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화가 예술혼이 깃든 곳, 그 흔적을 찾아

[서귀포 70경(14)] 40년 짧은 예술의 삶 '이중섭 문화의 거리'

등록 2003.12.07 23:29수정 2003.12.0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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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중섭 거주지 초가

이중섭 거주지 초가 ⓒ 김강임

서귀포시 정방동 512-1번지 일대는 이중섭 문화의 거리이다. 그곳에 가면 한 예술인이 살았던 삶의 흔적이 있다.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이중섭 문화의 거리도 아스팔트 위에 길이 있고, 길 옆에는 그리 높지 않은 콘크리트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다만,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 길 끝에 바다가 있고, 그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초가가 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보는 이에 따라 그 감흥이 다르다. 어떤 이는 쪽빛 바다를 보며 한가득 희망을 품어 볼 수 있겠고, 또 다른 이는 그리움을 되새김질하는 ' 소'를 연상할 수도 있겠다.


a 섶섬이 보이고

섶섬이 보이고 ⓒ 김강임

그리움을 되새김질하는 소. 불같은 예술혼을 불사르다 4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화가 이중섭. 피난당시 거주했던 초가는 가난하지만 억척스러운 이미지를 풍긴다. 더욱이 이 초가에서 보이는 섶섬의 풍경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마치 신기루 같다.

서귀포시는 6·25사변을 맞아 서귀포에서 피난생활을 하며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천재화가 이중섭을 기리기 위해 96년 3월 2일 피난당시 그가 거주했던 서귀동 512번지일대 360m거리를 '이중섭 거리'로 선포하고 이 거리를 서귀포 70경의 한 곳으로 지정했다.

화가 이중섭은 전통의 아름다움과 현대적 감각이 잘 조화된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한국근대미술을 연 인물로 암울한 시대와 불우한 환경, 비극적 삶 속에서도 한국미술사에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다.

a 초가 뒤로 보이는 이중섭 미술관

초가 뒤로 보이는 이중섭 미술관 ⓒ 김강임

제주도와 인연이 된 것은 그의 나이 36세 때였다. 자신의 이상향을 찾아가는 것은 예술인의 당연한 행위. 이중섭은 1951년 초 가족과 함께 부산을 떠나 제주도로 피난했다. 그의 작품, '피난민과 첫 눈'은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기도 하다.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머무르면서 '서귀포의 환상', '게와 어린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a 이중섭 거리

이중섭 거리 ⓒ 김강임

360m 거리, 이중섭 문화의 거리를 걷다보면 가슴에 와 닫는 것이 있다. 먼저 이중섭이 거주했던 초가로 발길을 옮겨보자. 그 초가에서는 화가의 피난시절 가난했던 예술인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중섭 화가가 묵었다는 방은 창문만 열면 바다가 보인다. 얼핏보기에 두 평도 채 안돼 보이는 1.4평 정도의 길쭉하고 허름한 방. 부엌으에는 두 개의 솥과 허름한 민구 몇 개가 전부다. 부엌은 1.9평 정도로 겨우 한 사람이 움직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비좁은 곳이다.


a 이중섭 미술관 입구

이중섭 미술관 입구 ⓒ 김강임

초가 뒤편에는 현대식 건물로 다듬어진 이중섭 미술관 있다. 이중섭 미술관에서는 개관 1주년 기념전이 오는 12월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a 예술혼을 깃들이기 위해...찻집도 '서귀포 환상'

예술혼을 깃들이기 위해...찻집도 '서귀포 환상' ⓒ 김강임

더욱이 이중섭 거리에는 예술인의 혼이 담긴 듯한 '서귀포 환상'이라는 전통 찻집과 중섭식당이 있어 운치를 자아낸다.

a 주소지도 '이중섭 거리'로

주소지도 '이중섭 거리'로 ⓒ 김강임

누가 살고 있는 집일까? 이 집의 주소는 '이중섭 거리 61'이다. 무슨시 무슨동 몇번지 라고 쓰는 것보다 ' 이중섭 거리 61'이라고 써 붙이니 훨씬 외우기도 편하다. 더욱이 예술인이 살다간 마을 같은 분위기가 풍겨 나오는 듯 하다.

a 야외전시대

야외전시대 ⓒ 김강임

360m 이중섭 거리를 걷다보면 서귀포 70리 길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이유는 산과 바다 그리고 폭포. 사찰 등 그동안 걸어 왔던 70리 길이 모두 이중섭 거리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보았던 정방폭포와 천지연 폭포가 지척이다.

a 거리마다 흔적이

거리마다 흔적이 ⓒ 김강임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보니 섶섬은 간데 없고, 길 위에 찬바람만 불어온다. 이중섭 화가가 느꼈던 '가난했지만 행복했다던 제주도 생활' 이 머리에 떠올려지는 순간이다. 늘 마음이 허 할 때마다 서귀포 70리 길을 혼자서 떠나왔던 '나'처럼.

누군가는 말했다. 제주도는 축복 받은 자들만이 살아가는 곳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도를 추억과 낭만 그리고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알랴. 이중섭 화가처럼 제주에서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될는지.

그러나 서귀포 70경의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모두 담아오기에는 내 깜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운 서귀포. 서귀포에 온 김에 바다나 실컷 보고 가자. 그리고 이중섭 화가가 자주 갔다던 '소낭머리'로 발길을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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