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앞둔 예체능계 학생들의 비애

입시 모순 가장 많이 안고 있어

등록 2003.12.08 09:20수정 2003.12.0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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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공개되는 날, 반가운 친구 하나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술을 공부하는 H군이다.

수능시험이 끝난 뒤부터 눈에 뛰지 않던 H군이었기에 반가울 수밖에. 수능 전에는 곧잘 점심을 먹으러 갈 때 같이 뛰어가곤 했던 친구다. 그런데 수능이 끝나 많은 날이 지난 지금 그 친구를 만나보았더니 얼굴이 수척한 것이 영 안돼 보였다.

장난 겸 안부를 물을 겸 툭 치며 “요즘 어떻게 지내냐?”했더니 이내 얼굴 표정이 어두워진다. 피곤이 누적되어 짜증이 이는 듯 기지개를 쭉 펴며 처음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잠시 동안에 침묵이 이어지더니 H는 내게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H: “요새 정말 잠을 잘 못 잔다. 하루 종일 그리고(그림) 또 그리고 아주 죽을 맛이다.”

S: “이런 거 물어봐서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대충 몇 시에서부터 몇 시까지 그리냐?”

H: “대개 8시에 시작을 하는데, 30분 일찍 도착해서 준비를 해 놔. 그래야지 더 편하고. 그리고 간단하게 점심시간 30분 정도 빼고 12시까지 계속 그림 그리는 거지. 아니다 저번 주에는 밤을 새서 그렸다.”


S: “헉, 밤새서 그리고 다음날 또 그리는 거야?”

H: “그렇지 모. 근데 내가 완전히 밤새운 건 아니고(웃음) 새벽에 조금 잤다. 어떻게 잤냐면 그림 그리는 폼 그대로 잠들었는데, 그림 위에서 자면 망가지니까, 지우개 하나를 그림 위에 올려놓고, 이마를 거기에 기대어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까 아침인 거야. 근데 얘들이 막 웃더라고. 그래서 왜 그런가 했더니 이마에 그 지우개가 붙어서 일어날 때까지 안 떨어졌지 뭐냐.”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려대는 H군의 생활. 그에게 주어지는 여유시간은 점심시간 30분과, 선심 쓰듯 학원에서 내리는(?) 십 여 분의 쉬는 시간이 전부라고 한다. 수능이 끝나고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는 인문계 학생들과는 분명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번에 수능시험을 그리 만족스럽게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기는 거의 완벽해야 한다고 H는 마음을 다졌다.

대학입시가 치열하다고 한다면 언뜻 인문계학생들의 경우만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예체능계 학생들도 학원에서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공부해야 할 만큼 입시 경쟁은 치열하다.

이렇듯 하루하루가 바쁜 상황에서 H군은 자기에 비해 여유롭게까지 보이는 인문계학생들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듯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느니, 노는 것이 지겨워서 무엇이든 해야겠다느니 하는 다른 친구의 말을 듣더니 H군은 “그 시간에 차라리 편하게 놀아. 나는 그러고 싶어도 못 노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H군이 예체능계 학생으로서 겪는 비애는 수능 이외에도 실기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 말고도 또 있다. 사교육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예체능계 학생들의 대학입시 시스템이 그것.

언론에서는 우리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인문계학생들의 과외나, 학원 강습에 대해 언급하기는 하지만, 예체능계 학생들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실질적인 사교육비의 피해자는 바로 예체능계 학생들이다.

유명한 미술대학들이 있는 곳, 이를테면 홍대 앞의 경우를 본다면 그러한 것이 진실임을 알 수 있다. 이름난 학원들은 수강료가 40만 원에서 50만 원이 넘으며 이른바 ‘변두리’라고 할 수 있는 학원들도 3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또한 별도로 구입하는 미술용구의 비용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는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내용이 아니다. 체육을 전공하려는 학생들도 학원은 필수이다).

사정이 이러니 웬만큼 잘 사는 경우가 아니면 분명 예체능계 학생들의 과외비는 가정경제에 부담이 될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과외비가 비싸다고 해서 인문계학생들처럼 독학을 해서 입시를 치를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능시험 성적이외에도 실기시험을 보기 때문에 이른바 ‘경험자’들의 직접적인 조언과 지도가 필요한 예체능계 학생들, 그런 상황 때문에 입시를 치르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학원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인문계학생들에 경우 과외는 선택적이며 부수적인데 비해서, 예체능계학생들은 과외가 필수적이다).

이밖에도 예체능계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은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이다. 사회로 확대할 것도 없이 인문계를 선택한 학생들이 대부분인 학교에서도 편견의 대상이며,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그런 상황이 아니므로 내 알바 아니라는 무관심의 대상이 바로 예체능계 학생들이다.

H군은 예전에 인문계학생들이 한창 수시에 대해 혹은 대학입시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는 소외감을 느껴 불편하다고 했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 이야기 하는 ‘대다수’의 인문계학생들을 보고 그렇게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예체능계들은 공부를 못해서 하는 거다’라는 식의 어이없는 편견이나 ‘예체능계는 인문계생들 공부하는 것 보다 쉽다’라는 식의 편견도 그들을 마음 아프게 하는 요인이다. 수능시험 이외에도 실기 시험까지 신경 써야 하는 예체능계 학생들의 노고를, 그렇듯 많은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심한 경우 색안경까지 끼고 바라보는 것이다.

같은 시대, 같은 장소를 살아가기에 대학 입시의 고통으로부터 똑같이 자유로울 수 없는 예체능계 학생들. 일간지에 ‘인문계 9.4점 상승, 자연계 4.8점 하락’이라는 기사 제목 속에서도 소외받는 예체능계 학생들은 지금 학원에서, 이 시대의 대학들이 요구하는 자격을 충족시키려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단지 소수란 이유 때문에 그들은 비주류이고 관심의 밖인가? 이제는 사회에서 그들의 힘겨운 행보도 따뜻하게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또 한 가지. 교육당국은 연말, 교육개혁의 청사진에 대해서 밝힌다고 했는데, 그곳에 예체능계 학생들에 관한 항목도 있을지 의문이다. 사교육 문제로 인한 교육개혁을 이야기한다면 사교육에 어쩔 수 없이 목맬 수밖에 없는 예체능계 학생들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입시의 딜레마는 예체능계 학생들에게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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