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다음날, 우리는 학교에 갔다. 가채점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기 때문에, 다른 학년은 이날 쉬었지만 정작 고생한(?) 우리는 학교에 가야했던 것이다.
시험을 마치고 집에 와서 인터넷을 통해 게재된 답안지와 수험표 뒷면에 써놓은 내 수능 답안을 비교하며 확인했기 때문에 그 결과는 대강 알 수 있었다.
교실에 앉아 있던 친구들도 대충 자기 점수를 아는지 하나 둘 모여 한다는 소리가 결국 수능에 관련된 이야기들뿐이었다.
입에 담기조차 싫었건만 그래도 함께 고생한 친구들은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기에 한 친구를 잡고 물어보았다.
“야, 넌 시험 어떻게 봤냐? 잘 본 거냐?”
“욱, 몰라 망했어. 언어는 몇 점이고, 사회탐구, 영어는 좀 잘 봤지만 그래도 저번에 본 모의고사 보다 훨씬 못 봤어. 나 재수할까 보다. 넌 어떻게 봤냐?”
“말도 마, 진짜로 망했어. 나 울지도 몰라(쓴 웃음). 수능 전에 봤던 거랑 한 과목만 20점 차이나. 어디어디 대학교는 꿈도 못 꾸겠어. 아, 나도 재수해야 되나? 진짜 그 짓 또 하기 싫은데….”
수능 이야기며 자기 점수 이야기를 꺼낼수록 분위기는 점점 침체되어 갔다. 이런 분위기에 어떤 친구가, 누구누구는 잘 봤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좋겠다’를 연발하는 상황, 잘 봤다고 여유부리는 것 같이 보이는 그 아이가 왠지 얄밉게 보인다.
그리고 잠시 후 어떤 친구는 수능 보고 자살했다는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야, 근데 너희들, 어제 두 명 자살했다는 거 아냐?”
“어, 근데 아니야. 오늘 신문 보니까 한 명 더 죽었다더라. 세 명이지. 근데 그거 아냐? 걔 죽은 곳이 여기서 얼마 안 걸리는 데더라.”
“나도 들었어. 근데 나 처음에는 누구 죽었단 뉴스 듣고 막 욕했지. 어이없더라고 그렇게 죽을 일도 없냐 하고. 근데 내 것 점수 채점하고 나니까 생각 달라지더라. 진짜 그런 말 못하겠던데.”
“혹시 그 아이 용기 있단 생각 들지 않던?”
“말하자면 그렇지. 너도 그랬냐? 사실 난 그럴 용기도 없으니까 더 못난 것인지도 모르지(쓴 웃음).”
“…….”
다소 충격적으로 들리는 친구들의 말.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같은 수험생 입장에서 예상한 것만큼 점수가 잘 나오지 않은 터라, 친구들의 말이 아주 비정상적으로만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렇게 우리를 몰아가는 세상이 비정상적인 것은 아닌지.
어제 본 수능, 그 수능이 현재의 나를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고 해도 한심한 점수의 한심한 모습이 바로 나란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것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설정해 주는 방향키인 듯싶다.
이제 결과가 나왔고, 우리는 수능 점수를 보고 앞으로 살아갈 밑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인 것. 사실 자신이 하고 싶던 공부나 다른 어떤 것들도 모두 현실에서는 수능 점수가 허락해 주어야 가능하지 않나? 그래서 그런지 수능 전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아이는 드물었다. 단지 '점수 나오는 것 봐서'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을 뿐이다.
친구들과 자살한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 하며 떠올린 것은 이런 사실들이었다. 그러한 것들을 생각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겐 1년여의 노력과 정성이 수능과 대학을 위한 것이었고, 그러한 것들이 성취될 수 없음을 자각했을 때 전부를 잃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잠시, 이렇게도 심각한 생각을 하게 한, 수능이야기를 제일 먼저 꺼낸 친구가 몹시 미워졌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수능 전에는 축제를 벌이자며 별러 오던 수능 끝난 다음날이었건만, 학교에 모여 제일 먼저 나눈 생각들은 하나같이 암울함 그 자체였다.
"이젠 진짜 어떡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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