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동지팥죽 맛보실래요?

단호박과 구운 찰떡, 팥알갱이가 들어있군요

등록 2003.12.22 22:54수정 2003.12.2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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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본 홋가이도 (北海道) 출신인 이웃 오꾸다상의 팥죽(?), 팥국(?)

일본 홋가이도 (北海道) 출신인 이웃 오꾸다상의 팥죽(?), 팥국(?) ⓒ 장영미

이웃에 친하게 지내는 이 중에 오꾸다상이 있습니다. 아이를 같은 유치원에 보내고 있어서 가깝게 지내게 된 이웃 3명 중 한사람인데 저보다는 네 살 정도 위인 것 같습니다. 때론 친구같이, 때론 언니같이 그러면서도 깍듯이 예의를 차리며 어울리는 사이인데, 서로 음식도 나누어 먹고, 가끔 집에 놀러도 다니곤 합니다.


지금까지 1년 반 정도 옆에서 지켜 본 바로, 오꾸다상은 참으로 알뜰한 사람입니다. 세 아이를 키우는데 아이들의 옷이나 신발 등도 다른 사람에게서 물려받아 쓰는 게 대부분이고 그걸 아주 당연하게 여깁니다. 아이들도 그렇고요. 오죽하면 제 딸아이도 그 친구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물건을 물려받고 싶다고 졸랐을까요. 게다가 오꾸다상은 또래의 다른 아줌마들과 달리 일본의 전통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참으로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그녀는 직접 일본 된장도 담가 먹고, 절인 야채인 쓰께모노도 직접 담가 먹습니다. 저는 오꾸다상이 담근 쓰께모노를 먹어 보기도 하고, 또 갓을 이용해 그것을 담그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오이소박이나 그 외의 한국 음식 만드는 걸 가르쳐 줬지요.

12월 초인가요? 아이들을 유치원 버스에 태워보낸 후 오꾸다상이 동지에 팥과 단호박을 넣은 아주 단 음식을 만들건데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동지’하면 ‘팥죽’을 먹잖습니까? 일본에서도 비슷한 음식을 먹는가 싶어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팥을 불려 삶아서 찰떡도 넣고, 단호박도 넣어 먹는 것이라는데 설명만으로는 언뜻 한국의 팥죽과 비슷해 보이더군요. 상황을 봐서 저도 한국의 팥죽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하곤 헤어졌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팥죽 먹기 대회’ 뭐, 그런 이름으로 모임을 가져도 재미있겠다 싶었거든요. 정말 의욕으로 가득 찬 며칠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가 감기몸살을 앓는 바람에 한국 팥죽은 쑤지 못했습니다. 주말 내내 끙끙 앓아 누웠거든요. 아픈 몸을 이끌고 동짓날에 일본 팥죽을 먹으러 가야할까 말아야할까 고민까지 했습니다만, 아이는 이미 모임에 가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는데다 저도 몸살기가 좀 가신 것 같아 결행을 했습니다.


한국의 팥죽은 쑤지 못했지만 대신에 오꾸다상네 식구들이 좋아하는 해물파전을 두 장 부쳐서 가지고 갔습니다. 오꾸다상이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오늘은 특별히 제가 부쳤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양념장을 못 만들었는데 오꾸다상이 그럴듯하게 양념장을 만들어 내더군요. 제게 배운 것이지요.

요꼬모리상이 도착하고 곧이어 유치원에서 아이들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따끈한 일본식 팥죽이 나왔습니다.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의 팥죽처럼 걸죽한 것이 아니라 팥국물에 팥알갱이와 단호박 그리고 일본의 찰떡 구이가 얹혀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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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절인 무우, 절인 배추와 함께 먹었는데 맛있었습니다. 역시 음식은 '정성'입니다.

절인 무우, 절인 배추와 함께 먹었는데 맛있었습니다. 역시 음식은 '정성'입니다. ⓒ 장영미

맛은 어땠냐구요? 그야 물론 맛있었지요. 오꾸다상의 정성이 담긴 음식이었는 걸요. 게다가 그 단호박은 홋가이도에 계신 오꾸다상의 친정 아버님께서 직접 동지에 쓰려고 기르신 ‘동지호박’이라고 하더군요. 그 분은 퇴직 후 심심풀이 삼아 감자며 단호박 등의 채소를 기르시는 모양입니다. 그 분의 단호박은 유달리 달고 맛이 있어서 주변에서 얻어가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오꾸다상은 그 팥국(?)을 위해 토요일엔 하루종일 팥을 불리고, 일요일엔 은근한 불에 오랫동안 삶았답니다. 그리고 오늘 찰떡을 굽고, 단호박을 쪄서 달콤한 팥국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며칠 간에 걸쳐 완성된 귀한 음식이니 맛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원래는 몹시 달게 먹는 음식인 모양인데 오꾸다상은 단맛을 많이 줄였다고 합니다. 저는 그 편이 훨씬 좋았습니다.

거기에 오꾸다상의 친정 어머니께서 무우로 담그신 쓰께모노와 오꾸다상 자신이 담근 배추 절임도 함께 나왔는데 독특한 맛이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 음식이든 신선한 재료에 정성이 가득 담긴 것이라면 맛이 없을리 없겠지요.

오꾸다상을 알기 전까지 전 일본의 쓰께모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기에, 관심도 없었고 별로 먹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오늘은 무우 절임도, 배추 절임도 잔뜩 먹었습니다. 배추 절임 위에 가다랭이 가루도 뿌렸는데 말입니다. 전엔 비릿한 그 맛이 싫었는데, 이젠 그런 맛의 조화를 알겠습니다. 그녀 덕분에 일본 음식의 독특한 향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오꾸다상의 팥국이 일반적인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일반적으로 동지에는 ‘토지카보챠(동지 단호박)’라고 하여 단호박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중풍이나 감기 예방을 위해서 먹었다는군요. 속설에는 이걸 먹으면 1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도 있다고 합니다.

오꾸다상의 팥국은 홋가이도 지방의 풍습이라는군요. 그 외에 이시가와현(石川県)에서도 단호박과 팥을 함께 넣어 먹는다고 합니다. 역시 일본도 지방에 따라, 가정에 따라 맛과 방법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양입니다.

또 다른 동지 풍습으로는 목욕하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답게 유자(柚子) 열매의 껍질을 욕조에 넣어 ‘유자향 목욕’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유자가 추운 겨울에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속설을 따른 것이라 합니다. 한국에서는 유자로 음료를 만들어 마시는데 일본에서는 목욕을 하다니, 나라마다 풍습도 가지가지인 것 같습니다.

오꾸다상 덕분으로 올해 동지에는 일본식 팥죽(?), 팥국(?)으로 나쁜 액을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제 나이 만큼의 새알은 먹지 못했지만 대신 커다란 찰떡을 한 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이 한 살을 더 먹게 되겠지요?

동지가 지나면 낮의 길이가 조금씩 더 길어진다는군요. 날씨는 더욱 추워지겠지만 해가 점점 길어진다는 사실에 희망을 갖고 버텨야겠습니다. 해가 길어지면 점점 따뜻해질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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