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로 따뜻한 정을 나눕니다"

부산역 거리의 음악가의 사랑 나누기

등록 2003.12.20 16:06수정 2003.12.2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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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부산역 광장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이호준씨

부산역 광장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이호준씨 ⓒ 정연우

부산역 광장에서 1년째 노래로 사랑과 봉사를 전하는 사람이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의 이름은 이호준(36)씨. 클래식 기타를 들고 부산역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귀에 익숙한 연주곡들과 80년대 노래를 들려주는 솜씨가 보통 예사롭지가 않은 듯했다.

그런 그가 12월에 접어들더니 이제는 노래와 함께 부산역 광장에서 수제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수제비는 파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부산역 광장에 있는 노숙자들에게 추운 겨울날 따뜻함을 전해주기 위해서 그동안 간간히 모금한 돈과 자신의 돈을 보태 시작한 일종의 무료배식이었다.

a 부산역 광장에서 수제비를 만들고 있는 이호준씨

부산역 광장에서 수제비를 만들고 있는 이호준씨 ⓒ 정연우

금요일 오후 3시 부산역 광장.
그가 리어카를 가져왔다. 리어카 안에는 LPG가스통과 버너, 밀가루 반죽이 들어 있었다. 이호준씨는 혼자서 이리저리 이것들을 설치하고는 커다란 국통에 콩나물로 국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수제비 반죽을 시작했다. 그가 혼자서 만들고 있으니 한쪽에서 찬송노래를 부르는 아주머니가 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잠시 후 이호준씨가 계란을 가져와 수제비에 풀어넣었다. 노숙자들은 따로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지 못한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다.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부산역 광장에서 노숙자들이 수제비 냄새를 쫓아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수제비를 배식할 즈음에는 노숙자 수가 30명을 넘어섰다. 노숙자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수제비를 받아 갔다. 그리고는 옹기종기 모여서 맛있게 수제비를 먹기 시작했다.

거리의 음악가 이호준씨는 1년째 부산역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노숙자들과 형 아우할 정도로 많이 친해졌다고 한다. 가끔씩 술을 마시고 노숙자들끼리 싸움을 벌일 때면 항상 중재자 역할을 맡아서 싸움을 말렸고 노숙자가 아프면 서슴없이 병원비를 주기도 했다. 그는 어느새 노숙자들의 정신적인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노숙자 뿐만 아니었다. 부산역 광장에서 그가 노래를 부를 때면 항상 노래를 듣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노래가 끝나면 박수를 칠 때도 있었고 말없이 인사를 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려울 때가 많았다고 한다. 부산역 미관을 해친다며 구청에서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도 했으며, 종종 그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놓아두었던 물건들이 부서지거나 사라지기도 했다.

a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이호준씨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이호준씨 ⓒ 정연우

하지만 그는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그가 부산역 광장에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부산역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삶의 여유를 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제비 배식은 노숙자들의 삶에 따뜻한 정을 전해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부산역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수제비 배식을 하고 있다. 앞으로 따뜻한 봄이 오기 전까지 계속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호준씨는 "부산을 떠나더라고 그 자리를 누군가가 계속해서 이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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