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께서 이메일을 보내셨습니다

기계치 어머니, 컴맹에서 탈출하다

등록 2003.11.25 12:10수정 2003.11.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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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귀한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짧고 서툰 문장에 띄어쓰기와 맞춤법도 조금 엉성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텍스트 파일로 받은지라 더욱 형편없이 조잡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읽으면서 저는 연신 “우하하하…”하고 웃거나, “대단하시네”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친정어머니께서 직접 메일을 보내신 것입니다. 게다가 동생의 이메일을 빌린 것도 아니고, 어엿하게 어머니 이름으로 된 메일주소가 발신인으로 표시돼 있었습니다.

이것을 HTML파일로 바꾼 후 다시 보았더니 아주 근사한 카드 메일이었습니다. 컴퓨터를 배운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언제 이렇게 자판까지 익혔는지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노인복지회관에서 배우신 모양입니다. 얼마 전부터 그곳에서 일본어를 배운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컴퓨터는 금시초문이라서 더욱 놀랐습니다.

a 어머니가 보내신 첫번째 메일

어머니가 보내신 첫번째 메일 ⓒ 장영미

그렇지 않아도 전부터 제가 노래하다시피 말씀드렸던 일이긴 했습니다. 자식들이 멀리 해외에 있으니 메일을 직접 쓸 수 있으면 서로 안부 전하기도 쉽고, 어머니 자신도 적적함을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특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 소식도 빈번하게 알 수 있을 거라고 엄포를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편하자고 조른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전화나 편지보다는 거의 매일 확인하는 이메일을 이용하는 게 더 편하니까요. 게다가 요즘은 사진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을 수 있어 아이의 자라는 모습이며 저희들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여드리기도 쉬우니까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로 말씀드리자면 ‘컴맹’이셨음은 물론 이른바 ‘기계치’셨습니다. 다룰 수 있는 기계라고 하면 전화와 텔레비전 리모콘, 전기밥통, 세탁기 정도일 것입니다. 그것도 단순 기능 이외의 것은 모른다고 봐야합니다. 그리고 눈이 침침해서 눈을 찡그리면서 아주 더디고 조심스럽게 조작하십니다. 옆에서 보고 있자면 답답할 정도지요.


게다가 저희 어머니는 그동안 전혀 다른 취미생활을 하고 계셨습니다. 동네 친구분들과 어울려 거의 매일같이 ‘십원짜리 고스톱’을 치는 게 낙이셨지요. 요즘은 물가상승에 비례해 50원짜리를 하신다는 것 같습니다. 그 생활도 족히 10년은 되었을 법 하네요.

처음엔 왜 그런 놀이를 하시느냐고 불평도 많이 했습니다. 좀 건전한 놀이나 고상한 취미생활을 하시면 안되겠느냐구요. 그러다 중독돼서 전문 도박꾼 되겠다, 단속반에 걸려 잡혀 갈지도 모른다는 공갈협박까지 쓰면서 만류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줌마들이 모여서 할만한 게 없다면서 "우리는 십원짜리라 도박이랑 상관도 없고, 혹시 누군가 많이 따도 다 내놓고 간다며 재미삼아 하니까 걱정말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는 없습니다. 어머니 성격에 괜한 일은 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가족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줌마들, 아니 이제는 모두 할머니들이 되셨으니, 할머니들이 모여서 하실 일이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그만한 연세의 분들이 어울려 지내기도 쉬운 일은 아닌 듯하더군요. 손주들 돌보느라고 바쁘신 분들을 비롯해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 이사 다니시는 통에 정 붙여 사람 사귀기 힘든 분들, 그 연세에도 일을 해야 하시는 분들 등 너무도 다양해 서로 의지하며 친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니 그나마 건강하게 친구분들과 어울려 지내시는 게 다행이랄 수 밖에요. 아버지도 굳이 말리지 않으십니다. 낮에 혼자 적적한데 친구분들하고 어울려 다니시는 게 차라리 정신건강에 낫다고 말입니다. 어머니의 말씀 중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바로 치매예방입니다. 정말 예방이 되는 지, 어쩐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효과가 있다면야 오히려 적극 권해야겠지요. 그래도 어머니가 좀더 건전한 놀이나 취미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스톱을 치려면 쭈그리고 오래 앉아있기 때문에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플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쉴 새 없이 뭔가를 드신다는 게 문제입니다. 집주인들이 손님 대접하느라고 끊임없이 먹을 것을 내놓는 모양이더군요. 그러니 살이 찔 수밖에요. 운동부족에 고칼로리 섭취는 당연 비만의 지름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제는 실내에서 오래 계시는 것보다는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 같은 게 더 필요한 연세이시구요. 요즘 한 두 가지 병 없는 노인분들 드물지요. 저희 어머니도 천식에 협심증, 고혈압 같은 질병이 찾아와서 매일 약을 한 움큼씩 드시더군요.

