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무언지 잘 몰라요"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14> 공장일기(11)

등록 2003.11.13 11:36수정 2003.11.1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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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당시 <경남신문>에 소개된 <남천문학동인회> 기사

당시 <경남신문>에 소개된 <남천문학동인회> 기사 ⓒ 이종찬


"너 작업 중단하고 어서 총무부로 가 봐."
"아니, 와예? 오늘 작업전표에 나온 작업량을 다 채울라카모 억수로 바뿐데예?"
"그런 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빨랑 가 봐."


그랬다. 나 역시 자칫 잘못했으면 삼청교육대에 끌려갈 뻔했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병역특례 1년차였다. 또한 공작부 황복현 과장의 도움과 이선관 선생이 가르쳐 준 '저는 아직 어려서 시가 무언지 잘 몰라요' 로 비상계엄사의 날쌘 낚아채기를 피해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툭 하면 총무부에 불려가야만 했다. 또한 총무부에 가기만 하면 총무부장과 안기부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양복을 잘 차려입고 빙글거리던 그 사람의 고문 같은 질문에 일일이 답해야만 했다.

공장 안에서도 나는 찬밥신세였다. 아니 그들의 눈에는 벌레 같은 존재로 비친지도 몰랐다. 안기부에서 나왔다는 그 사람이 돌아가고 나면 나는 또한번 총무부장의 애매하고도 얄궂은 질문에 일일이 답해야만 했고, 노무과장과 생산부장에게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만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남천문학> 창간호가 나왔다. 그 당시에는 서점 판매용이든 비매품이든 배포용이든 모든 인쇄물들은 계엄사 검열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렇게 계엄사 검열을 거친 책들은 책의 판권 위에 '비상계엄사 검열 필'이라는 죄인 같은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알고도 그냥 펴냈다. 왜냐하면 그 책은 우리 동인들과 글쓰는 선후배 문인들 일부에게만 나눠주려고 찍었던 책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 동인들 모두는 시계초침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생활 속에서 그럴 만한 시간을 낼 사람도 없었다.


"너, 또 사고를 친 모양이구나. 빨랑 전화부터 받아 봐."
"무...무슨 전환데요?"
"이번에는 안기부가 아니라 비상계엄사다."
"네에?"

비상계엄사에서는 <남천문학>을 펴내기 전, 계엄사의 검열을 받지 않은 것을 첫 번째 문제로 삼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큰 문제를 삼았던 것은 내 본명으로 발표된 시 '밤빨래'였다.


a <경남신문>에 소개된 '남천문학' 기사

<경남신문>에 소개된 '남천문학' 기사 ⓒ 이종찬


어두운 밤
한 여인이 방망이질을 한다

하얗게 여윈 손가락으로
요리조리 주무르고
헹구어도
헹구어도
날은 밝아올 생각을 않고
들판에 개구리만 무더기로 우는데

여인아
이토록 깊은 밤에
하이타이가
다이알 비누가
무슨 소용 있는가

도깨비 방망이라면 몰라도
요즈음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담

(졸시 '밤빨래' 모두)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그날 내게 전화를 건 그 군인은 금속성이 섞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시 한 구절 한 구절을 지적하며 나더러 일일이 설명을 하라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생산과장의 책상 앞에 달랑 한대 놓여 있는 그 전화로.

왜 하필이면 시의 제목이 '밤빨래'냐? '밤빨래'는 대체 무엇을 뜻하느냐? '개구리'는 데모나 하는 뺄갱이 새끼들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냐? 밤에 빨래를 하는 '여인'은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냐? 대체 이 시를 무슨 의도로 썼느냐? 누가 이렇게 쓰라고 시키더냐?

그날 나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저는 아직 어려서 시가 무언지 잘 몰라요'라고. 그러나 전화를 건 그 군인은 단어 하나, 행간 하나마다 꼬치꼬치 캐물었다. '시가 무언지 잘 몰라요'로 답변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진땀까지 흘렸다. 아무런 죄도 없이.

"제가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갈라카모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하거든예. 그런데 그곳에만 가모 밤에 빨래를 하는 여자들이 많이 있심미더. 제 말이 거짓말인가 아인가 오늘 밤에 같이 한번 가볼랍니꺼. 그라고 그 다리 옆에 논이 있거든예. 그 논에는 개구리가 억수로 많심미더."

그날, 그 군인은 내게 오후 6시까지 비상계엄사 마산분소로 출두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나는 공작부 황복현 과장의 도움으로 비상계엄사에 출두하지 않고도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가 있었다. 그 대신 총무부장과 생산부장에게 불려가 오후 내내 시에 대한 해명을 한 뒤 또 한번의 각서를 써야만 했다.

그때부터 나는, 아니 '씨알의 소리'에 시를 발표한 뒤부터 나는, 계속해서 묘한 필화사건을 겪어야만 했다. 안기부와 비상계엄사에 이어 총무부장과 생산부장, 노무과장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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