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집에서 자는 아저씨, 어떻게 할까요

김밥이야기11

등록 2003.12.30 08:59수정 2003.12.3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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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가게에 새로운 달력이 걸렸습니다. 2004라는 숫자가 낯설고, 너무나 빠른 시간의 흐름이 약간은 두렵습니다. 밤에 일을 하기 때문에 날짜로는 이틀동안 일을 한 것이 됩니다. 29일에 출근하여 30일에 퇴근하니까요. 시간으로 따지고 보면 다를 바가 없지만, 낮 시간 동안 잠을 자기 때문에 시간가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빠르게 느껴집니다.

일을 하면서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른다고 느껴질 때는 역시나 바쁠 때 입니다. 정신없이 이것저것 나르고, 계산하고, 정리하고 다시 김밥을 싸고 시계 볼 틈도 없이 일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장사가 잘 안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손님들이 연달아 들어오고 나갈 때는 몸 동작도 말도 빨라집니다. 거기에 배달까지 겹치기라도 하면 쟁반을 들고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잠시 여유를 찾게 되어 시계를 보면 보통 때의 30분정도라고 느껴지는 시간은 이미 2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시간이 안 갈 때는 손님이 없을 때입니다. 이것 저것을 닦고, 준비할 것을 준비해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몇 번이나 재방송되는 프로그램 역시 지겹지요. 몇개 되지 않은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시계는 느리게 가고 있습니다. 퇴근 하기 30분 전도 역시 느리게 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출근하기 전의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가는데, 퇴근 전 시계는 느림보입니다.

변하지 않는 시간은 청소시간입니다. 손님이 많아 바쁜 날도, 손님이 없어 한가한 날도 가게 청소하는 시간은 변함없습니다. 약 1시간 정도가 걸리는 청소시간은 해야 할 것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운다 한들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 게으름을 피워 원래 시작하는 시간에서 30~ 1시간 뒤에 한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데 미루기를 하는 저를 보면 조삼모사라는 사자성어가 딱 떠오릅니다.

오늘도 주방이모와 신문을 보다가 약 30분 정도 청소를 늦게 시작했습니다. 손님도 별로 없는 날이었기 때문에 마음먹고 이것저것 씻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하는 솥도 꺼내서 그을음을 닦고, 밥에 양념을 하는 커다란 주황색 고무 양동이도 세제를 풀어 씻었습니다. 쌀을 담가 놓는 통도 모조리 씻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걸레를 빨았습니다. 이런 일은 마당에서 하기 때문에 제가 뒷 마당에 있을 때는 주방 이모는 홀도 보게 됩니다. 다 빤 대걸레를 들고 주방 문을 열고 나가니, 주방이모가 손님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김밥을 한 줄 드신 그 손님은 식사를 마치고는 그 자리에 바로 엎드려 버린 것이었습니다. 손님에게 김밥을 내어 드리고 청소를 하고 있었던 이모는 고무장갑을 낀 채 손님 곁으로 가서 계속 일어나라는 말을 한 것 같았습니다. 제가 문을 열었을 때는 그 손님이 술에 취해 '여기서 조금만 자고 가겠다'는 말을 할 때였습니다. 그렇게 잠시 얼굴을 들고 말을 하고는 다시 자신의 두 팔에 얼굴을 묻어버립니다.

주방이모와 저는 황당함이 밀려왔고, 계속해서 손님을 깨웠습니다. 아무래도 밤 시간에 여자 두 명이 술 취한 남자 손님을 상대하는 것은 무섭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그 사람은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지릅니다. 조금만 자고 간다는데 왜 계속 그러냐면서 도리어 소리를 지르니 주방이모와 저는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단잠을 깨어 화가 난 그는 물을 한잔 마시더니 장사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면서 따지기 사작합니다. 손님이 와서 잠시 잠을 자는 것이 그렇게 장사에 방해가 되냐면서, 서비스가 엉망이라는 평가까지 합니다. 그러고는 저희에게 인생 제대로 살라는 충고까지 잊지 않았습니다. 상서롭지 못한 말과 함께 말입니다.

인생 제대로 살라는 말까지 들으니 가슴에서 울컥 하는 것이 올라왔지만, 큰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괜시리 들고 온 대걸레는 크게 내리쳐 바닥을 닦았습니다.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그 사람은 문을 확 열고 나가버립니다. 돈도 안내고 말입니다. 이런 경우를 겪으면 화가 나지만 크게 마음 상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하나 하나 다 신경쓰고 마음쓰게 되면 제가 너무 고갈될 것 같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김밥집에서 일을 하면서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삶의 다양한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 부분들이 저를 가슴 아프게도 하고, 때론 훈훈함으로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론 오늘처럼 씁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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