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초형 초제! 한 잔 하세"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19>공장일기(14)

등록 2003.12.04 13:08수정 2003.12.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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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내가 8년간 일했던 공장

내가 8년간 일했던 공장 ⓒ 이종찬

"어이~ 초형! 초제! 한잔하지."


"야, 임마! 넌 그만 빠져 주었으면 좋겠다. 외상값이 월급보다 휠씬 더 많이 밀려 있으면서 무슨 또 술타령이야."

"너무 걱정 마, 초형! 이 초제가 오늘은 위로의 술을 한잔 낼게."

당시 밀링과 탁상선반에서 일했던 우리들은 고된 공장 일이 끝나면 으레 약속이라도 한듯이 공장 옆 상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소줏집으로 몰려 다녔다. 초형, 초제란 말도 몸이 식초가 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는 형과 아우의 관계라는 그런 뜻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종일, 아니 매일 같이 이어지는 잔업과 철야근무 속에 온몸이 기름과 쇳가루, 기름연기 속에 범벅이 되는 공장 일이 힘겹게 끝나고 나면 그냥 맨 정신으로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쓴 소주라도 한잔 마시고 나야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처럼 기름연기로 많이 마시고 쇳가루에 범벅이 되는 공돌이들은 쐬주로 자주 마시가(마셔서) 몸에 쌓인 독기로 깨끗하게 씻어내야 된다카이."


"박씨 봐라. 그 양반이 우리맨치로 담배로 피우나, 술로 묵나? 그런데도 덜컥 암에 걸린 거 봐라."

"그라이 시계추맨치로 아둥바둥 살 필요가 없는기라.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가는 인생 아이가."


그랬다. 창원공단 옆에 위치한 상가에는 적어도 열시 이후가 되어야 번잡하고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적막했다. 어쩌다 외출이라도 하는 날에 공장을 빠져 나오면 공단대로 주변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보이지 않았다.

월급날
밀려오던 외상값 갚고
오랜만에 제법 큰소리 치며
동료들과 수입 삼겹살을 씹는다
화알활 타오르는 수입가스 불꽃 위에
치지직 익어가는 미제의 살덩이
대창 같은 젓가락으로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며
정신없이 쇳가루 쌓인 속을 채우면
어느새 우리 몸뚱이도 미제가 된다
끝없이 차오르던 우리들의 사랑도
구석구석 꽂힌 아픔도
아 꿈의 나라 미제가 되다가
언뜻 취한 눈을 들어 창 밖을 보면
아직도 환한 공단의 불빛으로
우루루 달려와 몸부림 치는 삼십 일
우리들 핏물로 익어가는 살덩이
허억! 이 원한의 살덩이
마침내 미제 비계로 회복한 건강으로
요염하게 몸 비트는 미제를 씹는다

(이소리 '삼겹살을 씹으며' 모두)


특히 월급날이 되면 창원공단 주변의 상가는 그 어느 때보다 요란하고 시끌벅적했다. 그리고 그날은 대부분 상가 주변 포장마차를 외면하고 제법 번듯한 삼겹살 집으로 향했다. 어릴 때부터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나 또한 그때 삼겹살이 그렇게 맛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러나 월급을 타고 공장일을 모두 마친 뒤에도 공장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더러 있었다. 왜냐하면 그 노동자들은 몇 개월째 밀린 외상값을 갚지 못한 탓에, 식당주인이나 술집주인들이 공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아, 누가 외상값을 주기 싫어서 피하나? 목구녕(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우선 밀린 방세도 내야 하고 쌀이라도 몇 말 사놓아야 할 거 아이가."

"그기 다 그때 불황 때 월급이 밀리는 바람에 생긴 빚 아닌 빚 아이가."

"참! 인자 갔다 카더나?"

"수위실에 전화를 해보이(해보니까)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카던데."

"그 여자 그거 디기(많이) 끈질기네. 때가 되모 다 알아서 갖다줄 낀데…."

