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해우소를 아십니까?

아픔없는 화장실을 만드는 사람들

등록 2003.11.21 01:31수정 2003.11.2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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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정당의 광주지역 게시판에는 "아픔없는 화장실을 위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언뜻 보기에는 무슨 변비에 관한 네티즌의 호소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유심히 읽어내려 가다 보니 뜻밖의 '제안'이 눈길을 끌었다.


얼마전 어머님께서 계속해서 화장실 변기를 좌변기로 바꾸라는 명령을 내리시는데 제가 바쁘다보니… 암튼 오랫만에 아시는 분이 우리집에 와서 좌변기를 놔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무릎이 아프셔서 양변기 화장실에서는 무릎에 심한 통증이 왔던 겁니다. 에고. 얼마전 운동하다 무릎에 약간의 부상이 있던 중에 양변기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얼마나 무릎이 아프던지. 어머님의 심정을 그때서야 알았지 뭡니까.

그래서 여러분께 제안 하나 드리려 합니다. 우리 주위에 사시는 독거노인분들 중 이런 불편을 겪는 분이 상당수 계십니다. 얼마전 조사를 나가 보니 우리 동네만해도 스무집 가량이 되었습니다. 적십자에서 이동식 플라스틱 변기를 주고 가는데 위생도 좋지 않고 견고하지 못해서 잘 깨집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집만이라도 고쳐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종의 러브 하우스 정도 되나? 러브 레스트룸? 어떠십니까? 함께 하지 않으시 렵니까?


본디 해우소란 사찰에 딸린 화장실로서 일반 화장실과는 달리 많은 주의를 요한다. 이를 테면 아래를 보지 말 것과 배설을 한 뒤 다른 물건을 만지지 말 것 등이다. 아무튼 생리적 근심을 푸는 곳으로서 해우소는 화장실의 다른 이름이며 단어의 느낌도 아름답다.

이 제안은 많은 네티즌의 공감을 얻었고, 일 인 일만 원씩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 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11월 20일 설비를 담당하는 다른 네티즌(아이디:백산설비)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러브 해우소' 제1호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사업은 사전에 대상자를 물색하고 장소를 답사하여 집주인과 대상자의 동의를 얻어 실비 25만원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일만 원의 작은 사랑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후속 작업을 위해 다음 사이트에 '편안한 해우소(cafe.daum.net/lovehaewooso)'라는 카페를 개설하여 2호 공사 현장을 추천받고 있다.

편안한 해우소. 그 첫삽의 주인공인 이차양(81) 할머니는 "요즘 보기드믄 젊은이들이여, 한번도 전에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디. 세상 살맛나네!"라며 그 고마움을 표했다.


이 할머니는 전남 영암 금정면이 고향으로 꽃다운 열여덟에 이웃 마을 청년과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아 기르다 일곱살짜리 딸자식을 저 세상에 보내고 급기야는 스물일곱이던 한국전쟁 때 남편마저 잃는 기구한 운명을 사신 독거노인이다.

이 할머니는 고향 영암을 떠나 광주에서 생활한 지 30여 년이 되는데 "이처럼 고마울 때가 없다"며 '아픈 무릎 관절이 다 낳은 것 같다'며 좋아 하셨다.

편안한 해우소! 어쩌면 이 제안은 우리가 그동안 되돌아 보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간 안전망을 확보하는, 아주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네티즌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라면서 국민이 주는 '아름다운 상'을 이 제안자에게 드리고 싶다. 참여하실 분은 카페관리자(배승희, 011-648-2928)에게 연락하면 된다.

a 혼자이시지만 깔끔하고 건강하신 이차양 할머니

혼자이시지만 깔끔하고 건강하신 이차양 할머니


a 기존 변기를 들어내고 공사를 시작하는 모습

기존 변기를 들어내고 공사를 시작하는 모습


a 열심히 일하고 있는 편안한 해우소의 정상규 총무

열심히 일하고 있는 편안한 해우소의 정상규 총무


a 노인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좌변기-"할머니! 이젠 무릎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노인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좌변기-"할머니! 이젠 무릎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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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없음도 대답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다. 더 좋은 민주주의와 사람사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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