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노동자' X-세대 의경에게 드리는 편지

[取중眞담]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과 집회

등록 2003.11.16 16:35수정 2003.11.1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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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뒷골목에서 경찰에 포위당해 항복의 표시로 두손을 들고 있는 노동자들을 경찰이 연행하고 있다.
서울시청 뒷골목에서 경찰에 포위당해 항복의 표시로 두손을 들고 있는 노동자들을 경찰이 연행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사회부 이승훈 기자입니다. 첫 번째 취중진담을 통해 의경 여러분들에게 편지 한 장을 띄우게 됐습니다. 시위나 집회 취재를 나가면 항상 모습을 볼 수 있는 여러분들이지만 그동안 대화 나눌 기회는 없었기에 이렇게 나마 취재하면서 들었던 느낌들을 한번 나누어 볼까 합니다.

기자로 이런저런 시위현장을 쫓아다닌지도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집회 취재를 하다보면 아무리 평화적인 집회라 해도 늘상 시위대와 경찰들간 사소한 충돌과 말싸움들이 오가는 목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손배가압류와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둘러싼 노동자들의 죽음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요즈음엔 집회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습니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격렬한 물리적 충돌이 자주 일어나고 있지요. 지난 6일 민주노총의 총파업 결의대회와 9일 전국노동자대회의 격렬한 충돌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충돌이 일어나는 시위현장에서 대치중인 노동자들과 경찰들의 경계에 서서 양측의 치고받는 육박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장 먼저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납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노동자의 아들들인 의경들과 아버지나 삼촌 뻘되는 노동자들이 심한 욕설을 주고받으며 피흘리는 싸움을 벌이고, 이중 몇몇은 심한 부상을 당해 병원에 실려가는 눈앞의 현실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의경 여러분들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잔인한 폭력을 볼 때면 솔직히 말해 때론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까 병역 의무 때문에 젊은 시절 짧지 않은 기간동안 경찰로 복무를 해야하고, 명령이 떨어지면 흥분한 시위대 속으로 뛰어들어가 날아오는 돌멩이와 각목세례를 피해가며 진압작전을 수행해야하는 여러분들의 처지는 왜 무시하느냐, 시위대의 폭력에 의경들도 많이 다친다, 정해진 룰을 넘어서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며 불법시위를 하는 시위대들의 폭력은 왜 문제 삼지 않느냐는 항의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제가 '잔인한 폭력'이라고 문제를 삼은 부분은 경찰로서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정상적인 공권력 집행이 아닙니다. 실제로 저는 집회현장에서 의경 여러분들이 길바닥에 쓰러져 저항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둘러싸고 방패 날과 곤봉으로 집단으로 구타하는 모습, 부상 때문에 일어설 힘조차 없는 노동자를 또 다시 가격하는 모습, 집회와 관계없는 시민들에게도, 심지어 여성들에게도 서슴없는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들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그중 일부는 집회장 일선에서 지휘하는 소대장들의 제지 명령에도 너무 흥분해서 듣지 못했는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난 6일 탑골공원 앞에서 경찰이 각목을 뒤두르며 저항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방패로 가격하고 있다.
지난 6일 탑골공원 앞에서 경찰이 각목을 뒤두르며 저항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방패로 가격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시위대 때리는 모습은 꼭 '조폭' 같다"


제가 '잔인한 폭력'이라고 지칭했던 것은 바로 의경 여러분들의 이러한 모습들입니다. 앞에서 예로든 여러분들의 모습들이 제 눈에는 마치 '허가된 폭력'을 즐기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졌다면, 또 임무수행에서 오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한 사람을 희생양 삼아 무차별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해소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졌다면 너무 심한 과장이 될까요?

