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난파시켰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김태우
유럽을 여행하던 발걸음이 독일에 다다랐을 때,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적지 않은 유럽인들은 나의 조국이 Korea라고 말하면 South인지 North인지 꼭 확인하려고 들었다. 나는 한국이 비록 분단된 상황이지만 한국은 하나이기 때문에 나의 조국은 그냥 Korea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호기심은 내가 South임을 결국 실토하게 만들었다.
그 때마다 이제 지구상에는 단 하나밖에 분단국가가 없다는 사실이 가슴에 느껴져왔다. 옛 동독과 서독의 도시들을 돌면서 나는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먼 이국에서 한국인임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은 음식이었다. 배낭여행을 시작한지 채 1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얼큰한 찌개와 짭짭한 젓갈과 시큼한 김치, 풋고추와 마늘, 쌈장과 삽겹살을 넣고 싼 상추가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식욕을 통해 나는 내 조국을 느끼고 있었다.
40일을 넘게 여행하면서 밥을 먹은 적도 있지만 유럽의 밥은 우리의 그것처럼 찰지고 쫀득한 맛이 아니었다. 마치 물에 너무 오래 담거두어 불어버린 밥알들, 서로 달라붙지 않고 한알 한알이 다 떨어지는 밥이 바로 '유럽의 밥'이었다. 그건 고향의 맛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고 거금을 투자해서 들어갔던 중국식당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유럽의 현지 음식과 결합한 중국음식은 우리의 그것과는 너무 달랐다.
바가지를 씌우는 관광지 근처의 레스토랑을 피해, 대형 마트에서 산 싸구려 바케트빵과 콜라를 '일용할 양식'(!)으로 먹으며 나는 괜히 서글퍼질 정도였다.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TV를 통해 보았던 북한 음식이 떠올랐다. 함흥냉면과 개성식 만두, 평양냉면을 먹으며 눈물을 글썽이던 실향민들이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