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령원(昭寧園)에 가 보자!

등록 2003.12.31 15:00수정 2015.05.0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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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장흥은 국민관광지로 유명하다. 계곡을 따라 즐비한 식당과 숙박업소들은 이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인지를 잘 알려준다. 그곳에서도 기산 저수지와 마장 저수지 주변은 풍광이 특히 뛰어나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무수리' 출신으로 왕의 어머니가 된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묘 소령원도 있다. 이왕에 나온 발길을 잠시만 짬을 내어 둘러보면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

 

소령원은 숙종의 후궁이며 조선 제21대 왕이었던 영조의 친어머니인 숙빈 최씨의 묘이다.

 

숙빈 최씨는 원래 나인들의 부림을 받던 계집종으로 궁중에서 신분이 가장 낮았던 '무수리' 출신이다. 그러던 것이 장희빈의 음모로 모시던 인현왕후 민씨가 폐출당하자 자신에게 관대했던 인현왕후의 덕에 보답코자 홀로 민씨의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행하였다. 이러한 행동이 우연히 숙종의 눈에 띄었고 이를 기특히 여긴 숙종이 가까이하여 영조를 낳게 된 것이다.

 

숙원·숙의·귀인을 거쳐 숙빈에 책봉되었고 1718년(숙종 44) 3월 9일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5년 전 아쉽게도 49세의 나이로 승하했다. 묘호(廟號)를 육상(毓祥)이라 하고 묘호(墓號)를 소령원이라 했는데 묘비는 1744년 영조가 친히 썼다. 위패는 칠궁 내 육상궁에 봉안되어 있다. 칠궁은 조선 후기 왕실의 후궁들 가운데 왕이나 추존된 왕의 생모의 신위가 봉안되어 있는 곳이다.

 

영조는 지극한 효성으로 시묘살이를 했다. 효심의 원천은 생모가 천출(賤出)이라는 컴플렉스의 결과라는 해석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영조의 효심은 그가 왕이 된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당초 소령묘(墓)였던 것을 '원'(園)으로 격을 높였다. '원'(園)이 아니라 '능'(陵)으로 봉하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했을까만은 왕이라고 모든 것을 다 마음대로 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더구나 치열한 당파싸움의 한 가운데 있던 영조가 아니었던가! 탕평책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나온 고육책의 하나였다.

 

소령원에는 지금도 이와 관련된 여러 야사(野史)들이 전해 온다. 능으로 추봉하는 것을 가장 반대한 신하에게 소령원 제삿날 이글거리는 숯불 향로를 맨손으로 들게 했으나 그래도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자 영조도 단념했다는 것이며 민심을 살피다 만난 숯장수 노인이 소령원을 '고령릉'이라고 말하자 궁으로 불러 술을 대접하고 소원을 들어줬다는 얘기도 있다.

 

생모의 묘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영조가 오열했다는 기록은 실록에 몇 차례나 나온다. 건강이 안 좋아 소령원 거동을 만류하자 울고, 거동 시각을 급히 바꿔 신료들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아뢰자 행차 때마다 뒷말이 돈다며 눈물짓고...

 

소령원을 지나 인근에 있는 보광사로 가는 길 중간에 됫박같이 생겼다 하여 '됫박고개'라 이름 붙여진 고개가 하나 있다. 지금은 차로 쉽게 넘어갈 수 있으나 예전에는 무척이나 힘들게 넘었을 것 같다. 영조는 이 고개가 소령원에 누워 있는 자신의 생모와 더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했는지 더 파 낮추라고 해서 '더 파기 고개'라고 했단다.

 

이 밖에도 영조의 효심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1740년(영조 16)에 소령원과 가까이에 있는 고령사를 보광사로 이름을 바꾸고 숙빈 최씨의 원찰로 삼아 대웅보전, 광응전을 중수하고 만세루를 창건했다.

 

이 보광사 대웅보전 오른쪽 둔덕에 어실각이 있는데 여기에 숙빈 최씨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져 있다. 어실각 바로 앞에 영조가 심었다는 향나무도 있다. 대웅보전 편액은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묘의 시설은 병풍석(屛風石)이 없는 곡장(曲墻) 및 혼유석(魂遊石)·묘비·문인석(文人石)·석마(石馬)·석양(石羊) ·사초지(莎草地) 등이 있고 사초지 앞에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閣)이 있으며 묘역 진입로에 신도비각(神都碑閣)이 있다. 정자각 동쪽 비의 전면에는 '朝鮮國和敬淑嬪昭寧園'이라는 비명이 있고 묘소의 동쪽 비명은 '淑嬪海州崔氏昭寧園'으로 되어 있다.

 

겨울의 초입에서 비공개로 인해 더더욱 쓸쓸함이 묻어나는 소령원을 찾아 영조의 지극한 효심을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소령원의 바로 옆에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의 원소 유길원이 있으니 이 또한 둘러볼 만 하다.

 

정빈 이씨는 영조의 후궁이 되어 장자인 효장세자 즉 진종(眞宗 - 추존)을 낳았다. 원역은 서남향으로 조성되었으며 봉분 정면에는 비석, 상석, 장명등이 일렬로 배치되었고 양쪽으로 망주석, 문인석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본래의 정자각과 수복방은 소실된 채 아직 복원이 되지 않고 있다.

 

영조를 중심으로 한쪽에는 어머니가 또 한쪽에는 배우자가 잠들어 있으니 이 곳 광탄은 참말로 영조와 인연이 깊고도 깊은 곳이다.

 

2003.12.31 15:00 ⓒ 2015 OhmyNews
#소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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