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가 남쪽으로 간 까닭은?

[사진이 있는 동화] 알아주지 않아도 나누는 마음이 진짜 선물

등록 2003.12.24 04:28수정 2003.12.2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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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북쪽 끝 마을에 사는 산타에게는 일년 중 가장 바쁘고 신나는 날입니다. 일년 동안 준비한 선물들을 착한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날이니까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산타는 이 일이 옛날만큼 즐겁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산타의 집과 정원을 장식하고 있는 꼬마전구들의 불빛도 옛날만큼 밝고 화려하지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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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사실 하룻밤 동안에 이 세상의 착한 아이들을 일일이 다 찾아다니며 선물을 주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생각해 보세요, 착한 아이들이 어디 한두 명뿐이겠어요? 수백 수천 아니 수만 수억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산타 혼자서 모두 찾아다니기란 불가능한 일이지요.


처음에는 일일이 찾아다녔지만 세상의 아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자 산타도 마침내 손을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몇 해 전에 산타는 어린아이를 가진 모든 아빠들에게 편지를 썼지요. 자기가 찾아가지 못하는 해에는 자기 대신 산타 노릇을 해달라고.

그런데 이게 문제였어요.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말고 비밀스럽게 해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도 많은 아빠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요령이 없어 들켜버린 아빠들도 있었고 또 어떤 아빠들은 아예 처음부터 아이와 함께 백화점에서 가서 선물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제 아이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산타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지요. 많은 아이들이 아예 산타는 없다고까지 믿게 되었습니다. 산타를 믿는 아이들도 아빠가 사주곤 하던 값비싼 선물에 익숙해져서 이제 산타가 놓고 간 선물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산타의 집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만든 장난감이나 초콜릿 등이었거든요.

그러니 크리스마스를 맞는 산타의 마음이 옛날만큼 즐겁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도 아직도 자신을 믿고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서 산타는 출발할 준비를 서두릅니다. 어두워지자 산타는 호호호 웃으며 사슴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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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그런데 그 웃음소리가 매우 신나게 들리네요. 올해는 무슨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지요? 맞아요, 사실 올해는 산타가 예년보다 조금 기운이 납니다. 저 남쪽 끝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산타가 오기만을 늘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남쪽 끝 마을은 지금 한여름이라 두터운 겨울옷을 입은 산타에게는 너무 덥습니다. 그래서 매년 맨 뒤의 순서로 미뤄 놓았다가 결국은 시간이 없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지요. 그런데 올해는 소식을 듣고 그 남쪽 끝 마을부터 먼저 가보기로 했습니다.

남쪽 끝 마을에 가까워졌는데도 생각보다 그렇게 덥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산타의 마음을 기쁘게 한 것은 자신이 잘 찾을 수 있도록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하고 꼬마전구들을 밝혀놓은 것입니다.


밤에 다니다보니 지도를 보기도 힘들고 결국은 땅에서 올라오는 불빛에 의지하게 되는데, 남쪽 끝 마을에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아주 많은 집들이 불을 밝혀놓아서 너무나 찾기가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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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몇 년 전에 북쪽의 마을들을 돌아다닐 때에는 땅에서 올라오는 불빛만 보고 내려갔다가 망신을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불빛이 너무나 화려해서 내려가 보았더니, 글쎄 대형 쇼핑센터에 장식해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니겠어요!

그 늦은 시간에도 뭘 그리 살 것이 많은 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산타를 보고도 아는 척을 안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벌써 한 달 전부터 쇼핑센터의 매장에서 가짜 산타들을 지겹도록 보았으니까요.

씁쓸했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걱정하고 있는데, 이 남쪽 끝 마을에서는 다릅니다. 아직 자지 않고 있던 아이들과 어른들은 산타를 보자마자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정말 듣던 대로 산타가 오기만을 많이 기다린 모양입니다.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의 마음이 너무나 즐겁습니다. 산타는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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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남쪽 끝 마을에서는 산타가 가는 곳마다 대환영입니다. 어느 골목은 첫 집부터 끝에 있는 집까지 모두 꼬마전구들로 불빛을 밝혀 놓아서 한밤중인데도 골목길이 대낮처럼 환합니다. 너무나 신이 난 산타는 빼놓지 않고 그 골목길의 집집마다 모두 다녀옵니다.

