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륙하는 왜 수군을 격퇴한 달마산에 있는 미황사김대호
3일 낮밤을 쉬지 않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통해 피아 간 살아남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처절한 혈전이 되어 승리한 왜군도 궤멸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명량대첩에 이은 이 전투로 인해 왜군은 임진왜란에 이어 또다시 전라도 공략에 실패하고, 정유재란의 전세는 하루아침에 뒤바뀌게 된다.
이때 전사한 1만 의병의 죽은 시신을 모아 합장한 것이 만의총으로 당시 6기가 있었는데, 농지개량 등으로 현재는 3기만 남아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성산대교들 만의총유적보존회를 조직해 매년 10월 10일 이들을 기리는 제사를 모시고 있으며, 나머지 2기의 묘소를 복원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보존회 양회철 회장은 "당시 의병들이 훈련했던 연병장 터는 남아 있고, 성은 일본인들이 왜정 때 저수지를 만들면서 없애버렸다"며 "사당이라도 지어 전사한 1만 의병의 명복을 빌었으면 하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고 아쉬움을 전한다.
'전라도가 있어야 나라도 있다'
정유재란 이후 선조 30년 2월 선조는 그동안 호남인에 대한 차별을 부끄러워하면서 전라도 백성들에게 공식사과 한다.
"멀리 있는 남도 백성들아 짐의 말을 들을지어다. .....생각하여 보니 지난 기축년(己丑年)의 역변(정여립의 모반사건) 이후에 도내에 걸출한 인물들도 오랫동안 뽑아 쓰지 아니하여 그윽한 난초가 산골짜기에 외롭게 홀로 향기를 품고 있으며, 아름다운 옥이 형산에 광채를 감추게 되었도다. ..... (이제야 난을 당하여 널리 인재를 구하고자 하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뜨겁도다." <난중잡록(亂中雜錄) 정유년 2월 22일>
이순신 장군도 전 국토가 짓밟힌 상황에서 끝까지 왜군을 막아낸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서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니 만일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입만 열면 백성 운운하던 사대부들은 백성을 버리고, 임금의 몽진 길을 따라 피신했지만 전라도의 이름 없는 백성들은 나라를 지켰다.
물론 당시 의병을 이끌었던 윤륜, 윤신형제와 윤현, 윤검형제 같은 사대부도 있다. 그래도 명문 해남윤씨의 자손으로 태어난 이들은 죽어서도 이름을 기억해줄 가문이 있었다. 그러나 개똥이, 복순이, 칠복이로 불려졌을 이름 없는 백성들은 아스라한 첫사랑의 기억도, 따스한 가을볕에 동구 밖을 뛰놀던 아이들의 기억도 모두 뼈와 함께 스러져 흙이 됐다.
역사는 하찮은 돌멩이 하나에도 허락하던 이름을 어떤 사람들에게는 허락지 않았다. 망월묘지의 무명열사를 비롯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 그리고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 부시와 같은 전쟁 광들이 만들어 낸 살육의 현장에서 이름 없이 죽어 간 혹은 죽어갈 이름 없는 병사들과 백성들에겐 이름이 없다.
한사람의 예술혼이 국보가 되고 보물이 되기도 하지만 1만의 죽음은 여전히 해남유적 6호다. 언제쯤 이름 없는 백성의 이름이 국보가 되는 세상이 올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마음 놓을 자리 보지 않고, 마음 길 따라가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