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42만원' 대신 교도소 들어가겠다

시민운동가 4인이 '강제노역 시위' 벌이기로 한 까닭

등록 2003.11.20 16:03수정 2003.11.2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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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당국의 불공정한 법집행에 항의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 시민운동가들
20일 서울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당국의 불공정한 법집행에 항의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 시민운동가들오마이뉴스 이승훈

김판태 사무처장, 공동일 홍보국장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김판태 사무처장, 공동일 홍보국장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지검에 출두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승훈
주한미군의 환경범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다가 집시법 위반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은 시민운동가 4명이 벌금을 납부하는 대신 교도소에 들어가 '강제노역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노역 시위'의 주인공은 김판태 '불평등한SOFA개정국민행동' 사무처장, 이경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부장, 공동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홍보국장과 이형수 '기지협정팀' 국장 등 4명. 이들은 사법당국의 형평성 없는 법집행과 미군의 환경범죄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노역시위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검찰에 출두하기에 앞서 20일 오전 11시 서울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당국이 현행 SOFA 하에서도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한 주한미군의 환경범죄에 대해서는 어떠한 사법적 단죄 의지도 보이지 않으면서, 주한미군의 환경범죄를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에 대해서 처벌을 가하는 것은 불공평한 법 집행"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법당국이 주한미군에게는 약하고 우리국민들에게는 강한 뒤틀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면서 "스스로 구치소에 유치당하는 고통을 감수함으로써 사법당국의 자성을 촉구하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환경조항 신설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맥팔랜드씨에 대해서도 "법원과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 공소장 전달과 구인장 집행을 함으로써 조속히 재판을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제발로 교도소 가는 고통 기꺼이 감수하겠다"

김판태 사무처장 앞으로 온 벌금납부 고지서
김판태 사무처장 앞으로 온 벌금납부 고지서오마이뉴스 이승훈
기자회견을 마치고 바로 서울지검에 출두한 이들은 현재 지검에 마련된 간이유치장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이들은 벌금 각 42만원에 해당하는 10여일 간 구금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법원은 지난 5월 26일 이들 4명에게 집시법 위반 혐의로 각각 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한 바 있다. 현재 벌금이 42만원인 것은 2001년 용산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당시 이틀 동안의 구금일수를 제외했기 때문.

한편 맥팔랜드씨는 2000년 3월 포르말린 폐용액 228ℓ를 한강에 무단 방류한 혐의로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가 법원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됐으나, 미군 측이 공소장 송달 및 구인장 집행을 거부해 2년7개월이 넘도록 재판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맥팔랜드씨는 큰 물의에도 불구하고 2001년 초 미 8군 영안소 소장으로 승진해 미군 영내에서 정상적으로 근무 중이다. 지난 9월 담당 재판부가 공소장 전달을 위해 용산경찰서에 맥팔랜드씨에 대한 '소재탐지촉탁'을 의뢰했지만 경찰은 '연락이 안된다'며 '부재중'이라고 회신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현행 SOFA 규정에 따르면 미군 영내에 있는 미군이나 군속에 대한 형사상 영장(구속영장. 공소장·구인장 등)은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하도록 되어있어 미군 측의 협조 없이는 본인에게 공소장을 전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몸으로 항의의 뜻 전하기로 마음 모았다"
10일 교도소 '노역시위' 들어가는 4인이 남긴 말

▲ 서울지검 간이 유치장 앞에 서있는 이경아, 이형수,공동일, 김판태씨(왼쪽부터 차례로)

유치장으로 들어가는 김판태 사무처장, 공동길 홍보국장, 이형수 국장, 이경아 부장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이들의 표정을 어둡게 만든 것은 미군의 환경범죄에 대한 시민사회의 정당한 항의는 처벌을 받는 반면, 범죄를 저지른 미군은 처벌을 받기커녕 오히려 승진까지 하는 뒤틀린 현실이다.

유치장 앞에 선 이들은 다시 한번 사법당국의 각성과 불평등한 SOFA의 개정을 촉구했다. "벌금을 선고받았을 때부터 그냥 교도소에 가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문을 연 이형수 국장은 "2000년 발생한 사건에 대해 우리 사법당국이 2003년이 끝나가는 지금도 사법적 단죄를 내리지 못한 것은 매우 굴욕적인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경아 부장은 "너무나 정당한 일을 했는데 구금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많이 나고 마음이 무척 착잡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공동길 국장도 "우리 사법부가 주한미군의 범죄에 대해서는 법적 단죄의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그들의 범죄를 규탄하는 것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행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김판태 사무처장은 "사법당국의 굴욕적인 태도 때문에 주한미군이 아무 거리낌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하며 "사법당국에 몸으로 항의의 뜻을 전하고 자성을 촉구하기로 나를 포함해 벌금형이 확정된 4명이 마음을 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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