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불태워 어둠 밝힌 그대,살아오십시오"

[현장] 108일만에 치러진 세원테크 두 노동자 영결식

등록 2003.12.12 20:04수정 2003.12.13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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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씻김굿 "이제 살아오십시오"

씻김굿 "이제 살아오십시오" ⓒ 오마이뉴스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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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승욱


a 12일 오전 세원그룹 앞 합동영결식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 등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헌화를 한 후 묵념을 하고 있다.

12일 오전 세원그룹 앞 합동영결식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 등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헌화를 한 후 묵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이제 살아오십시오 / 당신의 뜻대로 바리케이드를 철거했습니다 / 현중이를 살려내라고 세원정공 철문에 매달려 / 몸부림 치시던 어머님 / 상복대신 투쟁조끼를 입어야 했던 기막힌 현실 / 어둡고 답답한 노동자의 현실 앞에 / 자기 몸을 불태워 어둠을 밝혀야 했던...(중략)... 이제 살아오십시오/ 가족들의 품으로 동지들의 곁으로 돌아오십시오" (영결식 추모시 중)

"살아오시라"는 유족과 동지들의 절규에도 숨져간 두 노동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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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수첩] 두 노동자의 죽음이 남긴 것

12일 오전 9시 대구 세원그룹 본사(성서공단) 앞에서는 100여일이 넘는 장기간의 노사 분규로 장례가 무기한 연기됐던 세원테크 노조원 고 이현중씨와 고 이해남 지회장의 전국노동자장 합동 영결식이 치러졌다.

회사 정문 앞 바리케이드 철거를 시도하는 중 부상을 입고 투병생활을 하다 고 이현중씨가 숨진 것이 지난 8월 26일. 싸늘한 시신으로 병원 영안실에서 안치된지 108일만에 치러지는 영결식이었다. 또한 이현중씨의 죽음에 분노하며 민주노조 사수를 외치면서 분신했던 이해남씨가 사망한지 28일째 만이었다.

합동영결식에는 두 노동자의 유족과 장례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를 비롯해 40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인 가운데 치러졌다.

두 노동자의 약력 소개에 이어 세원테크 노조원 신동진씨가 이해남 지회장이 분신을 결행할 당시 남긴 유서를 읽어 내려갔다. 유서에는 '민주노조 사수'를 당부하는 말들이 새겨져 있었다. 영결식에 참석한 유족과 노동자들의 흐느낌이 곳곳에서 흘러 나왔다.


a 흐느끼는 유족들 사진 맨 오른쪽은 고 이해남 지회장의 이은숙씨

흐느끼는 유족들 사진 맨 오른쪽은 고 이해남 지회장의 이은숙씨 ⓒ 오마이뉴스 이승욱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추모사에서 "슬픔을 넘어 투쟁을 통해 노동자가 더이상 희생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도록 남아있는 우리들이 결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정우달 의장은 "배달호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된 2003년이 노동자들의 장례식으로 끝나고 있다"며 "두 노동자들의 죽음으로 1400만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투쟁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의장은 "죽음으로 항거했던 동지들의 뜻을 이어 민주노조를 지켜낼 것"이라며 "노동해방된 참세상에서 우리의 투쟁을 편안히 지켜봐달라"고 고인들의 영면을 바랐다.


합동영결식은 세원테크 노조원의 가족인 정하영씨가 '이제 살아오십시오'라는 제목의 조사를 낭송하고, 가수 박준씨가 고인들의 마음을 대신해 부모님들에게 남기는 '애절한' 가사가 담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이어졌다.

a 씻기굿 도중 흰국화가 흩뿌려진 흰 광목천을 찟으면서 숨진 노동자들의 길을 터 주고 있다.

씻기굿 도중 흰국화가 흩뿌려진 흰 광목천을 찟으면서 숨진 노동자들의 길을 터 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어머니 울지 마세요 / 어머니 울지 마세요 / 어머니 보고 싶어요 / 어머니 보고 싶어요 / 어머니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 / 건강하세요"

이에 답하듯 고 이해남 지회장과 이현중씨의 두 아버지들이 단상에 올라 다른 노동자들에게 답례의 말을 했다. 현중씨의 아버지 이수상씨의 말이 이어지자 주위는 숙연해졌다.

"여러분은 더 이상 죽지 마십시오. 살아서 살아서 반드시 꼭 악랄한 자본가들을 이겨야 합니다. 젊디 젊은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세상에서, 노동자를 파리 목숨으로 여기는 이런 세상에서 꼭 살아서 이겨야 합니다."

합동영결식은 노동문화예술단 '일터' 단원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씻기굿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100여일 동안 잠들지 못했던 두 노동자들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는 충남 천안의 공원묘지에 하관식을 가지기 위해 대구를 떠났다.

a "열사의 뜻 이어 민주노조 사수하자"

"열사의 뜻 이어 민주노조 사수하자" ⓒ 오마이뉴스 이승욱

a '귀향'고 이현중씨가 숨진 지 100여일만에 두 노동자의 시신은 운구차에 실려 대구땅을 떠나고 있었다.

'귀향'고 이현중씨가 숨진 지 100여일만에 두 노동자의 시신은 운구차에 실려 대구땅을 떠나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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