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여 ‘얼짱 신드롬’을 경계하라

시와 소설은 즉물과 현학의 세상을 비판하는 것

등록 2004.01.02 11:31수정 2004.01.0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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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대중적 확산과 이를 사용하는 네티즌의 전폭적인 지지가 아니었다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노무현 정권의 집권 첫 해인 2003년이 세월의 무덤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가 살아온 어느 해가 그렇지 않겠냐 만은 지난 한 해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사람들의 곁을 스쳐갔다.

바라만 봐도 눈가가 시린 벚꽃 흐드러진 봄. 미국은 그 제국주의적 본성을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이라크 아이들의 머리 위로 토마호크-크루즈 미사일을 퍼부음으로써 다시 한번 자신의 본질을 전세계 시민들의 머리에 각인시켰고, 그 슬픔의 여파가 채 걷히기도 전에 우리는 얼어붙은 경제와 장기불황 탓에 가슴 오그리고 살아야했다.


연말에는 대검찰청 송광수 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이 주도한 검찰의 정치권 정화노력이 국민 모두의 관심을 끌었고 줄줄이 소환되거나 구속되는 기업 총수와 정치인들을 보며 또 한번 한국에서 산다는 것의 힘겨움과 부끄러움을 실감해야 했다. 하자면 끝이 없을 터이니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련된 칙칙하고, 어두운 이야기는 그만 하자.

a 인터넷 공간에 널리 퍼져있는 각종 얼짱사이트들.

인터넷 공간에 널리 퍼져있는 각종 얼짱사이트들. ⓒ 관련 홈페이지

지난 한 해, 앞서 언급한 문제들 이상으로 세간의 주목을 끈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터넷을 통해 발원돼 오프라인에서도 그 맹위를 떨친 ‘얼짱 신드롬’이다. 아름답고 예쁜 얼굴을 의미하는 인터넷 신조어 ‘얼짱’은 2003년은 물론, 21세기를 결정짓는 한 키워드로 자리매김했고 그 열풍은 올해도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루 방문자가 수백만 명에 육박하는 각종 포털사이트에서부터 개인 홈페이지까지 최고의 ‘얼짱’을 뽑는 이벤트가 수도 없이 열렸고, 거기에서 주목받은 ‘얼굴 예쁜 아이들’은 인터넷이라는 시뮬레이션의 세계를 박차고 나와 방송과 영화라는 현실세계로 진출해 낙양(洛陽)의 지가를 올리기도 했다.

아름답고, 예쁘고, 근사한 얼굴을 싫어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기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면 그런 사람을 보면서 대리만족 혹은, 마음의 위안을 삼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문학이라 총칭되는 시와 소설, 희곡과 평론 역시 아름다운 문장과 매혹적인 문체에 대한 동경과 흠모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유치원 교사를 하는 친구의 여동생은 이렇게까지 말한다. “다 똑같은 아이들이라 모두 사랑하고 싶지만, 얼굴이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에게 먼저 관심과 애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그녀가 가르치는 아이들조차 얼굴이 예쁜 선생님이 마음도 착하다고 믿는단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예쁜 여자와 근사한 남자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예쁨과 근사함이 내면이 아닌 겉만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속물화된 자본주의 세상은 인간의 인격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게 바로 천민화된 자본주의다. 그 사람의 주머니와 지갑에 든 현금의 양과 크레디트 카드의 색깔로 그를 재단하고, 걸치고 다니는 옷과 신고 다니는 신발, 메고 있는 가방의 메이커를 보고 숙여야 할 허리의 각도를 정하는 세상. 서글프지만 우리는 분명 그런 세상을 살고있다.


불특정 다수가 특정한 소수의 얼굴만을 숭배하는 세상. ‘얼짱 신드롬’을 마냥 웃으며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광대뼈의 위치와 눈가가 찢어진 길이, 코가 솟아오른 각도와 입술의 도톰함 정도만으로 간단히 규정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다른 여타의 동물들과 대별되는 인간만의 특질 즉,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사고를 통해 사물을 판단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타 동물에 비해 어떤 우위를 주장할 수 있을까? 겉이 아닌 내면을 보려는 노력조차 포기한다면 인간들의 세상은 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

세상에 내 마음 같지 않고 마뜩찮은 게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그중 90년대 중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자가 혀를 차게 한 세태가 있으니 그건 신문에 실리는 시집 혹은, 소설집의 광고에 여자작가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인쇄되어 나오는 것이다.

10대(代) 얼짱들처럼 세련된 포즈에 편집기술로 얼굴의 잡티까지 제거한 인위적이며 상업적인 여성작가의 사진들. 그들이 쓴 작품의 내용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천편일률의 미소와 희떠운 제스처. 어떤 것은 책을 광고하는 것인지 여성작가의 얼굴을 홍보하는 것인지조차 헛갈릴 정도다.

광고하려는 책의 크기보다 작가의 사진이 훨씬 큰 괴이한 출판광고. 시인과 문학평론가를 겸하는 한 작가는 이런 식으로 책이 아닌 소설가 혹은 시인의 얼굴을 파는 듯한 광고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독창성"이라고 한탄과 비꼼을 동시에 표했다.

말하다 보니 이것도 그닥 즐거운 이야기가 되지 못하고 말았다. 어쨌건 모두가 마음속에 소망 하나씩은 지녀보는 새 해다. 여기서 기자만의 소망이 아닌 독자일반의 바람을 말하는 게 허락된다면 이런 것을 빌어보고 싶다.

"작가는 물론 출판사 관계자들도 올해는 ‘문학은 즉물과 현학을 경계하는 것’이란 명제를 새삼 되새겨보기를, 문학만은 겉이 아닌 내면을 탐구하는 목적이자 수단으로 남아주기를, 여기에 더해 외모지상주의의 ‘얼짱 신드롬’을 피해가기를. 그래서 지금까지 그래왔듯 시와 소설이 인간의 눈이 아닌 가슴에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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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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