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퇴근하는 여자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18>공장일기(13)

등록 2003.11.27 12:48수정 2003.11.2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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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당시 밀링반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노동자들

당시 밀링반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노동자들 ⓒ 이종찬

1980년 당시 내가 일했던 생산 현장에는 나이 어린 여공들이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중학교를 갓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공장에 취직을 한 누이들이었다. 특히나 내가 다녔던 공장은 방위산업체여서 중학교를 졸업한 누이들에게는 인근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다.


당시 정부에서는 국가방위산업체로 지정한 공장이나 정부가 특별히 지정한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준다는 뜻에서 야간학교에 다닐 수 있는 특전을 베풀었다. 그 학교의 이름이 이른바 산업체 특별학교였다.

산업체 특별학교는 공단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선정, 해당 학교장 추천과 공장장의 추천을 받은 노동자들을 특별히 무시험으로 입학시키는 제도였다. 물론 수업은 하루 일을 마치고 야간에 받아야 했다. 그러나 등록금이나 회비가 100% 무상이 아니라 일정한 금액을 내야만 했다.

"니, 오늘따라 와 그래 울어 쌓노? 머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올개(올해) 또 미끄러지뿟다 아이가."
"옴마야! 우짜것노? 내도 올개는 니가 꼭 학교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라모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말이가?"
"내년에라도 확실하게 들어간다는 보장만 있다카모 내가 와 이리 울것노."

그랬다. 산업체 특별학교라고 해서 이 학교에 지원하는 노동자들 모두를 무조건 받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 중 특히 공장장 추천이란 게 가장 큰 변수였다. 아무리 해당 학교장 추천을 받아오더라도 공장장 추천을 받지 못하면 그만이었다. 산업체 특별학교의 입학 여부는 공장장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몰.라.요
북쪽으로 해가 떠서
남쪽으로 해가 지는지
어느 때가
어지럼 일게 푸르른 낮인지
어느 때가
기름장갑보다 더 캄캄한 밤인지
정말 몰라요
그래서 이번 일요일은
특근근무에 무단결근해서라도
저 험하고 높은 산에
현미경이라도 들고 올라가
자세히 살펴보고 오겠어요
어떻게 사는 것이
꽃잎처럼 아름답고 슬픈 것인지
불량품 가리듯이 살펴보고 오겠어요
그리하여
핏발 선 우리들 눈빛보다 더 벌건 대낮
공장 뜰에 나 몰라라 비웃듯
하얗게 피어나는 백목련 꽃잎에
시뻘건 분노의 피
마음껏 토하겠어요

-이소리 <누이의 꿈> 모두



당시 나와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권양(당시 18세)도 산업체 특별학교에 다니며 고된 공장 생활을 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아래의 글은 당시 권양을 지켜보면서 내가 일기장에 기록한 것을 다듬은 것이다.

a 내가 일했던 작업현장에는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수가 반반이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 17~8세였다.

내가 일했던 작업현장에는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수가 반반이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 17~8세였다. ⓒ 이종찬

하루에 두 번 출근하는 회사이지만 권양은 서글픔보다는 다행으로 생각한다.


얼마 전부터 동료들은 교대로 12시간 1, 2부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권양은 야간 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정상 근무밖에 할 수가 없다. 매일 오후 5시에 학교에 갈 때마다 동료들 대하기가 미안하다. 또한 올해도 산업체 특별학교 지원자가 수없이 많았지만 특별히 자신이 입학할 수 있도록 애를 써 준 부서장의 배려도 잊을 수가 없다.

"저도 2부제에 넣어 주이소."
"그래가꼬 학교는 우째 댕길라꼬?"
"학교 마치고 회사에 오모 저녁 8시 30분 아입니꺼. 저는 그때부터 아침 8시 30분까지 일로 하모 되지예."

12시간 1, 2부제는 1부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2부가 저녁 6시부터 아침 6시까지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부서장의 특별 배려로 권양은 저녁 8시30분부터 12시간 2부제를 할 수 있었다.

12시간 2부제 작업이 시작되자 그녀의 하루 일과는 거꾸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아침에 퇴근을 한 뒤, 낮에는 집에서 잠을 잔다. 그리고 오후 4시가 다가오면 찬밥을 대충 챙겨 먹고 학교에 갔다가 다시 공장으로 출근을 한다.

"아이구! 어린 것이 고생 많구나. 그래 또 출근이야! 피곤하지?"
"이거 드이소."
"이기 뭐꼬?"
"붕어빵입니더."

대낮처럼 불빛이 환하게 빛나는 공장에 도착하자 수위 아저씨가 나이 어린 권양을 아버지처럼 따스하게 맞이해 준다. 이윽고 작업장에 들어서자 사람이 기계인지 기계가 사람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자신의 자리로 와 앉은 권양은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눈인사를 하려고 해도 아무도 권양을 바라보는 사람이 없다. 모두들 넋이 나간 사람들만 같다. 무섭다. 갑자기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볼반기 옆에는 약속이라도 한듯이 권양이 작업할 제품이 수북히 쌓여 있다. 막 볼반기에 스위치를 누를 때 옆에 앉은 언니가 권양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한마디 던진다.

