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와 신부의 진지한 신학적 대화

존 쉘비 스퐁 / 잭 대니얼 스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와 날개>

등록 2003.12.29 23:36수정 2003.12.3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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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는 어쩌면 가톨릭과 개신교보다 더 불편하다. 똑 같은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긴 세월 동안 서로 앙숙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한때 박해를 받아 수많은 순교자를 낸 그리스도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공인을 받게되자, 과거를 잊은 듯 이제는 박해자의 위치가 되어 유대교도들을 몹시 괴롭혔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유대인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과 거주지역마저 제한하였고 유대인들의 재산을 부당하게 몰수하는가 하면 강제추방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중세교회는 라테랑 공의회(1215)를 열어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죽인 수치의 상징으로 색깔있는 천을 가슴에 달고 다니라는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실상 예수는 로마인들의 손에 십자가 처형을 당했건만 유대인들은 그 잘못을 온통 뒤집어쓰고 긴 세월 동안 구박을 받아온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히틀러가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사건도 따지고 보면 일찍부터 반유대주의를 배태한 그리스도교에 상당부분 그 책임이 있다.

이런 어두운 지난 과거를 생각할 때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간의 열린 대화를 기대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일로만 보인다. 그런데 랍비 스피로와 성공회 신부인 스퐁이 두터운 편견의 장벽을 깨고 만나 공개적인 토론과 대화를 나누고 있어 흥미롭다. 그들은 여러 차례 거듭된 진지한 신학 대화를 통해 서로 종교에 대한 존경심을 보이면서 일치점과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둘 다 인기 있는 대중 저술가이자 같은 지역에서 일하는 성직자이지만 이전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다가 유대교 전통이 그리스도교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밝힌 스퐁 신부의 책 한 권이 이들을 만나 토론하고 대화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들의 수차에 걸친 대화는 날이 갈수록 열기를 더해 각자 맡고 있는 회당과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TV, 라디오, 신문에 이르기까지 비중 있게 다뤄질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대화 내용을 발간하라는 일반인들의 성화에 힘입어 그들의 대화 내용을 다듬어 이렇게 책으로까지 출간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의 공개 대화는 서로 다치지 않으려고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들을 회피하거나 어물쩍 넘기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 서로 묻는 예리한 질문들과 성실한 답변을 보면 그런 의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서로 잘못된 이해를 통박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점에서 두 종교가 연결되고 차이가 있는지를 드러내는 훌륭한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

각자 종교적 전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학자로서 직접 사목활동을 하고 있기에 사변에 빠지지 않으면서 더욱 실감나는 신학 토론을 벌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맨 처음, 스퐁 신부는 시작 강연을 통하여 유대인 출신 예수 그리스도나, 사랑과 생명의 원천인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해, 예배가 인간사회의 정의문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들며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에서 물려받은 훌륭한 유산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유대교 본질과 그리스도의 기본 성격에 관해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 간의 이해를 돕기 위한 스피로와 스퐁의 질의 응답이 번갈아 진행된다. 그 다음은 구원, 죄, 계시, 회개, 동정녀 탄생, 부활, 선교와 같이 각 종교의 교리를 솔직하고 격렬하게 질의하고 응답한다.

랍비 스피로는 마지막 강연을 하면서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에 준 선물로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의 신앙이 지닌 의미를 환기시켜준 것과 세계 각처에 성서를 전하여 크게 유대화한 것을 꼽는다.

또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을 다신론의 사회 속에 널리 전파한 것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서로 많은 선물을 주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앞으로 양 종교간 대화의 전망을 밝게 한다.

랍비와 신부의 긴 대화는 해마다 겨울철이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벌어지는 유대교의 하누카와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가 갖고 있는 의미를 헤아려보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거기서 그들은 내용도, 계시도, 전통도 다르던 두 종교가 만나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진리의 빛"을 찾는 열정, 공통의 희망, 공통의 인간성 안에서 가능했노라고 말한다.

30여 년 전 랍비와 신부의 대화를 담은 책이지만 유대교나 유대인들을 접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그만큼 유대교 관련 문헌조차 아직 희박한 이 나라에서 이 책이 지닌 가치는 크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하며, 두 종교가 앞으로 어떻게 서로 존중하고 생산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서 잘 드러나고 있듯이 이제 종교 간 대화와 화해, 상생, 연대는 거스릴 수 없는 시대 요청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책에서 아쉬운 점은 원제목이 <대화 Dialogue> 인데 번역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위주로 바꿔 놓아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다. 또 저자들의 잘 다듬어진 대화만이 아니라 청중들의 질의와 그에 대한 응답까지 곁들여졌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와 날개

존 쉘비 스퐁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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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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