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의 궁전일까, 신의 조각품일까

[서귀포 70경 18]한라산 용암 중문대포해안주상절리대

등록 2003.12.30 02:30수정 2003.12.3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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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송이 우거진 해안가 산책로 끝에 궁전이 있으리란 상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해송을 사이에 두고 언뜻 언뜻 보이는 겨울바다는 고요하다 못해 죽은 듯이 조용했다. 태초에 천지 창조가 이렇게 고요했을까?

a 주상절리 기암괴석

주상절리 기암괴석 ⓒ 김강임

해안의 궁전일까? 신이 다듬어 놓은 조각품일까? 서귀포시 중문동에 있는 중문대포해안주상절리대. 이곳에 가면 자연의 신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서귀포 70경의 한 곳으로, 사람들은 흔히 대포동이라 부른다.


a 해송끝에 궁전이

해송끝에 궁전이 ⓒ 김강임

조용한 대포동 해안가에는 파도마저 일지 않았다. 그런데 돌기둥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대포동의 옛이름은 '지삿개', 혹은 '모시기정'이라 부른다. 지삿개의 돌기둥은 화산이 폭발할 때 바다로 흘러 내린 용암이 바닷물에 급속히 냉각 응고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한라산에서 분출한 용암의 흔적이다.

마치 신이 다듬은 듯, 정교하게 겹겹이 쌓은 검붉은 육모꼴의 돌기둥은 신이 다듬어 놓은 조각품 같다. 해안선을 타고 만들어진 조각품은 병풍을 쳐 놓은 것처럼 절묘하다. 마치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조각품 같기도 하고 어느 목수가 정성들여 조각한 해안의 궁전같기도 하다.

a 신이 다듬어 놓은 조각품

신이 다듬어 놓은 조각품 ⓒ 김강임

중문대포해안주상절리대는 주로 현무암질 용암류에 나타나는 기둥모양의 수직절리로서 4∼6각형이며, 두꺼운 용암(약 섭씨 1100도)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작용으로 생성된 것이라 한다. 또한 이 주상절리대는 높이가 최고 40m에 이르며, 폭이 1km에 달해 색달해안갯깍주상절리대와 더불어 규모면에서 국내 최대를 규모를 자랑한다.

검은 돌기둥을 정교하게 깎아놓은 용암의 흔적은 태고의 신비처럼 장관을 이루었다. 층을 이룬 돌기등은 마치 세월의 연륜을 말해 주는듯, 파도와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고 서 있었다.

a 해안의 궁전

해안의 궁전 ⓒ 김강임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육각형의 돌 기둥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비바람과 싸우고 있다. 오늘따라 바다는 쪽빛으로 물들었다. 잔잔한 물결 위에 떠있는 돌기둥은 현무암에서 냉각된 자연현상이라고 말하기에는 믿어지지 않는다.

마치 사람의 형상 같기도 하고 망부석 같기도 한 육각모의 돌기둥을 바라보고 있으니 전설의 바다에 온 느낌이다. 힘찬 파도와 싸워 왔을 돌기둥의 모습은 그 크기와 형상이 제각기 다르다. 지표로 분출한 마그마가 녹은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a 어느조각가의 작품인가?

어느조각가의 작품인가? ⓒ 김강임

깎아 세운 해안 절벽에는 모양이 다른 절리층을 이루고 있어 마치 환상적인 자연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대형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무아지경에 빠져 남녁의 정취에 흠뻑 젖어 있다. 먼저 온 이가 " 야! 이것이다"라고 외친다. 신비 그 자체에 감탄하고 있는 이는 이글거리며 용솟음 치는 한라산의 화산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a 자연이 준 선물

자연이 준 선물 ⓒ 김강임

태풍 뒤에 고요가 찾아 오듯, 뜨거운 용광로에서 달궈진 불기둥을 바라보듯 겨울바다는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이 넓은 바다에 누가 망치로 못을 박아 놓았을까? 바다 위에 떠 있는 돌기둥의 흔적이 목수가 박아 놓은 못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바닷물에 흠뻑 적신 돌기둥은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들의 고향은 어디일까? 바다로 떠 밀려 온 용암의 흔적을 보니 눈 덮힌 한라산의 분화구를 생각케 한다.

a 그리움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들

그리움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들 ⓒ 김강임

주상절리 주변에는 하얀 포말이 거품처럼 일고 있었다. 지난 4월 목련꽃이 필 때였다. 봄 바람에 일렁이는 지삿개의 해안가는 잔잔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 그 파도의 일렁임은 20여년을 넘게 그리움만 간직해 왔던 옛 님에 대한 추억이었다.

계절은 바뀌었건만 그리움에 부서졌던 하얀 포말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돌기둥 주위를 맴돌고 있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파도도 일지 않는데, 왜 이렇게 하얗게 일렁이는 포말은 지삿개의 해안가를 괴롭히는 것일까?

한라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흘러 지삿개의 돌기둥을 이루었듯이, 가는 해가 아쉬어 부서지는 술렁임은 광활한 바다를 채우려는 그리움 만큼이나 공허롭다.

a 아스라히 떠 있는 전망대

아스라히 떠 있는 전망대 ⓒ 김강임

주상절리는 경관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 지방 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됐으며, 천혜의 관광자원이다. 이를 말해 주는 듯 아스라히 떠 있는 주상절리대 전망대에는 하얀 그리움의 흔적을 찾아 달려온 사람들의 발길로 용암처럼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a 낮 달이 떠 있는 지삿개 해안가

낮 달이 떠 있는 지삿개 해안가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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