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간판을 만들고 있는 아저씨. 미얀마의 글자 역시 독특하다.김남희
환전을 하고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나니 불쾌함이 배가 된다. 일본인 친구가 가려는 숙소와 내가 가려는 숙소가 멀리 떨어져 있다며 1인당 2불씩 달라고 해서 달라는 대로 줬는데 내려보니 엎어지면 코가 닿는 거리다.
게다가 글로벌 식당에 내려 그곳이 게스트하우스가 아님을 확인하고, 다른 게스트하우스로 가자는 순간 멀다며 1불을 추가로 요구한다. 또 1불을 주고 내려보니 반경 몇 백 미터 안이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데, 숙소라고 들어가 봤더니 론니 플래닛에 소개된 숙소 '화이트 하우스'에는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없다. 게다가 방들은 창문도 없이 어둡고 비좁은 데다 가격은 시설에 비해 비싸다.
이 귀곡 산장에 나 혼자 머물러야 된다고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난다. 방만 둘러보고 나오려고 하니 그조차 쉽지 않다. 가격이 문제라면 깎아 주겠다며 7불에서 6불, 5불까지 계속 내려간다.
"그게 아니라…저…사실은…다음에 다시 올게요."
차마 손님이 없어서 무서워 못 있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도망치듯 빠져 나와 다시 택시를 타고 '마더랜드 인 2'로 이동한다. 택시를 잡느라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다 맞으며 밤 늦은 거리에서 시간을 보낼 땐 정말이지 방콕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난 밤 내내 비가 내렸다. 아침에 눈을 뜰 때도 천막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의 아침은 "은서와 준서를 아느냐"는 숙소 여종업원들의 속사포 같은 질문으로 시작됐다. 이곳에 머물렀던 한국인 여행자의 이름인가 싶어 모른다고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국인이면서 어떻게 은서와 준서를 모르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송혜교'와 '송승헌'을 분명하게 말한다. 그제서야 <가을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임을 깨닫는다. 작년 가을 미얀마에 최초로 한국 드라마 <가을동화>가 소개됐는데 이 드라마가 미얀마 드라마 사상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단다.
미얀마 전 국민이 '은서'와 '준서'의 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니 이게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르겠다. 한참 <가을동화>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그 다음은 <올 어바웃 이브>를 아냐고 묻는다.
"이브의 모든 것?"
제목을 들어본 것도 같아 고개를 끄덕였더니 환성을 지르며 주인공들 이름을 줄줄이 댄다. 한 번도 못 들어본 이름들이다. TV를 전혀 보지 않는 내가 하루가 다르게 떴다가 지는 그 무수한 반짝별들의 이름을 어찌 알까? 당연히 모르는 눈치를 보였더니 이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