 엄청나게 큰 법입니다. 예측도 할 수 없을만큼 커다란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즉 어린이를 잴 수 있는 잣대는 없습니다.

한 시간에 한 장의 그림만 그려야 한다는 것은 교사가 만든 틀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그 틀에서 빠져나갈 정도로 큰 힘을 보일 때에는 교사가 그 틀의 제한을 없애 주어야 합니다.

마흔 명의 아이를 맡았다면, 교사는 그 아이들에게 맞는 마흔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마흔 명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하나의 답만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교육도 뭣도 아닙니다."(p-42)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책

이 책에는 앞에 소개한 사례 외에도 따뜻한 인간애가 넘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들을 구체적인 실례들로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또 이 책에는 저자가‘생활작문 운동’을 벌이며 얻은 아이들의 소중한 글들도 함께 있습니다. 그 글들은 감동적이기도 하고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하는데, 하나같이 놀라운 글들입니다. 아이들의 글이 지닌 힘은 꾸미지 않은 진솔함에서 나옵니다.

이는 마치 한국에서 이오덕 선생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교육자로서 기존 교육을 비판하며 대안을 몸소 실천하시고 더불어 생활글쓰기 운동으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키워주신 이오덕 선생님. 그와 하이타니 겐지로는 매우 닮아 보입니다.

하이타니 겐지로는 기존 교육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만이 아니라 몸소 대안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구체적인 아동교육론으로 유용할 듯 합니다. 나아가 일반 독자들에게도 감동적인 문학작품이 되어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지닌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하나의 진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랍니다.

감동적인 문구 몇 가지

*아이들의 소리에 채 귀를 기울이기도 전에, 온갖 규칙으로 아이들을 속박하는 것은 교육의 패배입니다. 학교의 관리체제에 대해 거론한 지가 이미 오래건만, 형태만 달리한 관리체제가 생겨나고 있을 뿐, 전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관리체제가 교육 현장에 맞지 않는 것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막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는 종종 감탄할 만큼 조리에 맞습니다.(p-81)

*무한한 가능성이라고들 말하는데, 그것을 끌어내는 일이 바로 교사의 일입니다. 그 외에 교사의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 거지요.(p-130)

*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내려고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이 본래 교육의 목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수업시간에는 그러한 사실이 잊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발로 걸으려고 하는 아이일수록 문제아 취급을 당하고 마는 겁니다.(p-94)

*우리들보다 오래 산 어른들이 가르쳐 줬으면 하는 것은, 수학이나 영어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먼저 인간으로서 소중한 것이 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많이 벽에 부딪히거나 때로는 가루가 될 지경으로 부서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마이너스에서 제로로 되돌아와서 다시 벽을 향해 가는 힘을 어른들로부터 배웠으면 합니다.(p-77, 학생의 글) / 하이타니 겐지로

아이들에게 배운 것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서혜영 옮김,
다우출판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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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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