하지만 이렇게 느끼는 사람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시위 장면을 지켜보는 일반 시민들도 시위대들의 폭력 행위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의경들에 대해서는 "경찰복만 입었지 시위대를 때리는 모습은 꼭 '조폭'같다"는 비아냥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시민들의 비아냥이 아니라 진압작전에서의 과잉폭력이 경찰의 내규에 위배된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경찰은 '경찰장비사용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그 중 제 6조에는 불법집회 등에서의 경찰봉·호신용 경봉 사용의 기준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경찰관은 불법집회·시위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타인 또는 경찰관의 생명, 신체의 위해와 재산·공공시설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경찰봉 또는 호신용 경봉을 사용할 수 있다

내규에 명시된 '최소한의 범위'가 너무 모호하지만 일반인의 상식으로 판단해 보자면 저항할 의사가 없는 노동자들, 부상당한 노동자들,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필요이상의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분명 규정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상당해 후송되던 한 노동자의 피가 경찰 방패에 묻어 있다.
부상당해 후송되던 한 노동자의 피가 경찰 방패에 묻어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러한 폭력의 결과는 너무나 참담합니다. 지난 9일 시위에서는 코오롱 노조 조합원 허윤석씨가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또 제 취재 수첩을 뒤져보면 지난 6일 시위에서는 길가던 대학생 김지수(20, 남)씨가 경찰이 휘두른 방패날에 눈이 찢어져 피를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머리가 터지고 이빨이나 코뼈가 뿌러지는 부상을 당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경찰이 규정대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대응을 했더라면 이런 중상자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찰들도 시위대가 휘두른 폭력에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잘 훈련되고 보호·진압장비를 갖춘 경찰의 공권력과 대부분 맨몸인 시위대, 비록 그중 일부가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들었다 하더라도 양측 간 힘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합니다.

지난 6일 집회에서 7천여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경찰 진압 시작 20여분만에 완전 진압됐고 화염병까지 등장했던 9일 시위에서도 경찰은 압도적인 힘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습니다. 때문에 저는 과도한 폭력을 쓰지 않아도 정상적인 임무 수행이 가능한 경찰에게 더 까다롭고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대하면 여러분들도 노동자로 살아가게 될 것

의경 여러분들도 복무를 마치고 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밤낮없는 근무와 시위 진압작전으로 힘들고 피곤하겠지만 예비 노동자이자 노동자·농민의 아들들인 여러분들이 노동자들 혹은 농민들이 저토록 분노하는 이유를 한번 헤아려보는 것이 어떨까요?

즉 손배가압류로 생존권이 위협받고 비정규직 차별에 신음하는 노동자들, 1년 내 땀흘려 농사지어봐야 남는 것은 빚뿐인 농민들의 처지를, 왜 그들이 일터를 버리고 거리로 나와 여러분들과 대치를 해야만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여러분들이 무조건 노동자·농민의 편에 서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시위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여러분들도 젊기에 쉽게 흥분하는데서 비롯되는 과잉폭력의 제어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여러분에게 먼저 듣기 싫은 욕설을 했다하더라도 이해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경찰 지도부가 해야할 일도 많다고 봅니다. 경찰 지도부도 강경진압의 성공을 칭찬만 할 것이 아니라 과도한 폭력사용을 억제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경찰의 진압을 피해 노동자들과 길가에 서 있던 시민들이 인근 파출소로 몰려들어가 있다.
경찰의 진압을 피해 노동자들과 길가에 서 있던 시민들이 인근 파출소로 몰려들어가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경찰 지도부도 과잉폭력 막을 제도적 장치 마련 해야

이는 집회시위에서 계속되는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일상화된 폭력으로 여러분들의 영혼이 상처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앞서 언급한 경찰청 내규의 '최소한의 범위'라는 모호한 규정을 상황에 맞게 구체화시켜 적용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경찰이 시위대의 폭력만 체증자료로 만들지 말고 경찰의 과도한 폭력에 대해서도 자료를 수집하고 사후평가를 실시해서 내규에 어긋난 공권력 행사를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인권운동사랑방, 평화인권연대 등 30여개 인권단체들은 시위현장에서 경찰의 과잉폭력 행사를 밀착 모니터해서 그 결과를 발표할 계획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앞으로 연말까지 노동자 농민들의 집회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노동계를 향해 강한 비판을 계속하던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11일에 "화염병 등 폭력으로 인해 경찰의 자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여유있게 대응해달라"며 집회현장에서의 사고예방을 각별히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노력해야하겠지만 집회 현장에서 누구든 부디 다치고 피흘리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끝으로 이런 바람이 현장에서 공권력 집행을 담당하는 여러분들에게 전해져 작은 변화들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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