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터 건들지마! 우린 헤드뱅잉으로 맞선다"

록밴드들 '덕수궁터 지킴이' 의기투합 공연

등록 2003.12.14 01:35수정 2003.12.1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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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광화문 동화빌딩 앞에서 펼쳐진 '덕수궁터 미대사관 신축반대' 공연에서 밴드 '피아'가 연주를 하고 있다.
13일 광화문 동화빌딩 앞에서 펼쳐진 '덕수궁터 미대사관 신축반대' 공연에서 밴드 '피아'가 연주를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덕수궁터, 건들지마! 우린 헤드 뱅잉으로 맞선다'

옛 덕수궁터(전 경기여고 부지) 내에 미국 대사관 설립이 추진돼 논란이 계속 되는 가운데 사라져가는 문화 유산을 지키기 위해 록밴드들이 의기투합했다.


이미 서태지씨가 미 대사관 신축반대운동을 선언한 가운데 서태지 컴퍼니 소속 피아를 포함 블랙홀, 불독맨션, 노브레인, 해머 등 5개 실력파 밴드들은 13일 오후 3시부터 3시간 동안 광화문 동화빌딩 앞 공원에서 '덕수궁 터 미대사관/아파트 신축반대' 거리공연을 펼쳤다.

문화연대 주관, '3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덕수궁 터 미대사관·아파트 신축반대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 주최로 열린 이날 공연에는 300여 명의 시민들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밴드들과 함께 신명나는 난장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있는 자리에서 몸을 흔드는 것을 너머 몸을 부딪히는 슬램(Slam)과 마치 파도타기 하듯 무대에서 관중석으로 몸을 날리는 서핑(Surfing)까지 하면서 흥을 냈고 뮤지션들은 이에 맞게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주로 화답했다. 이날 참가 밴드들은 모두 개런티 없이 기꺼이 공연에 임했다고 한다.

이날 공연에 참가한 밴드 '해머'의 공연 모습
이날 공연에 참가한 밴드 '해머'의 공연 모습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백악관 자리에 한국 대사관, 니들은 좋겠냐?"

이날 공연은 해머, 피아, 불독맨션, 노브레인, 블랙홀 순으로 진행됐고 밴드의 공연 중간마다 시민모임 위원들이 발언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무대에 선 밴드들은 이날 공연 취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밴드들은 노래 중간 중간 자신들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했고 관객들은 경고를 뜻하는 노란색 카드를 흔들며 이에 호응했다. 다음은 각 밴드들의 이날 공연 전후 발언 모음이다.

하드 코어 밴드 '해머'


"미국은 힘이 있고 우린 약해, 지들 맘대로 하려고 한다. 미국 요구를 거절하면 당장 피해를 입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믿음을 잃게 되면 어찌되는지 정부는 알아야 한다. 인터넷으로 소식을 접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중국은 고구려를 자기 지방 도시라고 하고 일본은 한일합방을 우리가 원해서 했다고 하고 미국은 우리의 유적에 자기들 대사관을 짓는다고 한다. 당연히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을 건들고 있다. 왜 정부는 거절하지 못하나."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


"'백악관 자리에 한국 대사관 짓는다면 어떤지' 묻고 싶다. 사실 공연 오면서 어두운 주제라 관객들도 딱딱할 줄 알았는데 즐기는 것 보고 좋았다. 만약 다른 약소국 문화유적지에 우리가 대사관 짓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 뻔한 거 아닌가. 답답하다. 처음 소식 들었을 때 '설마' 했다. 사실 미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시를 비롯한 미국 정부와 괜히 클럽 와서 어깨 힘주고 여자 꼬시려 하는 재수 없는 미국 애들은 싫다."

