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할 일 없이 이곳 저곳을 방황하던 고3이 드디어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되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갈비집. 그렇게 가까운 거리를 두고 왜 먼 곳까지 헤맸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어쨌든 의기양양하게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되었으니 다른 치들에게도 온갖 성숙한 폼을 잡으며 자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절로 들었더랬다.
그런데, 웬 걸 이 아르바이트라는 것은 생각한 것만큼 쉬운 것이 아니었다. 과연 무슨 폼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어수룩하기 그지없는 고3은 처음 모든 것이 낯설었고, 계속 실수만 해댔다.
컵을 깨고, 손님이 주문한 고기를 엉뚱한 테이블로 나르는 등 주인집에서 시키는대로 만족스럽게 할 수 있었던 일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손님이 적게 오는 날에는 그러한 실수가 용인될 수도 있으나, 요즘처럼 망년회니, 계모임이니 하여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몰리는 경우에는 그러한 것이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까 손님한테 욕을 먹은 적도 있고, 주인에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다만 그 집에서 내가 가장 어리다는 것이 다행이면 다행이었다. 그곳에서 같이 일하는 형도 누나도 내가 가장 어리고 아르바이트는 난생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다며 봐주곤 했으니까.
하지만 많은 실수를 하고, 여러 사람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연발할수록 자기 불신이 들었으며 왜이리 한심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해라. 처음엔 다 그러기 마련이니까. 마음의 여유를 좀 가져. 손님이 많이 왔을 때도 그렇단다. 나 자신이 바쁘면 정말로 바빠지게 마련이다. 천천히 하나하나 일을 해 가면 해결돼."
아르바이트 하는 하루하루를 단편적으로 보게 된다면, 요즈음을 살아가는 고3으로서의 나를 관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학원서를 쓸 때도 그랬지만 정말이지 세상에 나가는 것이 무섭게만 느껴졌고 커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너무도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정말 하고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과연 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런 하루하루를 보낼 때마다 어떠한 일이든 실수하게 마련이었다. 대학원서를 쓸 때 점수표를 잘못 읽어서 혼자서 일희일비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조금 더 내 일에 시간을 가지고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고 그래도 제법 잠잠할 줄 알게된다.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것은 고인 물과 같았던 학교를 떠나 더 큰 사회에 나가기 전 얻은 가장 선이 굵은 교훈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조금 더 자잘한 배움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있었다.
걸레를 비벼서 잘 빠는 일부터 설거지, 굵은 통조림을 따는 법 등등 평소에 내가 전혀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 잘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배우면서 손이 베기도 했고, 데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까 우리 집안 일을 하는 것은 오로지 엄마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 동안 왜 그리 무심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드디어 엄마의 노고에 대해 눈뜨게 된 것이다.
엄마는 항상 집안 일을 도와주지 않는 아빠, 누나, 나를 향해서 호통을 치곤 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는 안다. 그런 의미에서 가끔 설거지를 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겉만 양성평등주의자였던 내게는 이러한 일이 새로운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싶다. 몸으로 움직일 때만 생각이 따른다는 것도 다시 깨우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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