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까지 팔리지 않고 남은 아내와 나의 옷들. 키위들은 외모를 가꾸고 꾸미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정철용
그런데 12시가 다 되어서 찾아온 젊은 키위 남녀가 옷걸이에서 내 순모 양복 상의를 하나 꺼내 입어 보더군요. 자주색 넥타이도 하나 꺼내서 맞춰봅니다. 맘에 드는 모양입니다. 가격을 물어봅니다. 양복 상의는 15달러, 자주색 넥타이는 1달러, 합쳐서 16달러라고 대답해주었더니 10달러에 줄 수 없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나는 "노(No)"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시간도 다 되어 팔리지 않을 텐데, 그러면 이건 도로 상자 속에 쑤셔 넣어야 되는 게 아니냐?"라고 흥정을 해 옵니다. "그러면 내가 다시 입을 거다"라고 대답은 해주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한참입니다. 그들은 지갑을 열어보고는 서로 뭐라고 주고받더니 사정조로 다시 말을 건네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진 돈이 10달러밖에 없어서 그런데, 정말 10달러에 안 되겠느냐?"
우리 집 게라지 세일의 마지막을 차지한 내 재킷과 넥타이는 결국 10달러에 낙찰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10달러밖에 돈이 없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막판 떨이를 노리고 온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들의 영악함에 나는 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또 하나를 배웠으니 그리 나쁜 거래만은 아니었습니다. 게라지 세일에서 좋은 물건을 값싸게 사는 두 번째 방법, 즉 '차고 문 내리기 전 막판을 노려라'라는 것을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차고 문을 내리고 계산해 보니, 우리가 토요일 오전 4시간 20분 동안 게라지 세일을 통해서 벌은 돈은 지역 신문 광고료를 빼고 모두 오십만 원 정도이더군요. 살림살이에 붙은 군살도 빼고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돈도 벌었으니 기분이 몹시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분이 좋았던 것은 우리 집에서는 이제 소용없는 물건들이 쓰레기로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제 가치를 인정받아 이제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몸의 군살은 다이어트로 없어지고 말지만 살림살이에 붙은 군살은 이렇게 게라지 세일을 거치면서 다른 사람의 긴요한 살림살이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이상적인 것은 게라지 세일을 할 필요가 없도록 아예 살림살이에 군살이 붙지 않게 평소에 조심하는 것입니다. 충동 구매와 과시용 소비 대신에 절제와 검약을, 조금이라도 편하고자 하는 생활의 편리 추구 대신에 가능하면 스스로 땀 흘려 만들고 가꾸는 데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 생활 방식으로의 전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보기 싫게 나온 뱃살을 '인격'이라고 두둔하는 것이 천만의 말씀인 것처럼, 우리 살림에 알게 모르게 낀 군살은 더 이상 '풍요'의 상징이 아닙니다. 다이어트는 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살림에도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이번 게라지 세일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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