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광고판에는 밥통과 같은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자동차, 심지어는 팔려고 내놓은 집도 등장한다.정철용
게라지 세일은 말 그대로 그 집의 게라지(차고)에서 그 집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내놓고 파는 것인데, 우리 가족이 처음 이 곳에 이민 와서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것저것 구경하고 다니던 때에는 주말 아침에 게라지 세일하는 집들 몇 군데를 순례하는 게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팔려는 물건들이라는 것은 대부분 다 낡아빠진 소파나 찌그러진 부엌 소품들, 깨진 곳이 있는 장식품들, 녹슨 정원 손질 기구들, 허름한 옷들, 오래된 음악 테이프나 책들이어서 물건의 풍요 속에서 살다가 온 한국인 이민자들이 선뜻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들은 별로 없다.
게라지 세일에서 배운 검소함
그런 곳을 수십 군데 구경 다니며 실제로 우리 가족이 건지게 된 물건들은 딸아이를 위한 소설책 몇 권과 해변용 의자 두 개가 고작이었지만, 정작 큰 수확은 우리의 생활 태도가 그 후로 몰라보게 검소해졌다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집에서 하는 게라지 세일은 그 규모가 작지만, ‘게라지 세일 축제(Garage Sale Festival)’는 다르다. 오클랜드에서 차로 한 시간 가량 가면 ‘나테아(Ngatea)’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 곳에서는 매년 한 차례씩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팔고 싶은 중고 물품들을 가지고 와서 파는 행사인 ‘게라지 세일 축제’가 열린다.
그 날 그 마을의 큰 길이나 작은 길에는 온통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핫도그나 햄버거, 솜사탕 등을 파는 행상들도 늘어서기 때문에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축제가 열리는 장소 같다.
우리 가족은 두 해 연이어 그 곳에 갔는데, 거기에서도 물건 사기보다는 가족나들이를 나온 기분으로 이것저것 사먹고 다니면서 사람들 구경하고, 그 마을의 집들이나 정원 손질 상태를 꼼꼼히 보곤 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도 역시 이 곳 사람들의 물건 아껴 쓰는 문화를 가깝게 들여다본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각 마을마다 주말에 여는 주말시장에서도 중고 물건들을 팔려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거리에 중고품 상점들이 많은 점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 중 하나이다. 중고품 가게에서는 남이 쓰던 물건들을 잘 손질해 내놓기 때문에 어떤 것들은 새 물건 못지 않게 구매욕을 자극한다.
그러던 어느날, 이민 올 때 한국에서 쓰던 물건들을 처분하고 왔기 때문에 더 이상 정리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 안을 둘러보니 짐만 되는 가구들과 물건들, 옷들이 제법 많았다. 아내와 나는 그것들을 처분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