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59

진보, 개혁, 보수, 수구 (7)

등록 2003.12.05 05:32수정 2003.12.0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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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는 운하를 통해 남과 북, 그리고 동과 서를 잇는 내륙 교통의 중심지였다. 이런 서주에서 이정기의 군사와 대적하였던 무령군 소속 군중소장 장보고는 당나라 연합군의 일원이었다.

그에 대한 사서의 기록은 이정기 왕국이 패망한 직후부터 십 년 동안 공백으로 되어 있다. 그런 그가 다시 역사 속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청해진에서이다.


그는 어떻게 십 년이라는 짧은 세월만에 해상을 완전히 장악할 정도로 강력한 세력의 수장이 될 수 있었을까?

그가 해상을 통한 국제 무역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산동성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재당 신라인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당나라에 들어와 그들만의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배고픔 때문에, 혹은 신라의 엄격한 신분제도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당나라행 배를 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운하 주변에서 살고 있었다. 자연 물길에 대해서는 도가 텄고, 그들을 보살피던 장보고는 무역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장보고 선단의 도움으로 당나라로 향했던 왜국의 구법승(求法僧) 엔닌(圓仁)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의하면 산동성 밀주(密州)에는 신라인 마을이 있었다.


등주에도 신라관과 발해관이 있다고 전한다. 밀주와 등주는 이정기의 영토였다. 뿐만이 아니다. 당시 신라인 마을이 있었던 지역 중에서 절반 이상이 이정기의 영토 안에 속했다.

이정기 왕국에는 신라인들도 대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장보고는 이정기가 같은 한족인 줄 모르고 있었다. 단순한 반란군인 줄 알고 토벌 길에 나섰던 그는 그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즉각 대적 행위를 멈췄다. 그리고는 중원 한복판에 한족(韓族)의 나라를 세우려던 그를 흠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이정기를 만났고, 얼마 후 그의 매제(妹弟)가 되었다.

장보고의 호쾌함을 눈여겨본 이정기가 자신의 누이동생과 혼례를 치르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정기 왕국이 패망한 직후 마땅한 구심점을 찾을 수 없던 많은 장수들과 군사, 그리고 신라 유민들이 장보고 휘하에서 다시 뭉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덕분에 청해진이 급속하게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소녀 존경해마지 않던 선인의 후손을 뵈니 감개가 무량해요."
"이, 이러지 마시오. 소생은 한낱 의원일 뿐 지금은 선조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중입니다."

"아니에요. 소화타께서 어떻게 무천의방의 부방주가 되셨는지는 선무곡까지 알려졌어요. 신의 경지에 달한 의술을 지니셔서 수많은 목숨을 구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흠모해 마지 않았는데 장보고 어르신의 후손이라 하시니 더욱 대하기가 어렵군요."

"에구, 그 무슨 말씀을… 소문이란 늘 부풀려지기 마련입니다. 소생에 대해 어떤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으나 반만, 아니 일 할만 믿으시면 맞을 겁니다."

"어머, 아니에요. 어찌 그런 말씀을… 소녀가 듣기론…"
"자자, 인사치레는 이제 그만 하고, 무슨 일인지 이야기부터 했으면 좋겠소이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홍여진은 깜박 잊고 있었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고혹스런지 아찔할 지경이었다.

"단주님! 전에 지시하셨던 대로 악인록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하였어요. 그 결과 전의 조사 내용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어요. 그래서 어찌 할 것인지 하명을 받으려고 왔어요."
"으음! 전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하시었소?"

"그래요. 거의 변동 사항이 없다고 보시면 되요."
"으으음…!"

이회옥은 침음성을 토했다. 전과 같은 결과라면 죽여야 할 인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홍여진이 직접, 그것도 이처럼 야심한 시각에 의성장을 방문할 정도라면 단원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였다.

그들은 선무곡이 과거의 악습(惡習)과 구태(舊態)에서 벗어나 나날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열혈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으음! 악인록에 기록된 인물들을 다시 분류해주시오."
"다시 분류하라 하심은 무엇을 어떻게…?"

스스로 총명하다 자부하던 홍여진이었지만 이회옥의 말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워낙 모호하였기 때문이다. 하여 반문하려는 순간 이회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악인록의 인물들을 분류하되 진보(進步), 개혁(改革), 보수(保守), 수구(守舊)로 구분해 주시오. 진보라 함은…"

이회옥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선무곡을 떠나 무림천자성에 당도한 이후 스스로 정립한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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