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사건, 유야무야 되어서는 안돼”

노근리 특별법안 처리, 올해 넘기나

등록 2003.12.22 18:15수정 2003.12.2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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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화) 동학농민혁명과 일제하 친일·반민족 행위와 강제동원 피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사건에 관한 4개 특별법(한국전쟁 특별법)이 국회 과거사진상규명특위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과거사 청산에 새 막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전까지만 해도 개별 사건들에 대해 진상 조사의 진척도에 차이가 있고, 워낙 오래된 사안들이라 증거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날 특별법이 특위를 통과함으로써 자칫 잊혀질 뻔했던 과거사 문제를 풀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됐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특별법 특위 통과를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구도 노근리 인권평화연대 사무총장은 “이번 4대 특별법 통과는 미진했던 과거사 진상규명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일”이라며, “그러나 자칫 이번 한국전쟁 특별법에서 이미 진상규명이 이루어진 사안들까지 함께 다루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a 노근리 학살이 벌어진 쌍굴다리 앞을 경운기 한 대가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다.

노근리 학살이 벌어진 쌍굴다리 앞을 경운기 한 대가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다. ⓒ 정귀분

정 사무총장이 우려하는 것은 이미 국회 국방위원회(위원장 장영달)에 상정되어 있는 ‘노근리사건 희생자에 대한 조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노근리 특별법안)’의 운명이다.

"지난 6월 12일 한나라당 심규철 의원의 발의로 상정된 노근리 특별법안은, 지난 1950년 7월 25일부터 4일간 충북 영동에서 있었던 ‘노근리사건’ 희생자에 대한 사실 확인 조사를 통해 희생자 및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한국전쟁 특별법 특위 통과와 관련, 정 사무총장은 “정부 일각에서 이미 진상조사가 이루어진 노근리 사건을 한국전쟁 특별법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노근리 사건을 다시 처음부터 조사하려는 것은 그동안 사건 해결을 미루기만 해왔던 정부의 시간 끌기 작전”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심규철 의원도 “노근리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미 지난 2000년 말부터 2001년 초까지 한국과 미국 정부가 각각 진상조사를 한 바 있다”며 “만약 노근리 특별법안이 이번 회기 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사실상 노근리사건 처리는 물 건너 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규철 의원은 나아가 “그동안 정부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다”며 “가장 앞장서야 할 정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착잡한 심정을 느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했다.


민주당 이용삼 의원 역시 “노근리 사건은 이미 진상조사가 끝났다는 점에서 진상조사를 주요 골자로 하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에 관한 특별법’과는 차이가 있다”며 “노근리 특별법안은 독자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국방위원회 김대훈 수석전문위원이 지난 11월 낸 보고서에서 “한국전쟁 특별법 제정 움직임이 있는 바, 노근리 사건이 이 법안에 포함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정부측 답변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등, 노근리 특별법안이 한국전쟁 특별법에 포함될 가능성은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근리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미국을 상대로 협상을 벌일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국무조정실 신정수 외교안보심의관은 “늦은 감은 있지만 현재 외교통상부와 행정자치부, 교육부 등 관련 부처로부터 의견수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기가 며칠 남지 않은데다 총선까지 앞두고 있는 지금, 노근리 특별법안 논의를 위한 국방위원회 법안소위가 언제 열릴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아 귀추가 주목된다.

노근리사건 해결, 어디까지 왔나?

노근리 사건은 지난 1950년 7월 25일부터 4일간 충북 영동군 노근리 및 하가리 일대에서 미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희생 사건이다.

미 제1기병사단과 제5, 7기병연대 등은 29일 새벽까지 노근리 인근 경부선 철길과 쌍굴다리 주변에 영동읍 주민 500여명을 모아 놓고 무스탕 전투기와 기관총 등으로 학살했다.

그러나 이후 남북분단 상황 등으로 까맣게 잊혀져 오다가 99년 들어 당시 생존자 증언과 비밀 해제된 미 국방부 문서 등을 토대로 취재한 AP통신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2001년 1월 12일까지 한미 양국이 독자적으로 진상조사를 했으며, 미 클린턴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이 조사가 끝난 뒤 미국은 추모비를 세우고 장학사업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추모비의 문구와 장학사업의 범위를 두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사업 시행이 보류되어 왔다.

이후 한나라당 심규철 의원 등이 지난 6월 12일 ‘노근리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 발의한 바 있다.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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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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