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소호, 돈에 굶주린 미술상 거리인가

정윤아의 <뉴욕 미술의 발견>

등록 2003.12.12 09:59수정 2003.12.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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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뉴욕 미술의 발견>

책 <뉴욕 미술의 발견> ⓒ 아트북스

"갤러리는 정말 돈에 굶주린 추한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화이트 큐브'일까? 아트 딜러는 작품을 팔기 위해 미술 작품을 갤러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만 급급한 파렴치한 장사꾼이란 말인가? 정말이지 그 고상한 얼굴 속에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먹성 좋은 자본주의의 괴물의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인가?"

이 책은 뉴욕에서 미술행정학을 공부하고 큐레이터 활동을 해온 작가가 뉴욕의 갤러리, 경매장, 미술관 등을 통해 본 미술 시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과거 미술의 중심이 프랑스의 파리에 있었다면 현대 미술의 중심은 뉴욕에 존재한다.


뉴욕이 미술의 거대한 시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미국적인 자본주의와 미술 분야가 손잡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논리에 얽매여 미술이 휘둘리기보다는 미술은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갖고 제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작가는 오랜 뉴욕 생활과 미술계에 대한 관찰을 통해 뉴욕 미술의 현재 모습을 조명하고 앞으로 현대 미술이 나아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 나라의 좁은 미술 시장과 더딘 발전을 고려할 때에 그녀의 거시적 관점은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뉴욕의 소호 거리에 집중해 있던 갤러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근에는 이 곳의 엄청난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첼시 지역으로 이주해 갔지만, 소호 거리는 현대 미술을 대표할 만한 갤러리들의 총집합이다.

이 거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딜러들은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면서 그들과 계약을 맺는다. 딜러들의 역할이란 유능한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것이다.

딜러와의 계약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들은 그들의 손을 거쳐 갤러리에 전시되고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 자본주의적 논리에서 볼 때 아티스트와 딜러의 결합은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돈을 벌어들이려는 목적의 음흉한 속셈이 깃들 수 있으며 그러한 타락을 조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갤러리와 딜러, 아티스트들의 관계는 현재까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미술 정신은 죽지 않았다'는 신념 속에 작가들은 적절한 후원 아래 아무 걱정 없이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딜러들 또한 일단은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에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적 후원 속에 현대 미술은 그 질적 발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난을 던질 수도 없을 것 같다.


미술 작품을 하나의 상업적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보는 관점은 특히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작품에 얼마의 가격이 매겨지느냐에 따라 그 작가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경매장이다.

많은 작가들은 이 현대 미술품 경매에 반감을 갖고 있지만, 작가들을 후원하는 딜러들의 입장에서는 경매를 통해 작품의 상품 가치를 높이고 이익을 보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리고 미술품 컬렉터들에게도 경매 시장은 미술품의 소장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이처럼 상업성과 맞물린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 '아트 스타'라는 새로운 이름의 작가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이들은 작품의 값어치와 함께 자신의 몸값을 불린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의 작품이 뛰어난 예술성을 지니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상업적 목적에 얽매여 예술이 추구하는 순수한 정신을 헤친다면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시선을 보낼 수는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이와 같은 예술의 상업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많이 표현한다.

"사실, 역사가 오래된 이 같은 공식이야말로 체계화된 뉴욕 미술 시장의 힘이다. 그런데 이런 공식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더욱 심화되면서 뉴욕 미술관들의 전시 내용과 펀딩의 형태가 눈에 띄게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핵심은 돈이다. 미술관 전시를 후원하던 재단이나 대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미술관들은 자체적으로 자본을 조달할 만한 전시를 기획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에 따라 미술관이 마치 부유한 컬렉터의 에이전트 같은 역할을 담당하며, 예술이 아니라 돈을 좇아 전시를 기획한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공공 기관인 미술관이 일반 대중을 교육시키고 미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확대시키는 목적에는 충실하지 않은 채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개탄이다. 이와 같이 안타까운 현실이 나타난 데에는 미술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부족이 가장 큰 요인이다.

작가의 지적은 현재 우리 나라에도 적용된다. 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가 그 돈마저 엉뚱한 데로 흘러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술관 또한 잘못된 엘리트 지향주의를 보이면서 대중을 외면한 채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경우가 많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가 던지는 충고는 우리 미술계에 대한 경종이다.

"뉴욕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의 화려한 외관만 흉내낸다고 예술의 메카인 뉴욕처럼 될 수는 없다. 우리의 미술계는 너무 외관만 키워온 것이 아닌가 싶다. 미술관 건물을 화려하게 짓고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갤러리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릇을 어떻게 디자인 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그릇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를 먼저 꼼꼼히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미술은 정말 질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 좋은 작가들을 후원할 만한 적절한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는지, 양적 부풀리기에 급급하여 진정한 예술성의 추구는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은 반성해 볼 일이다.

뉴욕 미술의 발견 - 갤러리, 경매장, 미술관 그리고 아트 스타들

정윤아 지음,
아트북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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