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상여 타고 그대 잘가라"

누군가 오면 누군가는 떠나가고…

등록 2003.12.25 00:47수정 2003.12.2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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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경북 구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구미를 거쳐 해평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도착하기 위해서다. 처외조모의 부고를 듣고 그 곳으로 가는 길이다. 신혼 초 인사차 들른 후 6년만의 방문이다.

신행차 들른 초여름 시원한 맥주 한잔을 권하시던 마디 굵은 손길이 불현듯 떠오른다. 처의 외가는 여느 세상과 마찬가지로 멀게 느껴진다. 집을 대표해 혼자 나선 길이 왠지 어색하고 처연하다.


구미에서 기차를 내려 해평행 버스를 탔다. 버스는 시골 인심을 대변하듯 아낙네들이 세워달라고 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섰다. 시내버스가 많이 없는 지역이라 버스는 이리저리 둘러가서야 목적지에 다다랐다.

상가 문앞 조화의 행렬.
상가 문앞 조화의 행렬.유성호
상가 입구에는 조화가 숙연히 도열해 있다. 문상객이 그리 많이 않은 시간이라 곡소리는 나지 않았다. 입구에서 눈썰미로 장인과 장모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게 싫어 마당에 차려진 빈소에 들어가 문상을 했다.

상주들은 일제히 곡을 시작했다. 목례 후 향을 피우고 제례(祭禮)를 다했다. 상주와 상배를 하고 그들을 올려봤지만 잘 모르는 기색이라 고인의 외손녀 사위라고 밝혔다. 그때서야 알아차리는 눈치다.

마당에 열기를 전하기 위해 연탄 수십장과 장작을 한꺼번에 때고 있다.
마당에 열기를 전하기 위해 연탄 수십장과 장작을 한꺼번에 때고 있다.유성호
고인의 유해는 집안에 모셔져 있었다. 문상객의 편의를 위해 빈소와 식당은 마당에 차려졌다. 한켠에서는 연탄 수십장을 한꺼번에 태워 마당에 온기를 보태고 있었다.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경이다. 그리고 또 한 켠에 고이 모셔져 있는 꽃상여.

오색의 종이꽃으로 치장된 꽃상여.
오색의 종이꽃으로 치장된 꽃상여.유성호
고인의 몸집만큼 작은 꽃상여지만 세상 어느 꽃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색의 종이꽃으로 치장한 꽃상여를 오랜만에 본 터라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순간 엄습하는 죽음이라는 심연의 공포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아낙들은 길흉사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일에 치인다.
아낙들은 길흉사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일에 치인다.유성호
상이 났을 경우 여느 길흉사 때와 마찬가지로 일거리는 아낙네들들 목이다. 남정네들은 이리저리 문상객을 맞으면서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며 술 한잔 마시는 게 일이라면 큰 일이다. 저녁이 되면서 문상객의 발길이 많아졌다. 덩달아 아낙들의 손길도 바빠졌다.

밤이 되자 문상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밤이 되자 문상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유성호
문상객들은 고인의 운명에 대해 한결같이 조의를 표하고 상주들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슬픈 날이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한적한 시골 상갓집 풍경이다.


꽃 처럼 인간의 생도 언젠가 스러지리라.
꽃 처럼 인간의 생도 언젠가 스러지리라.유성호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문밖을 지키던 조화도 언젠가는 스러지겠지. 우리네 인생이 모두 그런게 아닌가.'

어느 문상 때 보다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외조모의 명복을 빈다.

"꽃상여 타고 고이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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