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명천, 쿠사츠(草津)온천을 찾아서

한겨울에 몸이 후끈해지는 온천여행

등록 2003.12.30 10:45수정 2003.12.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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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을 때 온천하면 나이드신 분들이 관광여행으로 어디를 갔다가 저녁 때 연회를 하기위해서 숙박하는 여관에 딸린 목욕탕 정도의 이미지밖에 없었다. 그래서 독일에 있을 때도 일부러 온천을 찾아간 적이 없었다.

a 쿠사츠(草津)온천의 넓은 노천탕 풍경

쿠사츠(草津)온천의 넓은 노천탕 풍경 ⓒ 유용수

온천의 멋을 알기 시작한 것은 일본에 있으면서도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일본에서 운전면허증을 땄다. 그후 주말이면 좁다란 방구석을 떠나 닛코나 하코네 같은 유명한 관광지로 차를 몰면서 돌아오는 길에 온천에 들르기 시작했다.


화산의 분출로 생성된 일본 열도는 곳곳에 온천이 발달했다. 수많은 온천 중 일본에서 최고의 명천으로 알려진 곳이 바로 군마현 표고 1200m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쿠사츠 온천이다. 온천 분출량, 탕 치유의 효과, 뛰어난 자연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투명하고 짙푸른 온천물로 중세시대부터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이다.

a 쿠사츠온천의 원류, 유바타케의 신비한 풍경

쿠사츠온천의 원류, 유바타케의 신비한 풍경 ⓒ 유용수

도쿄에서 간에츠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려 시부카와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국도로 접어들었다. 내려서니 이미 저녁해가 기울고 있었다. 국도는 폭이 좁은 2차선 도로로 눈까지 살짝 덮혔지만 대형 화물차들이 씽씽 속도를 냈다.

꼬불꼬불한 고개를 두 곳 넘었다. 도쿄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눈이 지붕마다 수십cm 쌓여 있고 도로 주변에도 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집에서 나와 4시간이 걸린 저녁 7시가 되어 겨우 예약해 둔 타카마츠 호텔에 도착했다.

a 쿠사츠온천의 원류, 유바타케의 야간 풍경

쿠사츠온천의 원류, 유바타케의 야간 풍경 ⓒ 유용수

여장을 풀고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는 냄비전골이었다. 푸짐한 요리와 일본식 정종이 따뜻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호텔 종업원들의 친절한 얼굴과 미소에 안도감이 들었다. 가격이 꽤 저렴했기 때문에 혹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했다. 호텔은 약간 오래되어 보였지만 내장공사를 다시 했는지 내부는 말끔해 보였다.

호텔에 딸린 온천에 들어 갔다. 그야말로 명천이다 싶었다. 약간 유황냄새가 났는데 물 색깔이 푸른 솔잎을 삶은 물처럼 푸르고 투명했다. 이렇게 맑은 물은 처음 봤다. 산위라서 그런가 보다. 아직 도시의 때가 묻지 않았다.


저녁식사 후 온천 마을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유바타케(온천물밭이라는 의미)라고 하는 쿠사츠 온천의 원류를 보러 갔다. 마을 한 가운데 폭포처럼 콸콸 솟아넘쳐 흐르고 있는 원류를 보며 일종의 신비를 느꼈다.

a 쿠사츠(草津)온천의 마을 정경

쿠사츠(草津)온천의 마을 정경 ⓒ 유용수

온천 원류 주위의 암벽에 푸른 녹이 짙게 낀 것이 특이했다. 이 지역에서는 온천물을 수도로 각 가정에 공급하고 있었다. 또 마을 여기저기에 마을 사람들을 위한 무료 온천탕이 설치되어 있어 아무라도 들어가 온천을 즐길 수 있었다.


쿠사츠 온천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1193년 일본 최초로 통일을 이룩하고 카마쿠라 막부(명목적으로 천황을 최고로 두고 실질적으로는 장군이 다스리는 무신정권시대)를 세운 미나모토 요리모토 장군이라고 한다.

이 온천은 빼어난 자연환경과 치유효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쿠사츠 온천을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으로 국제사회에 알린 사람은 1879년 서양 의술을 일본에 도입하기 위해 메이지 정부가 고용한 독일인 의사 벨츠였다. 그는 쿠사츠에서 온천치유효과를 연구하면서 한편으로는 토지를 매입하여 이상적인 온천마을을 건설하려고 시도했다.

a 쿠사츠온천의 원류, 유바타케의 낮풍경

쿠사츠온천의 원류, 유바타케의 낮풍경 ⓒ 유용수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바람에도 온천욕을 마친 많은 관광객들이 얇은 유카타(온천에서 입는 얇은 옷)를 걸치고 온천 원류의 사진을 찍기 바빴다.

이튿날 눈덮인 온천마을을 돌아보았다. 특히 사이노가와라 온천의 노천 온천은 압권이었다. 높은 산꼭대기 위에 곧게 솟은 소나무 숲에 둘러쌓여 겨울 눈이 쌓인 능선을 배경으로 하고 호수처럼 넓은 온천이 펼쳐져 있다. 물이 너무 뜨거워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의 바위에 앉았다가 다시 물에 들어갔다.

a 온천물에 계란을 삶는 풍경. "온센다마고"라고 해서 온천의 명물이다.

온천물에 계란을 삶는 풍경. "온센다마고"라고 해서 온천의 명물이다. ⓒ 유용수

어디선가 '여행은 온천'이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 여행의 백미는 온천이라는 의미다. 분주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노천온천에 몸을 담고 자연의 일부인 자신을 가다듬고 새로운 삶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하는 맛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겨울 영하의 추위 속에 살에 와 닿는 겨울바람도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일어나면 한여름의 솔바람으로 바뀐다. 눈덮힌 산꼭대기에서 남태평양의 따스함을 만끽하는 체험을 한다. 문득 삶의 누추한 거적을 던져버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섰을 때 넉넉히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온천은 고통의 바다같은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신이 선사해준 오아시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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