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탈이 생기모 그때는 우짤랍니꺼?"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22>안전사고

등록 2003.12.15 13:03수정 2003.12.1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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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병원 수술실

병원 수술실 ⓒ 이종찬

"지금 바빠?"
"왜?"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대. 많이 바쁘지 않으면 병원에 좀 가 봐."
"아니, 장인어르신께서 갑자기 왜 입원을 했는데?"
"일을 하다가 다쳤대."
"뭐어? 많이 다쳤대?"
"나도 자세한 거는 잘 몰라."


2주일 전 쯤이었을까. 칠순 가까운 어느 할머니의 원고 교열을 한창 마무리하고 있는 도중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어제 저녁 때까지만 하더라도 손자의 재롱을 받으며 흡족한 미소를 띄우던 장인어르신께서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 다치고 말았단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전화를 건 아내의 목소리가 그리 다급하게 들리지 않았던 탓이었다. 또한 장인어르신께서는 IMF가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그만 건축회사를 차려 운영할 정도로 그 분야에서는 오랜 경험과 기술이 축척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올해 칠순에 접어든 장인어르신의 연세가 문제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장모님께서도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어디 가서 일을 하더라도 대충 눈치를 보아가며 쉬엄쉬엄 하라고. 하지만 평생 건축일로 뼈대가 굵은 장인어르신께서는 일을 보고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지금 어디야?"
"응. 마악 나가고 있는 중이야."
"빨리 가 봐! 아버지께서 머리를…."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가서 확인해 보고 곧바로 전화를 해줄게."

그로부터 1~2분이 지났을까. 다시 전화를 건 아내의 목소리는 몹시 다급했다. 그 사이에 병원에 전화를 건 아내는 간호사로부터 환자가 머리와 허리를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랐던 모양이었다. 아내의 목소리는 장인어르신께서 머리를 다쳤다는 말을 하는 도중에 눈물빛으로 변했다.


"저어기 조금 전에 입원한 환자 중에 노병연씨라고?"
"이 서방! 여기야."
"아니 어쩌다가…. 괜찮습니까?"
"으응~ 괜찮다."

응급실 저만치 장인어르신께서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나즈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인어르신께서 나를 알아볼 정도라면 머리에는 큰 이상이 없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동안 피를 많이 흘렸던지 삼베빛 붕대 여기저기에 검붉은 피가 제법 묻어 있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카더마는. 2층에서 발이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졌다 아인교. 그나마 이만한 기 천만다행입니더."
"검사결과는 나왔나요?"
"머리하고 어깨, 허리, 다리까지 다 찍었다 아인교. 아마 쪼매 있으모 결과가 나올낍니더."

장인어르신 곁에는 장인어르신과 오래 같이 일을 해왔던 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 곁에는 장인어르신을 업고 응급실로 달려온 아주머니가 한 분 있었다. 그 아주머니의 등에는 온통 피범벅이었다. 나는 일단 그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한 뒤, 그 분을 모시고 잠시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산재처리는 되나요?"
"아, 예. 그런 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더. 그라고 입원해 있는 동안의 일당도 회사에서 다 계산해 줄 낍니더."
"담당과장은 뭐라고 하던가요?"
"다행히 머리는 몇 바늘 꿰매기만 하모 별 다른 이상은 없을 것 같다고 합디더. 그러나 허리에는 약간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합디더."

이윽고 장모님과 아내, 처제가 잇따라 응급실로 달려왔다. 모두들 장인어르신의 머리에 감긴 피 묻은 붕대를 보고 저어기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이라며 스스로 위안하시는 장모님의 말투에는 근심걱정이 가득했다. 특히 허리에 이상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하자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래. 이상하게 어제 꿈자리에 시어머니가 보이더라꼬. 그래서 아침에 올(오늘) 조심해라카는 말로 할라카다가 말았더마는..."
"그라모 말로 하지?"
"너거 아부지가 하도 그런 말로 싫어한다 아이가."

이윽고 담당과장이 환자가족을 불렀다. 담당과장은 X-레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다른 곳은 아무런 이상이 없으나 2번 갈비뼈 일부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며칠 지켜본 뒤 수술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수술을 하고 나면 앞으로는 무거운 것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말까지 덧붙혔다.

"수술을 하면 얼마나 걸리나요?"
"아직까지 제가 수술을 한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수술을 하게 된다면요?"
"수술시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회복시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둘다요."
"수술을 하게 되면 전신마취를 해야 되니까 8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리고 3~4일 정도 지나면 보행기에 의지해서 조금씩 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퇴원시기는 저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 수술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수술을 하고 난 뒤부터 회복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중요했다. 또한 회복을 하더라도 그때부터는 다른 일을 아예 할 수가 없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다들 칠순에 접어든 장인어르신께서 이제는 쉴 때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얼마 전, 장인어르신께서는 갈비뼈 조각을 붙히는 수술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 회복을 기다리며 열심히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쯤 퇴원을 하게 될 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주변사람들 말로는 장인어르신께서 평생을 병원 신세를 져야 될 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쩔 거야? 이제 평생 힘든 일은 못하실 텐데. 일정한 회복이 되고 나면 그 회사랑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는 것이 좋지 않겠어?"
"합의로 보고 난 뒤에 또 탈이 생기모 그때는 우짤랍니꺼? 저 병은 완치도 안되고 재발까지 자주 된다카이 연금을 타도록 하는 기 좋지 않겠습니꺼?"
"문제는 건설회사란 게 하도 부침이 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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