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설악으로의 때 이른 해돋이 여행(1)

등록 2003.12.31 23:59수정 2004.01.0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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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를 굳이 '설악으로의 때 이른 해돋이 여행'이라고 잡은 이유는 올 초 <오마이뉴스>에 '설악으로의 때늦은 해돋이 여행'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하여 1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1년을 되돌아보고, 그 기사에 사진이 없어 아쉽다는 내용의 독자의견이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고마운' 독자의견에 보답하게 되었다. 글을 올리고 독자의견 중에 이견이 있을 때 다시 가서 확인할 수 있는 열정과 시간적 여유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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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독자의견에 답하게 되었다 ⓒ 김정봉

예전 같으면 몇 번이라도 가보았을 설악이지만 올해는 생활에 쫓기어 이제야 찾게 되었다. 게다가 '사는이야기'에 한 편 글을 올리지 못하는 판에 박힌 삶을 보내고 있다.

조회 수에 연연하고 기사가 좋은 위치에 배치되기를 열망하는 또 하나의 허무한 욕망이 생긴 한해였다. 기존의 욕망을 떨치지 못할망정 나이가 들수록 욕망은 더 늘어만 가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초보 기자가 갖는 순진한 욕망이라면 다행이다.

언젠가 모르게 순수한 여행이 아닌 기사를 위한 여행을 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카메라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없고, 가고자하는 곳에 관련된 책을 뒤적이지 않고는 떠나려 하지 않는 못된 버릇이 생겼다. 그야말로 본말이 뒤바뀐 것이다.

아직 카메라와 메모지 없이, 옆에 책자를 끼지 않은 채 여행을 할 자신이 없다. 카메라 필름대신 가슴속에 여정을 담아오는 그 날은 언제일는지. 지금 떠나는 여행도 '못된 버릇', '허무한 욕망' 틀 속에 있으니 낯뜨거운 일이다. 그래도 고마운 독자의견에 답을 한다는 명분을 얻었으니 개운치 않은 마음이 다소 위안은 된다.

설악으로의 여행의 시작은 미시령 혹은 한계령을 넘는 것부터 시작된다. 미시령 휴게소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항공사진을 찍은 것처럼 속초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옆으로 울산바위가 병풍 같은 모습으로 둘러쳐 있고 멀리 동해 바다가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영랑호와 청초호가 도시 미관을 위하여 일부러 만들어 놓은 인공호처럼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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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전경 ⓒ 김정봉

답사 처로서의 속초여행은 낙산사와 진전사지 석탑이 제일이라 할 수 있다. 낙산사와 진전사지 석탑은 깊이 없는 설악의 매력을 보전해준다. 그래도 속초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동해 일출, 바다와 산이 그려내는 풍경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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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가장 큰 돌산인 울산바위 ⓒ 김정봉

동해 일출은 뭐니뭐니해도 낙산사 의상대에서 보는 낙산일출이 제일이나 속초 동명항 영금정에서 보는 일출도 일품이다. 영금정을 잡아 삼킬 듯한 파도와 동명항을 오가는 고깃배, 꿈틀꿈틀 솟는 해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 생동감 있는 일출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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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의상대에 버금가는 일출 명소 영금정 ⓒ 김정봉

12월 28일 7시 10분 영금정. 정자 아래 파도가 정자를 금방이라도 삼킬 듯 넘실거리고 정자 위엔 해가 언제나 솟으려나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제히 숨을 죽인 채 어두운 바다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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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금정 정자 아래 파도 ⓒ 김정봉

7시 40분. "오늘도 제대로 된 일출을 못 볼 모양"이라고 수군대고 있을 즈음, 빛을 반사하고 있는 수평선 위로 머리를 살짝 내미는 해. 모두들 숨죽이며 기도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2003년, 어려운 한 해이었던 같다. 숨죽이며 무언가 갈구하는 숙연한 분위기가 서글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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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 끝에 솟았다 ⓒ 김정봉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이다. 구름은 해의 붉은 기운을 받아 해가 솟는 진통을 미리 알리기도 하고 아름다운 일출을 연출한다. 그러나 구름 없이 홀로 솟는 해는 아름답기보다는 장엄하다.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해가 제 몸을 그대로 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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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 ⓒ 김정봉

몇 분 안되어 해는 그냥 보기에 눈이 부실만큼 솟았다. 그 앞에 고깃배가 활기차게 움직이고 고깃배 주위에는 새들이 먹이를 찾아 주위를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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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배의 엔진은 2004년에도 계속돌 것이다 ⓒ 김정봉

바다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김민기의 노래 '바다'를 불러본다. 1년 전과 똑 같이 불러보지만 그 감흥과 바람은 다르다. 올해는 왠지 모르게 '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노랫말이 제일 깊게 다가온다. 온갖 시련을 당해도 이겨낼 거라는 강한 의지가 숨어 있어서 그럴 게다. 바람과 물결이라는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각자의 작은 조각배를 띄우는 2004년이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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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 김정봉

어두운 밤바다에 바람이 불면
저 멀리 한 바다에 불빛 가물거린다
아무도 없어라 텅 빈 이 바닷가
물결은 사납게 출렁거리는데

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내 작은 조각배 띄워 볼란다

누가 탄 배일까 외로운 저 배
그 누굴 기다리는 여윈 손길인가
아무도 없어라 텅 빈 이 바닷가
불빛은 아련히 가물거리는데

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내 작은 조각배 띄워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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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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