가까이서 돌봐드릴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그래서 자식으로서 한다는 게 늘 잔소리 뿐입니다. ‘운동하시라’, ‘기름기 많은 고기는 드시지 말고, 신선한 야채를 많이 섭취하라’, ‘제 때에 세 끼니 잘 챙겨드시는 게 보약이다’, ‘군것질은 절대 하지 마시라’, ‘고스톱 그만 하시고, 친구분들과 산책 다니셔라’….

어머니께서도 문제의식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동안 가까운 산으로 등산도 다니시고 노래교실에도 나가보시고, 수중 걷기 교실 같은 데도 참여하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런데 오래 가지는 않더군요. 함께 다닐 친구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맘에 맞는 단짝 친구가 생기면 좋을텐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뜻맞는 단짝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올 봄부터 근처의 노인복지회관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일본어 교실을 다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뿐인 손녀딸과 좀더 친해지고 싶었는지 딸아이와 통화할 때 가끔, 배우신 일본어를 써보는데 그러면 딸아이는 좋아라 "깔깔깔" 웃어 댑니다. 할머니가 우스운 일본말을 하신다구요.

제가 공부는 잘 되시냐고 여쭈면, 들어도 금세 까먹고, 읽어도 금세 잊어버려서 도대체 공부가 안된다고 불평이십니다. 젊은 저도 그런데 어머니는 오죽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재미삼아 꾸준히 하시라고 격려해 드릴 밖에요.

그런 어머니께서 벌써 두달째 컴퓨터를 배우고 계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향학열에 불타오르기라도 하신 걸까요? 일본어에 컴퓨터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인복지회관 같은 게 생겼으니 망정이지 저희 어머니 같은 짠순이(?)가 본인을 위해 그런 일에 돈을 쓰실 리 만무하거든요.

어머니도 어느 덧 노인 승차권을 받아 전철을 타실 수 있는 연세가 되셨습니다. 작년 언젠가 한국에 갔을 때 ‘나는 공짜로 탄다’며 무료승차권을 받아서 앞서 가시더군요. 뒤에서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엄마, 뭐가 그리 좋으세요? 늙었다는 증건데.”
짠순이인 어머니는 그래도 좋다십니다.

a 딸아이에게 보내신 두번째 메일

딸아이에게 보내신 두번째 메일 ⓒ 장영미

답장을 보내드렸더니 23일에 또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이번에는 딸아이 앞으로요. 딸아이랑 편지 왕래하려고 배우셨다고요. 이제 제가 바쁘게 생겼습니다. 어머니의 연습 상대가 되어드려야 하겠으니 말입니다. 오늘 딸아이가 돌아오면 함께 답장을 쓸 겁니다.

사랑하는 할머니께

할머니, 어떻게 그렇게 컴퓨터를 잘 하세요?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요.
저도 열심히 글을 배워서 할머니하고 편지쓰기 할래요.
할머니하고 저하고 누가누가 잘 하나 내기해요.
안녕히 계세요.

ㅇㅇ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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