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당신, 우리의 희망입니다

가을 열매들이 주는 삶의 소리를 듣다

등록 2003.11.11 09:17수정 2003.11.1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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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좀작살나무

좀작살나무 ⓒ 김민수

보는 이들마다 다르겠지만 열매가 주는 아름다움은 꽃의 아름다움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꽃 중에서도 진달래나 국화같은 것들은 화전으로 또는 온 몸을 맑게 하는 차(茶)로 먹기도 하지만 우리는 주로 열매들을 먹습니다.


우리의 몸에 모셔지는 것 하나 하나가 그저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것을 먹느냐 하는 문제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가을 열매들을 보면서 '꽃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꽃도 아름답죠. 저는 꽃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꽃의 이름을 알기 전에도 그저 그 꽃이 그 꽃같이 보일 때에도 꽃만 보면 감탄을 하곤 했습니다. 저보다 여섯 살 위의 누님도 꽃만 보면 달려가서 냄새도 맡아보고, 만져도 보고 '아, 예뻐!'를 연발하십니다.

그러니 한번 상상해 보십시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좋아할지를.

a 천남성

천남성 ⓒ 김민수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정말일까?'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지는 비결은 노래만 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강물같은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지독한 외로움을 겪어본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일 것입니다.

천남성이라는 식물은 독성이 아주 강한 식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재래식 화장실에 생기는 구더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화장실에 놓아두기도 했다니 그 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어느 분이 조언을 해주셨는데 이 열매를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안과행이요, 상처난 곳을 만지면 피부과행이라고 하더군요.

겉모습만 보고 그 속내를 알 수 없습니다. 포장이 요란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도 상품이 되어 요란하게 포장되고 있습니다. 알맹이가 변하는 것이 중요한데 겉모양만 변합니다. 그 안에 품고 있는 독(毒)을 약(藥)으로 바꾸어 가는 일에 매진하는 그런 사람, 그 사람이야 말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런지요?


a 인동덩굴(인동초)

인동덩굴(인동초) ⓒ 김민수

열매의 색도 가지가지입니다. 꽃을 그리 오래 보았건만 그 꽃이 지고 난 자리에서 열린 인동덩굴(인동초)의 열매를 쉽게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검은빛의 열매는 흔한 것이 아닙니다. 인동초(忍冬草)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추운 겨울에도 푸른 빛 푸른 줄기를 간직하고 있다 꽃을 피우는 식물입니다. 추운 겨울이 상징하는 바는 고난입니다.

어쩌면 열매의 색은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우내 추위와 싸우며 타들어 간 마음, 그 검은 마음이 열매로 나타난 것은 아닌지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이들과는 인생을 논해 보았자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마디만 이야기를 해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이미 다 전해졌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마음 저리도록 그리운 사람입니다.

a 찔레

찔레 ⓒ 김민수

어떤 식물학자가 선인장의 가시를 하나하나 뽑으며 '이제 너를 해칠 사람이 없어. 이젠 가시가 없어도 된단다. 나는 너를 사랑해'하며 오랜 시간 노력을 해서 가시없는 선인장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선인장은 가시가 있어야 제 맛인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가시가 왜 나쁘기만 한 것일까? 최소한의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찌를 수도 있어야 그것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지난주에 노동자들의 화염병 시위를 보면서 마음이 참으로 무거웠습니다. 그 마음의 무거움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극단의 방법을 통해서 의사를 전달해야만 비로소 귀를 기울이는 사회의 무관심 때문이었습니다. 또 언론에서도 노동자들이 왜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본질은 말하지 않고 단지 '화염병'이라는 주제만 부각시키면서 노동자들의 외침을 공허한 메아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가시에 찔리면 순간 몸을 움추리게 됩니다. 때로는 선홍색의 피를 보기도 합니다. 살에 박힌 작은 가시를 빼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곪아서 터지게 됩니다. 지혜로운 대처를 하지 못한 연고입니다.

a 하늘타리

하늘타리 ⓒ 김민수

무엇이든지 잡고 위로만 향하던 하늘타리, 비오는 날에도 하늘을 바라보기를 그치지 않던 하늘타리도 열매만큼은 땅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아무리 꼿꼿하고 꼬장꼬장하던 꽃도 열매를 맺으니 고개를 숙이고, 하늘로만 향하던 꽃들도 열매를 맺고 나면 결국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을, 자신이 출발했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을.

사람들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어디로 돌아갔을까요? 온 곳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으니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물질이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며 살아가려는 사람, 그리고 그런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록에 더욱 겸손해 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일 것입니다.

a 사철나무

사철나무 ⓒ 김민수

사철나무의 열매가 익고 또 무르익으니 더 이상 껍질이 그를 품고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차면 넘치는 법, 양질전화의 실체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사랑을 담고, 선한 것을 담고 또 담아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관계에까지도 차고 넘치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이웃사랑에까지 나아가는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아 아는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제는 나만 그렇게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이름 모를 들꽃, 들풀들까지도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겠지요.

이런 사람, 흔하지는 않지만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들이 있어 이 세상은 그래도 아직은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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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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