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사랑을 싣고

(사)한국편지가족 박은주 회장

등록 2003.12.30 11:11수정 2003.12.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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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한국편지가족 박은주 회장

(사)한국편지가족 박은주 회장 ⓒ 권윤영

편지를 써 본 기억과 받은 기억을 떠올려보자. 언젠가부터 우편함에는 우표가 붙여진 편지는 온데간데 없고 각종 고지서들만 빼곡하다. 우체통까지 가서 편지를 부쳐야 하는 수고로움을 컴퓨터 앞에 앉아 까딱까딱 움직이는 손가락만으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편지보다는 이메일에 익숙해진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사람이 있다. "편지는 손으로 써야지 제 맛"이라고 주장하는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박은주(54) 회장이 바로 그녀다. 대전 서원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이기도 한 박 회장은 지난 88년부터 한국편지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그녀와 편지와의 인연은 15년 전인 지난 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년 열리는 정보통신부 주최의 주부편지쓰기 대회에서 입상을 한 것이다. 이 대회 이후 그녀는 한국편지가족의 일원이 됐다.

각 지방 체신청마다 지회가 있는 한국편지가족은 그야말로 편지를 좋아하는 대회 입상자들이 모여 편지를 통하여 정을 나누는 단체다. 그녀는 지난 89년부터 99년까지 편지가족충청지회장을 지냈고 지난해까지는 충청지회장 겸 전국부회장을, 올해부터는 다시 회장을 맡을 정도로 한국편지가족과 오랜 인연을 자랑한다.

a 지난 9일 가을맞이 국민편지쓰기대회 시상식에서. 폭넓은 참여를 유도하고자 국민으로 대상자를 넓혔다.

지난 9일 가을맞이 국민편지쓰기대회 시상식에서. 폭넓은 참여를 유도하고자 국민으로 대상자를 넓혔다. ⓒ 권윤영

"원래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우연히 우체국에 갔다가 체신부 편지쓰기 팸플릿을 보고 그것이 계기가 돼서 대회에 참여했죠."

과거에는 각 학교에서 군에 있는 군인들에게 위문 편지를 썼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사라진지 오래다. 이에 한국편지가족에서는 중학생 편지쓰기 강좌와 중학생 편지쓰기 경진대회를 매년 열고 있다. 우수 편지를 모아 '편지로 정을 나누며'라는 책자를 발간하고 1년에 네 번 내는 소식지로 점차 사라져가는 편지쓰기 문화를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


편지쓰기 강좌캠프에서 '고마운 사람에게 드리는 편지'쓰기 시간을 가지면 학생들은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선생님, 부모님, 친구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되돌아보게 되는 여유까지 덤으로 얻어간다. 한번 강좌를 열고 나면 좋은 것을 배웠다는 학생들의 감사 편지가 줄을 잇는다. "좋은 것을 배웠어요. 평생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라는 학생들의 편지가 보수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녀와 한국편지가족에겐 최고의 보람이다.

"요즘 학생들은 편지를 잘 안 쓰고 점점 감성이 메말라가고 있죠. 편지 쓰는 형식도 잘 모르는 학생들이 태반이에요. 편지쓰기는 학생들 인성교육 차원에서도 좋은 소재입니다. 강좌를 통해 어른에 대한 예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a 중학생 편지쓰기 대회에 참여해 편지를 쓰느라 여념이 없는 학생들.

중학생 편지쓰기 대회에 참여해 편지를 쓰느라 여념이 없는 학생들. ⓒ 권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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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윤영

편지 쓰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대회에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 역시 줄어들고 있지만 편지 내용이나 수준은 높아져 가고 있다. 그녀는 지난달에 있었던 편지쓰기 대회 대상 작품을 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흘렸다. 진실하게 담아내는 편지로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박 회장은 여러 가지 매체 중 편지가 가장 소중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한국편지가족의 회장이라는 직함은 그녀의 실생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아들이 군대갔을 때 장미를 넣어 편지를 쓰면 그녀의 아들은 절로 힘이 난단다. 부부 싸움을 했을 시에도 화해의 수단은 호주머니 속에 넣어두는 편지가 으뜸이다. 초등학생들한테 받는 편지에 가장 감동을 느끼는 그녀는 교직 생활 틈틈이 아이들에게 쪽지 편지를 많이 쓰기도 한다.

a 박은주 회장은 대전 서원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중이기도 하다.

박은주 회장은 대전 서원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중이기도 하다. ⓒ 권윤영

"처음 발령 났던 곳이 시골학교였어요. 시골학교 교직생활이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날 누군가가 고구마를 신문지에 싸서 교탁 속에 넣어났더라고요. 누가 갔다 놨냐고 물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는 그 마음, 순수함에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 뭐냐고 물으면 고구마라고 답하죠."

그 시절, 아이들 속에서 청춘을 불사르겠다고 마음먹은 박 회장. 인생에 있어서 최고 목표는 공부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고 이것이 최고의 교육이라는 교육관은 지금껏 그녀가 한국편지가족에 몸담으며 활동해온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군인들이나 감옥에 있는 사람,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편지를 쓰는 문화가 이뤄졌으면 해요.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성이 나빠지는데 편지쓰기 운동이 확산시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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