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주전부리 '까마중'

내게로 다가온 꽃들(10)

등록 2003.12.20 05:56수정 2003.12.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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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중
까마중이선희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게 늘 낯설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먼저 따스한 눈으로, 따스한 미소로 다가가면 쉽게 이웃이 될 수 있고,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산야에 사시사철 피어있는 작은 꽃들, 그냥 예쁘다고만 하고 일상의 바쁜 시간들이 쫓겨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지나치니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한번 다가가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친구가 되니 이제는 꽃들이 먼저 아는 체를 합니다.


복수초, 별꽃, 자주달개비, 까마중, 꽃다지, 며느리밑씻개, 금창초, 민들레, 제비꽃, 오랑캐꽃, 현호색, 솔체, 물매화, 꽃잔디, 엉겅퀴, 동백, 모란, 백리향, 천리향, 만리향, 사위질빵, 으아리, 짚신나물, 쑥부쟁이, 양지꽃…. 세상의 아름다움, 어쩌면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하나 이름 불러주면서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요?

어린 시절에는 자연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군것질거리로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입을 만족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몸에 모시면서 저절로 자연의 마음과 분위기를 닮아갔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풋풋한 보릿대, 달콤한 오디, 쓴맛 뒤에 단맛과 허기를 달래주던 칡뿌리, 개암열매, 밤, 아카시아꽃, 깜부기, 싱아, 산딸기, 뱀딸기, 이른 새벽 이슬을 잔뜩 머금고 있던 목화, 돼지감자, 삘기, 이른 봄 논두렁에서 캐먹던 국숫발같이 하얗던 메꽃뿌리, 까마중…. 이 모든 것들이 요즘 아이들이 즐겨 먹는 피자나 콜라보다 더 맛있었던 것만 같은 것은 향수 때문일까요?

김민수
까마중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답니다.
가마중, 까마종이, 깜뚜라지, 용규, 용안초, 고규, 까마종, 강태라고도 합니다. 밭이나 길가에서 흔히 자라던 것입니다. 까맣게 익은 열매가 승려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까마중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까마중은 옛날부터 민간에서 종기나 악성 부스럼을 치료하는 약재로 흔히 써 왔다고 합니다. 옛 문헌에서는 까마중이 열이 내리고 오줌이 잘 나오게 하며 원기를 북돋아 준다고 하고, 잠을 적게 자게 하고 종기로 인한 독과 타박상, 어혈 등을 다스리며 갖가지 광석의 독을 푸는 작용이 있다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까마중은 식도암, 위암, 장암을 비롯한 소화기 계통의 암과 폐암에 쓰며 복수를 줄이는데 좋다고 합니다.


그저 흔하다고 무심코 지나치던 것에 이렇게 좋은 효능들이 있다고 하니 귀가 번쩍 뜨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종들이 멸종되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김민수
황대권 님의 <야생초 편지>에도 까마중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도 까마중을 그렸다. 시골에서는 '먹달'이라고도 한다. 너도 잘 알지? 어렸을 때 곧잘 시커먼 열매를 따먹었지. 우리 화단에도 해마다 잊지 않고 까마중이 자란다. 하도 잘 자라 나는 대로 뽑아 버려도 어느새 여기저기에서 돋아난다. 이놈은 그 와중에 운 좋게 끝까지 남아 이렇게 탐스런 열매를 맺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모조리 따서 입 속에 넣었는데 달짝미적지근한 게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영 아니더군. 아마 내 입맛이 변해 버린 모양이다. 까마중 잎은 독성이 있어서 먹지는 않으나 어린 잎 정도는 다른 야생초와 섞어 먹어도 무방하다.

까마중은 가지과 풀로서 열매 빼고는 가지와 아주 흡사하다. 특히 꽃 모양은 가지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다. 까마중 역시 전통적으로 한방약재로 흔히 쓰였던 것으로 아직도 시골에서는 한방 처방약으로 자주 이용되는 모양이다.' <야생초 편지 p.129>


김민수
아주 오래 전부터 민가 근처에서 흔하게 자라던 까마중, 그래서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보았을 까마중이 노래나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황석영 님의 <아우에게>라는 글에도 까마중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영등포의 먼지 나는 공장 뒷길들을 떠올리면서 가장 먼저 까마중 열매를 떠올리게 된다고 합니다.

'너 영등포의 먼지 나는 공장 뒷길들이 생각나니. 생각날 거야, 너두 그 학교를 다녔으니까. 아침마다 군복이나 물빠진 푸른 작업복 상의를 걸친 아저씨들이 한쪽 손에 반찬 국물의 얼룩이 밴 도시락 보자기를 들고 공장 담 아래를 줄이어 밀려가곤 했지. 우리 아버지두 그 틈에 있었을 거야. 참 그땔 생각하면 제일 먼저 까마중 열매가 떠오른다. 폭격에 부서져 철길 옆에 넘어진 기차 회통의 은밀한 구석에 잡초가 물풀처럼 총총히 얽혀서 자라구 있었잖아. 그 틈에서 우리는 곧잘 까마중을 찾아내곤 했었다. 먼지를 닥지닥지 쓰고 열린 까마중 열매가 제법 달콤한 맛으로 유혹해서는 한 시간씩이나 지각하게 만들었다.'

참으로 뭉클한 까마중 열매에 대한 기억입니다.

김민수
서울에 살 때 부모님들이 옥상에 텃밭을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 옥상텃밭에서 농사를 짓는데 어디에서 딸려왔는지 어느 해인가 까마중이 화분에서 싹을 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나 많은 열매들을 맺는지 가장 신난 건 우리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옥상으로 달려가 까맣게 익은 까마중을 따먹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많질 않으니 아이들의 입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조금의 부족함, 그것이 오히려 더 맛나게 까마중 열매를 먹을 수 있게 한 비결일지도 모릅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서 돌담에 탐스럽게 열려있는 까마중 열매를 정성껏 땄습니다. 그러나 벌써 입맛이 변한 것인지 막내만 맛있다고 먹고, 큰 아이들은 "아빠, 피자먹으러 가면 안돼?"합니다.

아이들이 남긴 까마중 열매를 톡톡 입안에서 터뜨리며 맛을 음미해 봅니다. 무슨 특별한 맛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만큼 미각이 인스턴트에 오염되었다는 뜻이겠지요?

김민수
구경애 님의 <까마중>이라는 구수하고도 정감이 넘치는 시를 소개해 드리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마감할까 합니다.

검은색 네모 단발
쪼그리고 모여 앉아
공기놀이하던 담장 옆
몽글몽글 씨앗 품은
덜쩍지근한 까만 알맹이
흙손으로 까마중 한 움큼 따다가
톡톡, 터뜨리면
검둥이 손
검은 입술
숯검댕이 혀,
마주 보며
깔깔깔
허기진 뱃속에선
꼴꼴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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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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