그 골목길의 마지막 집에서 선물을 놓아두고 나오려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창문을 통해 내다보니 사람들이 밖에서 캐럴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아, 새벽송 다니는 사람들이구나!’

산타는 아직도 이렇게 새벽송을 부르면서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자 남쪽 끝 마을이 점점 더 좋아집니다. 기쁨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이 사람들에게도 산타는 선물을 하나씩 안겨주고 다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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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벌써 새벽송이 들리니 이제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군요. 산타는 서두릅니다. 지친 사슴들이 조금 쉬었다 가자고 하는데도 산타는 썰매를 급하게 몰아댑니다. 그러다가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너무 서두르다가 기운이 다한 사슴들이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썰매가 중심을 잃어 그만 길가의 가로등에 부딪히고 만 것입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산타는 생애 처음으로 가로등과 접촉사고를 내고는 몹시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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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자기를 알아주는 마을에 드디어 오게 되었다는 즐거움과 흥분 때문에 지친 사슴들도 아랑곳없이 서두르기만 해서 이런 사고가 났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어요. 산타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슴들을 정원에서 한참 동안 쉬게 놔두었습니다. 그렇게 쉬고 나자 이제 기운이 솟아났는지 사슴들 몸에 장식한 꼬마전구들 불빛이 더 밝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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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다시 기운차게 하늘을 날다가 산타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자 아이 둘을 발견합니다. 한 아이는 산타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너희들 이렇게 늦은 밤중에 뭘 하고 있니?”

“아, 산타할아버지군요. 우리는 지금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어요.”

“모금활동이라니? 돈을 모아서 뭐하려고?”

“사실은 얼마 전 학교에서, 아주 어린 나이인데도 돈을 벌기 위하여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해야만 하는 저 북쪽 마을의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오늘 밤 캐럴을 불러 주고 모은 돈을 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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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그 얘기를 듣자 산타는 문득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자기가 오늘밤에 가야만 했던 곳은 이곳이 아니라 바로 이 아이들이 말하고 있는 그 북쪽 마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 많이 모았니?”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런데 오늘이 크리스마스니 오늘 이 돈을 전해주면 좋을 텐데…”

아이들은 조금 난감한 표정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산타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마침 잘 됐구나! 내가 지금 그 북쪽 마을로 가려는 참인데. 내가 너희들 대신 전해줄까?”

산타의 말에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모은 돈을 산타에게 모두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준 돈을 받아든 산타의 마음은 정말 모처럼 만에 환합니다.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다고 시큰둥했던 지난날들의 실망과 화려한 불빛으로 자신을 반겨준 남쪽 끝 마을에서 느낀 오늘밤의 흥분이 모두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돈을 맡긴 저 아이들처럼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정말 가장 소중한 크리스마스 선물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그 큰 사랑으로 세상에 선물로 내놓으신 예수님이 늘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아기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니,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산타가 아니라 아기예수님이 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선물 받는 재미에 산타를 주인공으로 세워 놓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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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산타는 그동안 자기가 크리스마스의 본뜻을 잊어버린 채 너무 나섰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늘 자신이 주인공인양 여겼던 우쭐한 마음을 버리고 나니 산타는 자신의 몸까지도 가벼워진 듯한 느낌입니다. 그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썰매에 올라 탄 산타는 아이들이 말한 그 북쪽 마을로 향합니다.

지금 산타가 향하는 북쪽 마을에는 이 남쪽 끝 마을처럼 자신을 반기는 화려한 불빛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산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 밤 안으로 꼭 찾아가야 할 곳은 바로 그 곳이라는 것을 이제 산타는 압니다. 하늘을 나는 산타의 썰매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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