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가 가장 행복한' 환경미화원 상 받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주인공 감달호씨 '자연사랑회장상' 수상

등록 2003.12.05 10:13수정 2003.12.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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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사)자연사랑이 주최한 제7회 ‘환경미화원 시상식’ 이 열렸다 ⓒ 김진석

<오마이뉴스> 연재기사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세 번째 주인공 환경미화원 김달호(48)씨가 4일 자연사랑회장상을 수상했다.

행사를 주최한 사단법인 자연사랑은 지난 14년간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곤충 한 마리의 생명까지도 소중히….' 라는 철학으로 '자연사랑, 생명사랑'운동을 펼치는 민간 환경단체.

자연사랑은 매년 전국 환경미화원을 대상으로 자연, 생명, 지구, 가족, 재활용 사랑 분야의 수기를 공모해 우수작을 시상하고 있다. 이번 시상식이 벌써 7회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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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 김달호씨의 '고달픈' 하루

자연사랑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새벽 5시가 내겐 가장 행복한 시간(새벽을 여는 사람들3)'기사를 환경미화원 모범 수기로 선정해 김달호씨에게 상금 100만 원과 기념비를 수여했다.

"정말 꿈만 같아요.(웃음)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상이 될 거예요. 다른 일도 아니고 솔직히 이런 일(환경미화원)을 하는데 상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제가 공부를 잘해 상을 받겠습니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의미 있는 상을 받을 수 있나요. 아무 것도 아닌 날 취재해 상까지 받게 돼 너무 감사합니다.”

김달호씨는 당황스럽다고 쑥스럽게 말문을 열었지만 생애 잊을 수 없는 가장 뜻 깊은 상이 될 거라며 환하게 웃었다. 처음 수상을 알리는 전화에 김달호씨와 그의 가족들은 '잘 못 걸려온 전화'라며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기사가 환경미화원 시상식에 접수된 걸 몰랐던 터라 김씨는 두 번째 확인 전화가 왔을 때 깜짝 놀랐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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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 김달호씨는 자연사랑 회장상 모범사례부문을 수상했다. ⓒ 김진석

그는 <오마이뉴스> 기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며 상금 100만 원을 동료들의 점심 식사와 아내의 안경을 사주는데 쓸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그간 살아왔던 시절 중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였지만, 김씨 또한 환경미화원 일을 그만 두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기껏 밤새워 고생해서 일하고 들어왔는데 한참 나이 어린 젊은 상사들에게 쌍소리 들었을 때 이거 아니면 내가 밥 못 먹고 사나…. 하지만 내가 공부를 못 해 정말 힘들게 살아 왔던 그 삶을 알기에 우리 애들만큼은 어떻해서든 제대로 공부를 가르쳐야겠다, 힘겨웠던 내 삶을 애들에게 만큼은 절대 대물림 하지 않겠다라는 심정으로 참았죠.”

과거를 회고하던 김씨는 "너무 힘들고 어렵게 성장해 '꿈' 이라는 단어조차도 몰랐다"며 그간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 자식에게는 이 고생을 물려주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살았다고 한다.

방 한 칸에 일곱 식구가 모여 자던 시절. 일을 마치고 뒤늦게 집에 들어갔던 그는 가족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잠든 가족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결국 홀로 친척집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겨 청년기를 보냈던 김씨는 보이지 않는 미래와 현실의 고달픔에 소리없이 많이 울었노라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 아버지가 차례로 돌아가셨다.

"그나마 의지할 수 있었던 집안의 기둥이 하나 둘 쓰러지고 나니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솔직히 야밤에 몰래 나가 여러 번 죽으려고도 했어요. 근처에 팔당댐이 하나 있었는데 가족은 물론 아무도 모르게 그냥 소리 없이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죠. 그래도. 내가 죽을 힘이 남아있는데 뭐든 못 하겠냐. 그렇게 마음먹고 견뎌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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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 후 중매로 지금의 아내와 만나 건강한 네 식구의 가장이 된 김씨는 "아내가 없는 집으로 시집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며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두 자녀를 잘 키워준 아내가 그저 고마울 뿐이라는 그는 바쁜 직장 생활로 허약해진 아내의 건강을 염려했다.