"야! 우린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가 되었어야. 참말로 우습기도 하지. 그치?"
"언니도 참! 누가 들으모 우리가 술집에 나가는 여잔줄 알것네."
"아, 술집 여자가 밤에 술과 몸을 파는 거나 우리가 밤에 노동을 파는 거나 그게 그거 아냐?"

사실 권양 자신도 그렇다.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야식을 먹고 아침 8시까지 졸음을 참으며 힘겹게 일을 하다 퇴근을 하여 집으로 돌아가면 금세라도 코피가 몇 사발 쏟아질 것만 같다. 파김치처럼 시든 몸을 방바닥에 눕혀도 이상하게 잠은 잘 오지 않는다.

거꾸로 산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것일까. 아무리 잠을 자려고 몸부림을 쳐도 결국 반은 잠이 들고 반은 깨어 있는 어설픈 수면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는지 마는지 하다 보면 곧 오후 4시가 다가온다. 몸은 천근 만근 무겁지만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밥이라도 한술 떠 먹고 학교에 가야 한다.

속이 몹시 쓰리고 아프다. 언뜻 작업반장이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출근한 날의 그 찌푸린 인상이 떠오른다.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의 얼굴은 퉁퉁 부어 살이 찐 것처럼 보이고,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다. 서둘러 안약 몇 방울을 두 눈에 떨어뜨리고 잠시 눈을 감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본다.

잠시 후 교복을 챙겨 입고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설 때 다시 한번 거울을 바라본다. 꿈 많은 여고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학교를 파하고 나면 또다시 공순이가 되어 밤새도록 일을 해야만 한다.

"어려움을 말로 다하모 니만 고달파진다 아이가. 그라고 그런 생각은 니를 망치는 기다. 옛말에 젊은 날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안 카더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비어져 나올 때마다 볼반공 순아 언니의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힘이 부친다. 그만 학교를 포기하고 싶다. 이렇게까지 해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쥐면 무얼 하나. 얼굴 곳곳에는 애를 몇 낳은 아줌마처럼 잔주름살만 자꾸 늘어난다.

하루에 이틀을 사는 사람들….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권양은 마음이 한없이 서글퍼진다. 그러나 권양은 공장에 불평이나 불만을 조금도 얘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공장에서 고등학교를 보내 주고 월급을 주는 것만 해도 큰 복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그친다.

밤 12시, 야식 시간. 그러나 모두들 식당에 가기보다는 잠시 눈을 붙힌다. 밤에 야식을 먹고 나면 속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더 졸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그냥 볼반기를 베개 삼거나 아니면 그냥 의자에 그대로 앉은 채 고개를 수그리고 잠을 잔다.

권양도 야식 시간에는 주로 잠을 잔다. 그러나 12시 50분이 되면 작업반장이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깨우기 시작한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 그대로 아침이 될 때까지 푹 자고 싶다. 하지만 어쩌랴. 감기는 눈에 안약 몇 방울을 떨어뜨려 넣고 또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그래. 모두들 잠이 많다기보다는 워낙 오래된 피로에 지쳐 버렸다. 하지만 졸면 안 된다.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자신만 손해다. 시말서는 당연하고 반장에서부터 계장, 과장, 차장, 부장에게까지 순차적으로 불려가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한다. 게다가 그렇게 한번 사고를 치고 나면 공장 퇴직 때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자, 자, 날이 샌다. 퍼뜩 퍼뜩 해치우자."
"니 오늘 작업량 다 해 가나?"
"말 씹히지 마라. 불량품 땜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밤새도록 새처럼 퍼덕이다 보면 먼지 낀 창이 희뿌옇게 밝아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12시간 1부제 근무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기지개를 한번 쭉 펴는 권양의 얼굴에도 그제서야 잔잔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그래. 오늘도 무사히 넘기는가 보다.

어두움 아프도록
어두움 가슴 아파
먼지 낀 창가에 검은 눈물 줄줄 흘려도
이 땅의 새벽은
끝내 오지 않을 것 같은
참으로 캄캄한 나라에 사는 공돌이 공순이

스윗치만 넣으면 잘도 움직이는
일본산 산업 로봇 같은 우리도
제 살을 찌르는 드릴 같은 분노를
모르는 것 아니다
따순 눈물과 불타는 사랑도 안다
그러나 산다는 것이 별것이더냐
거꾸로 산다는 것이 별것이더냐

팔목까지 기름에 열두 시간 이상 담그며
벌써 칠 년째 맞는 봄날 아침
공단로에 떼지어 피어난
개나리꽃 속에 잠겨
실컷 취하여 비틀거리고 싶지만
돈이 어딨노

하지만
이 개나리가 다 지고
우리들 그리움 같은 시퍼런 싹이 트면
가슴에 묻어둔 분노들 모두 모아
노동의 탈춤을 추리라

최루탄 가린 대학정문을 울면서 지나
연탄불 꺼진 달셋방에서
웃으며 번개탄을 태운다
밤샘한 육신에 녹아드는 피로를
화알활 태운다
저 착취의 검은 음모가
하얗게 탈색될 때까지

- 이소리 <봄날 아침>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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