그랬다. 그렇게 뼈가 바스라지도록 잔업과 철야근무를 해도 월급봉투는 생각보다 얇았다. 왜냐하면 미리 가불을 한 탓이었다. 게다가 그때까지도 불황 때 팔지 못한 시계값이 매달 할부금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오히려 월급날이 평소보다 더 괴로웠다.

그런데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를 악물고 매달 꼬박꼬박 적금을 붓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대부분 적금을 타서 그동안 밀린 외상값과 방세를 갚는데 썼다. 그러나 나는 다행히도 창원이 고향이어서 방세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날이 늘어나는 외상값이었다.

a 1980년 당시, 낮 시간 공단대로 변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얼씬하지 않았다

1980년 당시, 낮 시간 공단대로 변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얼씬하지 않았다 ⓒ 이종찬


당시 나는 나와 같이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내 고향이 창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심찮게 술을 샀다. 그것도 외상으로. 그러다 보니 나 또한 월급날이 되어도 외상값을 갚지 못하는 일이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의 부모님께서도 매달 내가 타는 월급으로 적금을 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니는 적금이라도 타가(타 가지고) 외상값이라도 다 갚을 수 있으이(있으니까) 고마 됐다. 나는 파이다(글렀다). 그래서 조만간에 공장을 그만두고 퇴직금 몇 푼이라도 타서 포장마차나 할 생각이다. 그라이 그때 너거들이 많이 도와 도라(줘)."

월급날, 그렇게 겨우 술집주인을 따돌린 우리는 곧바로 포장마차로 향했다. 그 포장마차는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최씨의 아내가 새벽까지 꾸리는 포장마차였다. 물론 그 포장마차에도 외상값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월급을 타면 늘 그 집의 외상값부터 제일 먼저 갚았다.

또한 최씨의 아내는 외상값을 갚을 때마다 그날 술과 안주를 모두 공짜로 주었다. 아무리 억지로 술값을 내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내가 그 집에 가장 먼저 가서 외상값을 갚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최씨는 같은 부서에서 늘 얼굴을 맞대고 같이 일하는 처지여서 외상값을 갚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그렇게 그 집에 들러 빈속에 깡소주를 한동안 들이붓다 보면 이내 바로 옆좌석에 앉은 다른 부서 노동자가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뽑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 누군가 젓가락 장단을 두들기기 시작하면 너나 할 것 없이 그 노래를 함께 불렀다. 동병상련이란 말은 그런 때 쓰이는 것일까.

"그나저나 자네는 어떡할 거야? 우찌 되었든 간에 그 집에 가서 조그만 성의는 표시해야 될 거 아이가."

"아까 멀리서 그 아지메 인상 본께네(보니까) 험악합디더. 외상값 몇 만원 줘 갖고는 기별도 안 갈 눈치던데…."

"어차피 우리가 맞아야 할 매 아이가. 잘못하다가 그 여자 그기 열 받아가꼬 내일 총무과로 달려오모 우짤끼고?"

그랬다. 공장 정문에서는 용케 피했지만 걱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월급날 외상값의 일부라도 갚지 않으면 다음날 아예 총무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술집주인에게 한 마디 들을 셈 치고 포장마차에서 나와 마치 죄인처럼 그 집으로 향했다.

"마악 문 닫을라카는데 우짠 일인교? 아까 공장에 찾아갔더니만 오늘 몸이 아파서 출근을 안 했다 카더마는."

"죄송합니더. 그라고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우선 좀 받아 주이소."

"내 참! 기가 막혀서. 그래. 그기라도 들고 제 발로 찾아왔으이 성의가 괘씸해서라도 안 받을 수가 없다 아이가. 그기 앉으소. 그래도 명색이 외상값을 갚았는데 공술이라도 한잔 주야(줘야) 안 되것나."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아도 1980년은 나에게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광주학살사건에 이어 <씨알의 소리>와 <남천문학>으로 인한 필화사건 아닌 필화사건, 몸서리나도록 고된 공장일, 그리고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나날이 늘어나기만 하는 외상값. 그랬다. 1980년은 내게 이 세상살이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 준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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