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얻기 힘든 반면 가장 잃기 쉬운 것, 그것은 '마음'이다.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 명성을 얻는 것보다 타인의 마음 하나를 얻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마음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바람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희로애락의 바다에 떠서 출렁이는 일엽편주와도 같다. 마음이 일으키는 파문 하나 하나가 감정의 파도가 되어 우리를 이끈다. 흉악한 범죄도 아름다운 로맨스도 모두가 이 '희로애락애오욕'이 만들어낸 결과다.
인간은 행복을 얻기 위해 생산력 극대화의 물질 문명을 건설하고 정교한 사회 제도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복지 국가의 이상에 도달한 서구에서부터 인간의 마음속에는 물질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뭔가, 부족한 2%가 있다는 인식이 늘어났다.
70년대 이후 불기 시작한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과 최근의 요가 열풍도 이러한 맥락에 기반한 것이다. 그리고 쉼없이 뛰어가는 선진국 따라잡기 경주에 지친 것인지, 아니면 이미 물질적 풍요의 한계를 경험한 때문인지, 한국 사회에도 유기농 식단과 명상으로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꾼다는 '웰빙족' 열풍이 상륙했다.
명상의 기본은 마음을 객관화시키는 '마음 공학'에 있다. 자신의 내부에서 요동치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지켜보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마음으로부터 감정을 떼어내 관찰함으로써 감정의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난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소비함으로써가 아니라 내 마음과 감정의 주인이 됨으로써 진정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웰빙족의 등장은 인류가 물질 문명의 한계를 자각하고 내부에 주목해야 한다는 '마음 공학'의 첫 번째 깨달음을 공유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반길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웰빙'이 욕망의 소비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징후이다. '웰빙'은'being', 즉 존재에 대한 성찰에 바탕한 자기 가꾸기이다. 그런데 비싼 유기농 식품을 사먹고 소위 물좋은 요가·명상 센터 회원으로 등록하는 등의 이기적 소비 행위로만 인식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철학적 빈곤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음 공학의 두 번째 깨달음은 나의 마음만 평화롭다고 해서 그것이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은 마음과 마음의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어지럽고 평화롭지 못한데 혼자만의 마음의 행복을 얻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존재를 고양시키는 가장 고귀한 행위는 몸과 마음이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려는 사회적 연대감에서 비롯된다. '웰빙'의 확산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황금만능주의와 말초적 욕망 추구를 집단적으로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웰빙'의 궁긍적인 지향이 결국 '웰빙 소사이어티'에 있다는 깨달음이 병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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