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신부 동시 입장이 힘든가요?

우리가 생각하는 양성평등은 멀리 있지 않다

등록 2003.11.24 13:07수정 2003.11.26 11:19
0
원고료로 응원
결혼을 해 본 경험이 있는 기혼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결혼식이란 당사자들에게는 무척 힘든 작업(?)이다. 신부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입장해 남편의 손에 넘겨지는 것을 시작으로, 식의 순서가 어찌보면 남성 중심적으로 이뤄진다.

그래서일까. 결혼식을 치르는 대부분의 신부들은 집을 떠난다는 느낌에 눈물을 흘리며, 신부 어머니 또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22일 필자는 전 직장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른바 양성평등 결혼식이다. 양성평등이란 용어는 이제는 나에게 낯설지 않은 용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양성평등 결혼식에서 신부가 신랑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어 읽어주고 있다.
양성평등 결혼식에서 신부가 신랑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어 읽어주고 있다.백현석
신랑 입장 전, 사회자는 미리 양해의 말을 참석자들에게 했다.

"오늘 이 자리는 신랑·신부의 합의 하에 양성평등한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어르신들에게는 다소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새출발을 하는 두 사람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양성평등 결혼식이란 다른 것은 없었다. 두 사람이 동등한 입장에서 새출발을 한다는 뜻에서 신랑, 신부가 같이 입장을 했고, 다른 결혼식과는 이례적으로 장성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이 주례를 맡았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누구도 동시 입장을 하고, 주례가 여자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수근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주례사 이후 두사람은 서로에게 결혼을 앞두고 써 온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만남에서 앞으로 부부로서의 삶에 대한 서로의 마음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읽어 내려가는 동안, '아, 저런 마음을 나도 가졌었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성평등이란 결코 여성을 우대하고, 남성에게 피해를 주는 용어는 아니다. 서로 존중과 이해의 마음을 가지고 같이 앞날을 설계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후배가 여성 관련 신문에 근무한다고 해서 양성평등을 부르짖으며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 더욱 더 오래 지속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자는 뜻에서 치른 이번 결혼식에서 많은 사람들은 '참 보기 좋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양성평등은 결코 의식적인 언어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서로를 배려한다면 우리 생활 속에서 나올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결혼식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4. 4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