헤비메틀 밴드 '블랙홀'

"서울은 역사적인 도시다. 하지만 일본, 중국 등 이웃 국가들의 수도에 비해 훼손이 많이 된 상태다. 그런데다 생각해 보라. 세종로 덕수궁 터에 미 대사관을 건립한다는 것은 납득이 안된다. 조상님 묘에 화장실을 지을 수 있겠나? 파병 문제도 그렇고 약소국의 설움이다. 이태리에서 부패와의 전쟁을 시민들의 지지 속에 진행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도 국민들을 믿고 할 말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미국인도 "덕수궁터 미대사관 건립 반대"

이날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위에서나 아래에서 모두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표현은 "말도 안 돼!"였다. 상식적으로 '소중한 문화 유적지에 미 대사관을 짓는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행인들이 행사 취지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가기도 했고 공연장 바로 옆 '동화면세점'을 찾은 동남아 관광객들도 공연장 앞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공연을 준비했던 이동연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은 "이번 거리 공연은 우리 문화 유산을 지키기 위해 대중예술계 동참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정부의 굴욕적 외교를 더 이상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우리는 상식에 근거해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앞으로 시민모임은 필요하면 이런 공연을 포함, 1인 시위, 서명 운동 등을 계속 펼쳐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지난 10일까지 '덕수궁 미대사관 건립 반대' 서명에는 모두 3만1700여 명 이상이 동참한 상태다.

이모와 조카 2명과 함께 왔다는 한승희(20·남)씨는 "미국과 우리 나라의 관계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문화에 대해 미국은 존중해야 한다"며 "우리 개인의 힘은 작지만 여럿이 모이면 작년 촛불 시위처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서 무대 위로 오른 뒤 관객 속으로 뛰어드는 서핑을 완벽하게 구사했던 이승열(22)씨는 "대사관을 지으려 하면 여러 공간이 있는데 왜 하필 그 장소인가. 힘 있는 것 과시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밝힌 뒤 "사실 이런 일이 항상 잘 알려지지 않고 나중에 알려지는 게 아쉽다. 여러 매체에서 지속적으로 이런 정보에 대해 알려야 시민들이 알고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대로 된 언론 보도를 강조했다.

'덕수궁터 미 대사관 건립 반대'는 한국인만의 주장은 아니었다. 공연 장면을 카메라폰으로 연신 담던 미국인 마이클 스미스(34)씨는 "만약 미국에서 역사적인 곳에 외국 대사관을 짓는다고 해도 당연히 반대할 것"이라며 "한국인들의 반대 운동을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대사관 신축 허가하면 약소국 인정하는 것"
[인터뷰]공연 참여한 밴드 '피아'

이날 공연에서 가장 인기를 모았던 밴드는 피아였다. 서태지 발탁 제 1호 밴드로 유명한 이들은 최근 내한한 린킨 파크(Linkin Park)와 림프 비즈킷(Limp Bizkit)의 오프닝을 연속으로 장식해 록 팬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 줬다. 공연 뒤 이들을 만나 미니 인터뷰를 나눴다.

- 이번 '덕수궁 미대사관 신축' 공연 소식은 언제 접했나?
"3주 정도 된 것 같다. 사실 그 전에는 잘 몰랐다. 공연 계획이 잡힌 뒤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검색해 보니 이해할 수 없었다. 대사관 직원 아파트와 해병대 숙소는 또 뭔가? 완전히 힘있는 미국이 '이렇게 할테니 니네 알아서 해라'는 식 아닌가."

- 특별히 '덕수궁'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나?
"일제때 덕수궁은 문화 유린 장소 아니었나. 일본이 압력을 가했던 곳인데 미 대사관 사옥이 생긴다면 우린 항상 강대국에 이끌려가는 약소국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전 같이 전쟁으로 상대국을 누르기도 하지만 문화적으로 전세계를 잠식시키는 것 같다. 덕수궁터에 미 대사관을 짓는 다는 것은 일종의 음모일 수도 있다."

- 혹자들은 미국에서 온 록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식의 운동에 동참하는 것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서양에 뿌리를 둔 음악을 하고 있지만 나는 '한국인'으로서 동참하는 것이다."

- 항상 연습하겠지만 이번 공연 준비를 위해 특별히 한 것이 있다면.
"물론 매일 연습하지만 이런 공연이 잡히면 이 공연만을 위해 연습을 더 많이 한다. 물론 기사 등을 통해 공연의 의미에도 공감하려고 했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런 일은 일회성으로 끝나면 안된다. 아직까지 이 사안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언론에서도 쉬쉬하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총리 보고를 듣고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한 것 같다. 가슴 아프지만 미 대사관이 덕수궁 터에 건립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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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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