김씨의 아내 유명숙(47)씨는 "아직 축하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다" 며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온 남편 삶의 대가를 받은 것 같다"고 기뻐했다. 그는 꽃다발을 준비 못 한 게 연신 마음에 걸린다며 허황된 삶을 살지 않고 가정에 충실한 김씨가 고맙다고 말했다.

"솔직히 사는 게 바빠 남편이 나온 <오마이뉴스> 기사도 아직까지 확인을 못했어요. 우리는 전혀 상상을 못했죠. 기사는 완전히 잊고 있었어요. 게다가 이런 일을 하면서 상을 받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아마 남편에겐 소중한 추억이 될 거예요."

이들 부부가 일주일 동안 얼굴을 마주보며 아침 식사하는 횟수는 월요일 딱 한번 뿐이다. 근무 시간이 서로 반대이다 보니 유씨는 남편에게 제대로 따뜻한 아침상 한 번 차려 준적이 없다며 연신 미안해했다.

"이 세상에 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디 있나요? 우리도 많이 싸우죠. 부부 사이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늘 같이 있어요. 항상 좋은 것만도, 또 나쁜 것만도 아닌 게 부부죠. 화나는 건 결국 순간이에요. 그 때만 넘기면 또 자연스레 잊혀지죠. 서로의 단점을 보듬고 얼마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가가 가장 중요해요. 이는 부부뿐만 이 아닌 모든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죠."

유씨는 일 년에 서너 번은 부부싸움을 한다며 너무 말이 없는 걸 김씨의 단점으로 꼽았다. 막 돌이 지난 딸과 텐트에서 겨울부터 봄까지 6개월을 보낸 신혼시절. 결혼 패물을 팔아 전세방을 얻기까지의 고단함을 회고하는 유씨의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냄비 하나와 밥그릇 두 개로 버텼던 텐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어떻게 견뎠나 싶어요. 아휴… 그 당시엔 힘든 줄도 몰랐어요. 아니 환경이 우리에게 힘들다는 생각을 할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죠.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떳떳이 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유씨에겐 평생 가슴에 응어리 진 '한'이 하나 있다. 어린 시절 글을 잘써 상도 받고 공부를 잘해 장학생으로 중학교를 다닐 수도 있었지만 "어디 여자가……" 라는 아버님의 만류와 가난으로 학업을 포기한 일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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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게재된 기사의 사진 중 하나. ⓒ 김진석

"솔직히 집안에서 떠미는 결혼보다는 정말 공부를 더 하고 싶었어요. 만약에 제가 제 고집대로 욕심을 부려 공부를 했더라면 제 인생이 지금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일 때문에 공부를 못하지만, 나중에 자식 다 키우고 여유가 생기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요."

이미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유씨는 교사가 되고 싶었던 과거의 꿈은 잊어도 배움의 꿈만은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김씨와 함께한 어제와 오늘이 결코 후회스러운 건 아니다. 오히려 유씨는 많이 배운 이보다 더 정직하게 성실한 삶을 사는 그들의 현재를 자랑스러워 했다.

"간혹 많이 배운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하거나 비웃기도 해요. 얼마나 못 배웠길래, 얼마나 가진 게 없어서 저리 냄새나고 더러운 직업을 선택했나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많이 배운 당신들처럼 사람을 비웃지도 않고, 거짓말도 안하고, 남에게 사기치는 일도 없다고 속으로 생각하죠. 우리는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사느라 남에게 하나도 거리낄게 없어요. 오히려 떳떳해요."

유씨는 김씨와 함께 일군 삶이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다고 말했다. 건강하고 올바르게 성장한 자녀들을 보며 이제야 한 시름 놓은 이들 부부는 앞으로도 그들이 처한 삶을 충실히 살아내겠노라고 다짐한다.

한편, 이번 행사를 통해 접수된 환경 미화원과 그들 가족의 진솔한 얘기들은 '환경미화원 이야기'(가칭)라는 소책자(약 10만 부)로 제작,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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