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를 달지 않는 국회의원들

[取중眞담] 원내 제1당인 '사랑의 열매당'을 아십니까

등록 2003.12.22 01:11수정 2003.12.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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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공통점은?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김원기 열린우리당 상임의장, 조순형 민주당 대표(왼쪽부터)는 모두 '금배지' 대신 '사랑의 열매'를 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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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한나라당 3선 이상 중진의원들의 모임이 국회에서 열렸다. 이 모임에 참석한 의원들도 대부분 '금배지'보다는 '사랑의 열매'를 선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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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 이처럼 모두 '금배지'를 단 의원들을 한 장면에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 가운데 반 이상도 '사랑의 열매'를 함께 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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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열린 열린우리당 의원총회. '금배지'보다 '노(No)배지'가 다소 앞선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무게는 약 1.56돈(5.85g), 지름 1.6cm 원 안에 무궁화 모양, 그 안에 한자로 '국(國)'자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바탕색은 자주색, 원 안의 무궁화 꽃모양은 금색, 글자는 흰색. 금도금을 했지만 재질은 순은. 나사형은 1만5400원이고, 옷핀형은 2만원. 처음에 한 개는 공짜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돈을 내고 사야 한다.

소위 '금배지'라 불리는 국회의원 배지에 대한 설명이다. 금배지는 오래 전부터 국회의원 그 자체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특히 처음 국회의원이 된 경우 금배지와 국회 본회의장에 놓인 명패를 보며 '아, 내가 국회의원이 됐구나'를 실감한다고 한다. 그만큼 금배지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최근 국회의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가 금지옥엽과 같은 금배지를 달지 않고 다니는 국회의원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랑의 열매'가 어느덧 금배지를 추월했음을 알 수 있다. 국회 과반을 점하는 제1당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사랑의 열매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최병렬·조순형·김원기 등 여야 3당 대표들은 물론 당3역 등 내로라 하는 중진 의원들 대개도 '사랑의 열매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매는 3개의 빨간 열매와 녹색 줄기로 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다. 단체의 설명에 따르면, 3개의 열매는 각각 나·이웃·가족을 뜻하고, 빨간색은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그리고 하나로 모아진 열매 줄기는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약속이라고 한다.

사랑의 열매는 시중 은행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은행 창구 앞에 놓여진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에 1000원이라도 기부하면 구할 수 있을 만큼 흔하다.

물론 금배지도 그 자체 값으로만 따진다면 2만원도 채 안된다. 그러나 그것을 얻기 위해 쏟은 돈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이 든다는 게 오늘날 정치 현실이다. 그렇게 비싸게 구한 금배지를 놔두고, 국회의원들은 왜 흔하디 흔한 사랑의 열매를 달고 다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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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끝이 어딘지 모를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 의원은 "요즘 본회의장이나 의원총회에 가면 금배지를 단 사람보다 안 단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절감한다"며 "정치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금배지를 달고 다니며 '내가 국회의원'이라고 자랑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금배지가 보물이 아니라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는 것.

비슷한 맥락에서, 이 의원은 선수(選數)도 의원들 사이에서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다선 의원들이 초선 의원들을 풋내기 취급하거나 또 재선 이상은 돼야 국회의원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는 것.

그러나 '물갈이론'이니 '구태정치 청산'이니 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오히려 다선 의원들이 선수를 굳이 밝히지 않으려는 추세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 버전으로 하자면 "내가 다선 의원임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금배지들이 자랑스럽게 금배지를 달고 유권자들 앞에 서는 날은 과연 언제쯤 올 것인가. 또 선수와 국민 신뢰가 정비례 하는 날은 과연 언제쯤 올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유권자들은 사랑의 열매당의 국회 독점이 장기화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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